최근 20, 30대 젊은 부부 사이에 결혼식을 올리고도 혼인신고를 미루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결혼’이라는 형식을 거쳐 부부생활을 영위하지만 일정기간 ‘합법적인 부부상태’가 되는 것을 유예한 채 상대를 탐색하는 기회를 갖겠다는 신세대들의 실리적 계산이 반영된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또 기존 가족구성원에서 밀려난다는 두려움도 혼인신고를 미루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4월 결혼한 맞벌이 부부 김모씨(남·33)는 결혼 전 아내와 “1년쯤 살아보고 그때 가서 혼인신고를 하자”고 합의했다. “부모님이 혼인신고 안한다고 성화지만 지금까지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다. 물론 부모님은 혼인신고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은 모르는 상태다. 우리 생각을 이해하실 수 없을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았다”는 김씨. 그는 혼인신고를 미루는 이유에 대해 “결혼하는 부부 3쌍 중 1쌍 꼴로 이혼이 흔한 시대인데 우리라고 이혼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물론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삐끗해서 헤어지는 날이면 젊은 나이에 이혼자라는 딱지가 남을 게 아닌가. 그렇게 되면 사회생활에도 지장이 많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 오는 3월 결혼식을 앞둔 박모씨(남·31)도 “결혼 전에 미리 몇 개월만 함께 살아보고 싶었지만 양가 부모님 때문에 동거를 포기했다. 대신 결혼하더라도 혼인신고는 천천히 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1년 넘도록 미룬 부부 16.6%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최근 집계한 99년도 상담현황 분석자료에 따르면 99년 한 해 동안 사실혼 해소와 관련한 상담은 총 274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결혼기간 5년 미만인 사람이 약 78%를 차지했다. 연령별로 보면 20, 30대가 전체의 65%다. 이에 대해 박소현 상담위원은 “20, 30대 젊은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면 결혼식을 올리고도 일부러 혼인신고를 미루다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피부로 느낀다. 이러한 현상은 97년부터 두드러져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이 결혼한 부부 400쌍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혼인신고에 관한 설문조사’에서도 결혼 기간이 짧은 부부일수록 혼인신고를 하는 시기가 점차 늦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결혼 기간이 짧을수록 “살아보고 후회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결혼한 지 5년 이상 된 부부의 67%가 결혼식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혼인신고를 마쳤다고 응답한 반면 결혼한 지 2년 미만(1년 이상) 부부 중 35.5%만이 1개월 이내에 혼인신고를 마친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나도록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는 전체 400쌍 중 24쌍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결혼한 지 2년 미만인 부부가 19쌍이나 됐다. 19쌍 중 7쌍은 아직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다.
한편 “혼인신고를 안해도 된다”고 대답한 사람은 결혼한 지 2년 미만의 남편과 아내 400명 가운데 4명에 1명 꼴인 반면, 결혼한 지 5년 이상 된 사람은 9명에 1명 꼴로 나타났다. 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결혼한 지 2년 미만인 남녀 400명(200쌍 부부) 가운데 10% 이상이 “살아보고 후회할지도 모르니까”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는 최근 들어 “혼인신고를 꼭 해야 하는가?”라는 문의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온다고 한다. 박소현 상담위원은 “혼인신고를 미뤘다가, 성격 차이나 시댁과의 갈등 등 문제가 발생하면 아예 혼인신고를 하지 말고 더 두고 보자는 식으로 버티는 부부가 적지 않다. 그러다 갈등이 깊어지면 까다로운 법적 절차 없이 쉽게 헤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박씨의 말처럼 혼인신고를 마친 경우라면 헤어지기가 쉽지 않은 점이 젊은 부부의 ‘혼인신고 기피’ 현상을 불러오는 이유 중 하나다. 만약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결혼한 부부라 해도 어느 일방의 의사에 따라 법적 절차 없이 혼인관계를 해소할 수 있지만, 이미 혼인신고가 됐다면 협의이혼이든 재판이혼이든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혼인신고를 기피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혼남’ ‘이혼녀’를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곱지 않은 시각이다. 게다가 이혼경력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점도 한 가지 요인이다.
그런가하면 결혼과 함께 자신의 뿌리(호적)를 다른 집안으로 옮겨야 한다는 두려움에 차일피일 혼인신고를 미루는 경우도 있다. 혼인신고 관련 조사를 진행한 닥스클럽 우승표 이사에 따르면 “혼인신고를 하면서 울었다는 여성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결혼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혼인신고를 마치지 못했다는 유재훈씨(남·29)는 “아내 눈치만 살피고 있다. 장모님이나 장인어른도 혼인신고가 뭐 그리 급하냐면서 호적 옮기는 걸 내심 서운하게 여기시는 눈치다. 어차피 임신하고 아이가 생기면 출생신고 때문에라도 혼인신고를 해야 하니까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한다.
혼인신고와 관련된 하소연은 부부문제 상담기관을 통해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결혼 4개월 만에 이혼하려고 한다. 혼인 자체를 없었던 일로 무효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결혼하고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이혼남이 되는 건 너무 억울하다. 방법만 있다면 혼인신고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혼인신고를 했는데, 취소할 수는 없는 건가. 어떻게든 취소할 수 있는 사례나 방법이 있으면 좀 알려달라” 등.
이러한 젊은 부부들의 ‘혼인신고 기피’ 현상은 가정생활에 새로운 부작용도 낳고 있다. 심지어 며느리와 시가(媤家) 또는 양가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도 있다. 미혼인 이모씨(여·27)는 “오빠 부부의 혼인신고 문제로 부모님이 올케언니는 물론이고 사돈어른한테도 몹시 화가 나 있는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이씨에 따르면 “올케언니가 3년이 될 때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상황이다. 혼인신고 전에 아이를 낳으면 출생신고를 못 하니까 그 때까지 아이도 낳지 않겠다고 한다. 오빠가 장남인데 부모님 입장에서 멀쩡한 아들을 장가보내놓고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더구나 올케 언니 친정에서까지 살아보고 천천히 혼인신고 하라고 부추긴다는 걸 알고 펄쩍 뛰셨다”고 한다.
“살아보고 혼인신고하겠다는 올케언니가 시댁에 어떻게 진심으로 잘할 수 있겠는가. 그런 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이 많다. 더구나 올케언니는 혼인신고 안하고 사는 친구들도 많은데 혼인신고할 것을 종용하는 우리 식구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태도를 보인다. 올케 언니의 행동이 마치 우리 집안을 깔보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
한편 혼인신고 기피로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경우도 생겨난다. 이혼전문 상담기관과 변호사사무실 등에 “아내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것 같은데, 제 삼자와의 혼인을 막고 싶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저희 부부는 결혼하고 같이 살았지만 혼인신고를 미루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요. 결혼하고 함께 산 지 1년이 넘은 남편이 다른 여자와 최근 혼인신고를 마쳤답니다. 어떻게 하면 그 혼인을 무효로 돌릴 수 있을까요?” 등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 것.
이혼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최인호 변호사는 “최근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 상태에 있는 부부가 많은데, 서로 합의 하에 헤어지기보다 부부 어느 한쪽의 변심으로 깨지는 경우가 많아 위자료와 손해배상을 둘러싸고 법률자문을 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히 결혼만으로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혼인신고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4월 결혼한 맞벌이 부부 김모씨(남·33)는 결혼 전 아내와 “1년쯤 살아보고 그때 가서 혼인신고를 하자”고 합의했다. “부모님이 혼인신고 안한다고 성화지만 지금까지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다. 물론 부모님은 혼인신고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은 모르는 상태다. 우리 생각을 이해하실 수 없을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았다”는 김씨. 그는 혼인신고를 미루는 이유에 대해 “결혼하는 부부 3쌍 중 1쌍 꼴로 이혼이 흔한 시대인데 우리라고 이혼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물론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삐끗해서 헤어지는 날이면 젊은 나이에 이혼자라는 딱지가 남을 게 아닌가. 그렇게 되면 사회생활에도 지장이 많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 오는 3월 결혼식을 앞둔 박모씨(남·31)도 “결혼 전에 미리 몇 개월만 함께 살아보고 싶었지만 양가 부모님 때문에 동거를 포기했다. 대신 결혼하더라도 혼인신고는 천천히 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1년 넘도록 미룬 부부 16.6%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최근 집계한 99년도 상담현황 분석자료에 따르면 99년 한 해 동안 사실혼 해소와 관련한 상담은 총 274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결혼기간 5년 미만인 사람이 약 78%를 차지했다. 연령별로 보면 20, 30대가 전체의 65%다. 이에 대해 박소현 상담위원은 “20, 30대 젊은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면 결혼식을 올리고도 일부러 혼인신고를 미루다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피부로 느낀다. 이러한 현상은 97년부터 두드러져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이 결혼한 부부 400쌍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혼인신고에 관한 설문조사’에서도 결혼 기간이 짧은 부부일수록 혼인신고를 하는 시기가 점차 늦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결혼 기간이 짧을수록 “살아보고 후회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결혼한 지 5년 이상 된 부부의 67%가 결혼식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혼인신고를 마쳤다고 응답한 반면 결혼한 지 2년 미만(1년 이상) 부부 중 35.5%만이 1개월 이내에 혼인신고를 마친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나도록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는 전체 400쌍 중 24쌍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결혼한 지 2년 미만인 부부가 19쌍이나 됐다. 19쌍 중 7쌍은 아직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다.
한편 “혼인신고를 안해도 된다”고 대답한 사람은 결혼한 지 2년 미만의 남편과 아내 400명 가운데 4명에 1명 꼴인 반면, 결혼한 지 5년 이상 된 사람은 9명에 1명 꼴로 나타났다. 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결혼한 지 2년 미만인 남녀 400명(200쌍 부부) 가운데 10% 이상이 “살아보고 후회할지도 모르니까”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는 최근 들어 “혼인신고를 꼭 해야 하는가?”라는 문의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온다고 한다. 박소현 상담위원은 “혼인신고를 미뤘다가, 성격 차이나 시댁과의 갈등 등 문제가 발생하면 아예 혼인신고를 하지 말고 더 두고 보자는 식으로 버티는 부부가 적지 않다. 그러다 갈등이 깊어지면 까다로운 법적 절차 없이 쉽게 헤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박씨의 말처럼 혼인신고를 마친 경우라면 헤어지기가 쉽지 않은 점이 젊은 부부의 ‘혼인신고 기피’ 현상을 불러오는 이유 중 하나다. 만약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결혼한 부부라 해도 어느 일방의 의사에 따라 법적 절차 없이 혼인관계를 해소할 수 있지만, 이미 혼인신고가 됐다면 협의이혼이든 재판이혼이든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혼인신고를 기피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혼남’ ‘이혼녀’를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곱지 않은 시각이다. 게다가 이혼경력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점도 한 가지 요인이다.
그런가하면 결혼과 함께 자신의 뿌리(호적)를 다른 집안으로 옮겨야 한다는 두려움에 차일피일 혼인신고를 미루는 경우도 있다. 혼인신고 관련 조사를 진행한 닥스클럽 우승표 이사에 따르면 “혼인신고를 하면서 울었다는 여성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결혼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혼인신고를 마치지 못했다는 유재훈씨(남·29)는 “아내 눈치만 살피고 있다. 장모님이나 장인어른도 혼인신고가 뭐 그리 급하냐면서 호적 옮기는 걸 내심 서운하게 여기시는 눈치다. 어차피 임신하고 아이가 생기면 출생신고 때문에라도 혼인신고를 해야 하니까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한다.
혼인신고와 관련된 하소연은 부부문제 상담기관을 통해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결혼 4개월 만에 이혼하려고 한다. 혼인 자체를 없었던 일로 무효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결혼하고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이혼남이 되는 건 너무 억울하다. 방법만 있다면 혼인신고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혼인신고를 했는데, 취소할 수는 없는 건가. 어떻게든 취소할 수 있는 사례나 방법이 있으면 좀 알려달라” 등.
이러한 젊은 부부들의 ‘혼인신고 기피’ 현상은 가정생활에 새로운 부작용도 낳고 있다. 심지어 며느리와 시가(媤家) 또는 양가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도 있다. 미혼인 이모씨(여·27)는 “오빠 부부의 혼인신고 문제로 부모님이 올케언니는 물론이고 사돈어른한테도 몹시 화가 나 있는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이씨에 따르면 “올케언니가 3년이 될 때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상황이다. 혼인신고 전에 아이를 낳으면 출생신고를 못 하니까 그 때까지 아이도 낳지 않겠다고 한다. 오빠가 장남인데 부모님 입장에서 멀쩡한 아들을 장가보내놓고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더구나 올케 언니 친정에서까지 살아보고 천천히 혼인신고 하라고 부추긴다는 걸 알고 펄쩍 뛰셨다”고 한다.
“살아보고 혼인신고하겠다는 올케언니가 시댁에 어떻게 진심으로 잘할 수 있겠는가. 그런 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이 많다. 더구나 올케언니는 혼인신고 안하고 사는 친구들도 많은데 혼인신고할 것을 종용하는 우리 식구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태도를 보인다. 올케 언니의 행동이 마치 우리 집안을 깔보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
한편 혼인신고 기피로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경우도 생겨난다. 이혼전문 상담기관과 변호사사무실 등에 “아내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것 같은데, 제 삼자와의 혼인을 막고 싶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저희 부부는 결혼하고 같이 살았지만 혼인신고를 미루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요. 결혼하고 함께 산 지 1년이 넘은 남편이 다른 여자와 최근 혼인신고를 마쳤답니다. 어떻게 하면 그 혼인을 무효로 돌릴 수 있을까요?” 등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 것.
이혼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최인호 변호사는 “최근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 상태에 있는 부부가 많은데, 서로 합의 하에 헤어지기보다 부부 어느 한쪽의 변심으로 깨지는 경우가 많아 위자료와 손해배상을 둘러싸고 법률자문을 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히 결혼만으로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혼인신고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