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우리 스스로 바꿔야 산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정직한 제목을 단 책도 있나? 바꿔야 산다는 거 아직도 모르는 사람 있나?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가수 이정현도 ‘바꿔‘를 외쳤는데….
그러나 문득 이 대목에서 이진경씨(성공회대 강사)가 쓴 칼럼 한 대목이 떠올랐다.
“비판이 상투화할 때 그것은 무력한 불모지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비판이 상품화할 때 이제는 비판 자체가 무의미한 의례가 된다. 원칙도, 전복의 의지도 없으며 비판적 의견조차 없는 이들이 바꿔, 바꿔를 외치고 상품화한 비판의 판권을 사려고 난리를 친다….”(한겨레 2월8일)
비판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비판을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근본적인 성찰 없이 ‘바꿔’만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언론인 출신(동아일보 문화부장, 문화일보 편집국장 역임)인 저자 이성주씨는 상투적이고 상품화된 비판이 아닌, 제대로 된 반성을 위해 이렇게 정직한 제목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99년 베스트셀러였던 일본인 이케하라의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나 이와 유사한 비판서가 인기를 끈 이유는, 우리가 그만큼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의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고 체력이나 지적 능력도 뒤질 것이 없는데 왜 일류(一流) 문명국가가 되기 어려울까.’ 이것이 저자의 고민이다. 우리의 결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정이 불가능한 것일까.’ 이 답을 얻기 위해 저자는 한국인 비판을 시작한다.
그러나 냉철한 비판을 위해서는 먼저 한국인 자신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비판 그 자체보다 한국인의 주요 특성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자연적 역사적 조건을 찾는 데 주력했다.
“아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다. 어떻게 해서 한국인의 특성이 생겨났으며, 그 특성들이 현재와 미래사회에 유익한가, 유해한가. 알고 나면 숙명론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며 환상적인 낙관론에 취하지도 않을 것이다.”(본문 중 ‘완고한 슈퍼 이데올로기’에서)
우리 사회에 팽배한 위계질서와 같은 권위주의는 오랫동안 전통으로 굳어져 알게 모르게 후대에 이어지는 잘못된 ‘슈퍼 이데올로기’다. 여기에 개인행동에서 가장 강력한 통제기능이어야 할 양심을 고사(枯死)시키는 풍토, 현상 뒤에 숨겨진 본질을 파악하거나 궁극적인 원인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 지성 결핍이 더해져 한국인은 점점 더 가능성 없는 민족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
역시 교육이 문제다. 특히 대학입시라는 원죄를 짊어진 고등학교 교육이 ‘똑똑한 바보’만 양산하고 있다. 또 저자의 말대로 우리사회가 ‘개판’이 된 데는 가정교육의 부재에도 책임이 있다. 또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는 사이비 지식인이 판을 치고 그렇게 교육받은 이들이 사회에 진출해서는 엘리트로 행세한다. 그러나 한국의 엘리트에 대해 저자는 비판을 넘어 혐오 수준의 감정을 드러낸다.
물론 엘리트의 부패에는 사회의 균형추 노릇을 포기한 중산층이나, 부패의 최대 피해자이면서 부패에 관대한 서민층의 의식에도 책임이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 각 부분의 문제를 골고루 짚어가다 보면 ‘가슴이 머리 위에 있는’ 한국인의 감성적 성향에 다다른다. 저자는 한맺힌 역사에 대한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일반적 의미에서 읽는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개별적인 사실들이 어떻게 연관되고 또다른 문제의 원인이 되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결국 저자가 이처럼 열심히 비판하는 것은 ‘한국은 가능성 있는 나라’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 아닌가. 이성주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320쪽/ 1만원
그러나 문득 이 대목에서 이진경씨(성공회대 강사)가 쓴 칼럼 한 대목이 떠올랐다.
“비판이 상투화할 때 그것은 무력한 불모지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비판이 상품화할 때 이제는 비판 자체가 무의미한 의례가 된다. 원칙도, 전복의 의지도 없으며 비판적 의견조차 없는 이들이 바꿔, 바꿔를 외치고 상품화한 비판의 판권을 사려고 난리를 친다….”(한겨레 2월8일)
비판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비판을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근본적인 성찰 없이 ‘바꿔’만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언론인 출신(동아일보 문화부장, 문화일보 편집국장 역임)인 저자 이성주씨는 상투적이고 상품화된 비판이 아닌, 제대로 된 반성을 위해 이렇게 정직한 제목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99년 베스트셀러였던 일본인 이케하라의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나 이와 유사한 비판서가 인기를 끈 이유는, 우리가 그만큼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의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고 체력이나 지적 능력도 뒤질 것이 없는데 왜 일류(一流) 문명국가가 되기 어려울까.’ 이것이 저자의 고민이다. 우리의 결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정이 불가능한 것일까.’ 이 답을 얻기 위해 저자는 한국인 비판을 시작한다.
그러나 냉철한 비판을 위해서는 먼저 한국인 자신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비판 그 자체보다 한국인의 주요 특성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자연적 역사적 조건을 찾는 데 주력했다.
“아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다. 어떻게 해서 한국인의 특성이 생겨났으며, 그 특성들이 현재와 미래사회에 유익한가, 유해한가. 알고 나면 숙명론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며 환상적인 낙관론에 취하지도 않을 것이다.”(본문 중 ‘완고한 슈퍼 이데올로기’에서)
우리 사회에 팽배한 위계질서와 같은 권위주의는 오랫동안 전통으로 굳어져 알게 모르게 후대에 이어지는 잘못된 ‘슈퍼 이데올로기’다. 여기에 개인행동에서 가장 강력한 통제기능이어야 할 양심을 고사(枯死)시키는 풍토, 현상 뒤에 숨겨진 본질을 파악하거나 궁극적인 원인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 지성 결핍이 더해져 한국인은 점점 더 가능성 없는 민족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
역시 교육이 문제다. 특히 대학입시라는 원죄를 짊어진 고등학교 교육이 ‘똑똑한 바보’만 양산하고 있다. 또 저자의 말대로 우리사회가 ‘개판’이 된 데는 가정교육의 부재에도 책임이 있다. 또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는 사이비 지식인이 판을 치고 그렇게 교육받은 이들이 사회에 진출해서는 엘리트로 행세한다. 그러나 한국의 엘리트에 대해 저자는 비판을 넘어 혐오 수준의 감정을 드러낸다.
물론 엘리트의 부패에는 사회의 균형추 노릇을 포기한 중산층이나, 부패의 최대 피해자이면서 부패에 관대한 서민층의 의식에도 책임이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 각 부분의 문제를 골고루 짚어가다 보면 ‘가슴이 머리 위에 있는’ 한국인의 감성적 성향에 다다른다. 저자는 한맺힌 역사에 대한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일반적 의미에서 읽는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개별적인 사실들이 어떻게 연관되고 또다른 문제의 원인이 되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결국 저자가 이처럼 열심히 비판하는 것은 ‘한국은 가능성 있는 나라’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 아닌가. 이성주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320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