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까지 한 인터넷 포털업체에서 ‘자살클럽’이라는 이름의 동호회를 운영했던 M양(17). 그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속상한 일들을 서로 털어놓고 용기도 북돋워 주며 1년 이상 동호회 활동을 계속해 왔다. “물론 자살하려고 만든 건 아니었어요. 사람들을 자살로 유도하겠다는 의도는 더더욱 아니었고요.”
일이 꼬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 12월 무렵. TV와 신문에서 자살사이트 관련 기사가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부터였다. “자살방법을 가르쳐 달라거나 자기가 대신 죽여주겠다는 등 이상한 메일이 오기 시작했지만 그냥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클럽과 관련해 사건이 나면 제 책임이라고 서버업체측에서 통고하더군요.” 결국 운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다음날 동호회는 폐쇄되었다. M양은 “살다보면 누구나 힘든 일이 있지 않나요? 힘들면 힘들다고 털어놓을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을 만든 거였는데… 건드리기 전엔 나름대로 잘 해나가고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자살사이트와 폭탄사이트. 과연 이들은 모두 사이버세계에서 추방되어 마땅한 ‘극악무도한 반사회적 행위’였을까.
이 문제가 각종 매체를 달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14일 강릉에서 자살한 대학생 두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만난 것으로 확인되면서부터. 그런가하면 지난 2월3일 대구 폭발물 사건을 계기로 폭탄사이트에 대한 일제 단속이 이뤄져 몇몇 운영자가 입건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사이트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81개였던 국내 자살사이트 중 50개 가량은 자진 폐쇄했고 10여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권고로 폐쇄조치되었다(2월15일 현재). 폭탄사이트의 경우 20개 사이트 모두 자취를 감췄고 그 중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사이트 운영자 6명이 경찰조사를 받았다. 현재로서는 국내 검색엔진을 통해 이들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경찰은 자살사이트 운영자에게는 자살방조, 폭탄사이트 운영자에게는 폭발물 사용 선동혐의를 적용해 사법처리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형법상 각각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 2년 이상 무기징역까지 가능한 중대범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업체 관계자들과 운영자들은 경찰의 이러한 단속이 주먹구구식이라고 지적한다. “경찰이나 언론에 의해 공개된 자살사이트 중 대다수의 개설 취지는 ‘의사소통을 통해 자살충동을 극복하자’는 것이었죠. 자살이라는 이름만으로 문제를 삼은 것은 지나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모포털업체 커뮤니티 관리자).
자신의 상담사이트에 ‘자살방’을 개설해 놓은 정신과 전문의 이길흠 박사의 경우도 마찬가지. 지난해까지 ‘자살’이란 검색어로 접근이 가능했던 이 사이트도 더 이상 그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게 된 것. “문제가 있지요. 위기에 처한 사람이 도움을 구할 사이트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니까요. 예전에 존재했던 많은 사이트들이 그런 역할을 부분적으로 수행했던 것이 사실이고요. 아마 그런 사이트 덕분에 자살을 포기한 사람의 수도 상당하지 않을까요?” 이제는 갈 곳이 없어진 이들 대부분이 ‘이야기 들어줄 곳’을 찾아 헤매고 있을 거라는 게 이박사의 진단이다.
폭탄사이트의 경우는 어떨까. 간단한 폭발물 정보사이트를 운영하다 폐쇄당한 L씨(24)는 내용물이 모두 책이나 해외사이트에서 따온 것인데 왜 문제가 되느냐고 질문한다. “외국 검색엔진으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번역사이트를 통하면 90% 이상 정확하게 우리말로 볼 수 있고요.” 화약류 관리기사 자격시험 교재만 들춰봐도 그보다 자세한 내용이 부지기수인데다, 대구 사제폭발물 사건이 인터넷과 관련 있다는 증거도 없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그런가하면 폭탄사이트 운영으로 입건된 중학생 K군(15)도 조사 과정에서 “사이트 곳곳에 경고문을 붙여 두었고 폭탄제조법도 개요 수준이었다”며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으로 만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들도 이러한 항변을 일부 인정하고는 있지만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자신들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양근원 수사팀장은 “‘우리 자살하자’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처음에는 자살방지라는 동기로 모였다 해도 그 안에서 부정적인 내용이 전달될 개연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폭탄사이트 관계자를 직접 조사한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신주화 반장은 “이들의 선동 혐의가 검찰이나 법원에서 끝까지 인정될 거라고 확신하지는 않지만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좀더 적극적인 법적용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강경론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찰측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조광희 변호사는 “문제가 있다 해도 적절한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지, 여론에 떠밀려 자살방조나 폭발물선동 같은 중죄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경찰이 강제 폐쇄권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정보유통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 한편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 정진섭 부장검사도 “일부에서는 ‘더 강력한 규제’를 주문하고 있으나 음란물 유통 등 명백한 범죄사실 이외에는 가능한 한 시민-사회단체의 자정(自淨)을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서점에 널린 화약류 관련 도서와 자살을 다루는 영화, 가요는 모두 놔두고 왜 인터넷만 문제삼느냐’는 네티즌들의 주장과 ‘인터넷은 더 이상 가상현실이 아니다’는 경찰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문제가 ‘들끓는 여론’에 밀려 즉흥적으로 결정하기에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이 꼬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 12월 무렵. TV와 신문에서 자살사이트 관련 기사가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부터였다. “자살방법을 가르쳐 달라거나 자기가 대신 죽여주겠다는 등 이상한 메일이 오기 시작했지만 그냥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클럽과 관련해 사건이 나면 제 책임이라고 서버업체측에서 통고하더군요.” 결국 운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다음날 동호회는 폐쇄되었다. M양은 “살다보면 누구나 힘든 일이 있지 않나요? 힘들면 힘들다고 털어놓을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을 만든 거였는데… 건드리기 전엔 나름대로 잘 해나가고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자살사이트와 폭탄사이트. 과연 이들은 모두 사이버세계에서 추방되어 마땅한 ‘극악무도한 반사회적 행위’였을까.
이 문제가 각종 매체를 달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14일 강릉에서 자살한 대학생 두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만난 것으로 확인되면서부터. 그런가하면 지난 2월3일 대구 폭발물 사건을 계기로 폭탄사이트에 대한 일제 단속이 이뤄져 몇몇 운영자가 입건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사이트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81개였던 국내 자살사이트 중 50개 가량은 자진 폐쇄했고 10여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권고로 폐쇄조치되었다(2월15일 현재). 폭탄사이트의 경우 20개 사이트 모두 자취를 감췄고 그 중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사이트 운영자 6명이 경찰조사를 받았다. 현재로서는 국내 검색엔진을 통해 이들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경찰은 자살사이트 운영자에게는 자살방조, 폭탄사이트 운영자에게는 폭발물 사용 선동혐의를 적용해 사법처리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형법상 각각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 2년 이상 무기징역까지 가능한 중대범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업체 관계자들과 운영자들은 경찰의 이러한 단속이 주먹구구식이라고 지적한다. “경찰이나 언론에 의해 공개된 자살사이트 중 대다수의 개설 취지는 ‘의사소통을 통해 자살충동을 극복하자’는 것이었죠. 자살이라는 이름만으로 문제를 삼은 것은 지나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모포털업체 커뮤니티 관리자).
자신의 상담사이트에 ‘자살방’을 개설해 놓은 정신과 전문의 이길흠 박사의 경우도 마찬가지. 지난해까지 ‘자살’이란 검색어로 접근이 가능했던 이 사이트도 더 이상 그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게 된 것. “문제가 있지요. 위기에 처한 사람이 도움을 구할 사이트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니까요. 예전에 존재했던 많은 사이트들이 그런 역할을 부분적으로 수행했던 것이 사실이고요. 아마 그런 사이트 덕분에 자살을 포기한 사람의 수도 상당하지 않을까요?” 이제는 갈 곳이 없어진 이들 대부분이 ‘이야기 들어줄 곳’을 찾아 헤매고 있을 거라는 게 이박사의 진단이다.
폭탄사이트의 경우는 어떨까. 간단한 폭발물 정보사이트를 운영하다 폐쇄당한 L씨(24)는 내용물이 모두 책이나 해외사이트에서 따온 것인데 왜 문제가 되느냐고 질문한다. “외국 검색엔진으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번역사이트를 통하면 90% 이상 정확하게 우리말로 볼 수 있고요.” 화약류 관리기사 자격시험 교재만 들춰봐도 그보다 자세한 내용이 부지기수인데다, 대구 사제폭발물 사건이 인터넷과 관련 있다는 증거도 없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그런가하면 폭탄사이트 운영으로 입건된 중학생 K군(15)도 조사 과정에서 “사이트 곳곳에 경고문을 붙여 두었고 폭탄제조법도 개요 수준이었다”며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으로 만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들도 이러한 항변을 일부 인정하고는 있지만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자신들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양근원 수사팀장은 “‘우리 자살하자’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처음에는 자살방지라는 동기로 모였다 해도 그 안에서 부정적인 내용이 전달될 개연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폭탄사이트 관계자를 직접 조사한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신주화 반장은 “이들의 선동 혐의가 검찰이나 법원에서 끝까지 인정될 거라고 확신하지는 않지만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좀더 적극적인 법적용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강경론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찰측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조광희 변호사는 “문제가 있다 해도 적절한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지, 여론에 떠밀려 자살방조나 폭발물선동 같은 중죄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경찰이 강제 폐쇄권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정보유통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 한편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 정진섭 부장검사도 “일부에서는 ‘더 강력한 규제’를 주문하고 있으나 음란물 유통 등 명백한 범죄사실 이외에는 가능한 한 시민-사회단체의 자정(自淨)을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서점에 널린 화약류 관련 도서와 자살을 다루는 영화, 가요는 모두 놔두고 왜 인터넷만 문제삼느냐’는 네티즌들의 주장과 ‘인터넷은 더 이상 가상현실이 아니다’는 경찰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문제가 ‘들끓는 여론’에 밀려 즉흥적으로 결정하기에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