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전체를 디지털 혁명으로 소용돌이치게 하고 있는 진앙지격인 첨단 기술의 산실 실리콘밸리. 이 실리콘밸리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디지털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외딴섬처럼 남아있는 곳이 한 군데 있다. 바로 이스트 팔로 알토(East Palo Alto) 지역. 흑인들이 많이 살고 소득 수준도 낮은데다 집값도 싼 편이다.
지난 4월17일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 지역을 찾은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디지털 불평등(Digital Divide) 해소를 역설하고 나섰다. 클린턴 대통령은 “기술의 발전은 과거 어느 때보다 빨리 많은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 있는 반면 경제적 불평등과 계층 분화 현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그 기로에 서 있다”고 선언했다.
증시 ‘개미의 몰락’이 그 상징
비슷한 시각 북미 대륙의 반대편에 위치한 세계 정치 경제의 중심지 워싱턴. IMF(국제통화기금)-IBRD(세계은행) 연차총회가 열리는 회담장 주변에는 IMF식 세계화에 반대하는 비정부기구(NGO) 시위대가 경찰과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격렬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이 외쳐대고 있는 구호 역시 클린턴의 우려와 비슷한 ‘빈부 격차를 해소하라’는 것이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국제자본의 국경간 이동이라는 ‘서로 다른’ 현상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미국 대륙의 양쪽 끝에서 ‘빈부 격차와 불평등’이라는 인류 공통의 적을 규탄하는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트 팔로 알토에서 열린 행사에는 클린턴뿐만 아니라 20여명의 하이테크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이 동참했고 LA 레이커스의 농구 스타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한 매직 존슨, 뉴욕 리버티의 레베카 로보 등 전`-`현직 스포츠 스타들도 참여해 미개발 지역 정보화에 대한 지원을 함께 호소하기까지 했다. 또 휼렛패커드(HP)의 CEO인 칼리 피오리나는 이 자리에서 ‘HP 디지털 빌리지 프로그램’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HP@학교’ ‘HP@지역사회센터’ ‘HP@가정’ 등 세 가지 지원센터를 만들어 정보화에 뒤처진 아이들이나 주민들에게 인터넷을 가르치고 정보화의 물결에 동참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1500만달러나 되는 돈을 내놓기까지 했다. 가히 디지털로 인한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데 미국 정부와 기업, 그리고 사회가 함께 나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 최대의 디지털 강국인 미국 정부는 왜 디지털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대통령부터 발벗고 나서야 했을까.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그리고 케이블TV나 컴퓨터 등 새로운 매체가 세상에 선보일 때마다 사회학자나 문명비평가들이 단골 메뉴로 내세웠던 주제는 바로 ‘정보 불평등’이었다. 또 이러한 뉴미디어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도 정보화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늘 잠재적 사회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 이른바 정보 격차의 문제. 정보화는 정보 격차를 낳고 정보 격차는 소득 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
물론 정보 격차 이론에 반기를 드는 세력도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이론은 이른바 천장 효과(Ceiling Effect). 정보를 얻는 속도에 차이가 나기는 하겠지만 결국 천장에까지 이르면 한 군데서 만날 것이기 때문에 불평등 문제는 야기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논쟁은 끊이지 않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정보는 한쪽으로만 흘러왔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출현과 대중화는 지구촌의 개인들을 정보의 수용자에서 정보의 생산자로 자리바꿈하게 만들었다. 기껏해야 캔맥주를 홀짝거리면서 TV만 바라보고 있으면 정보를 섭취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정보화에서 앞선 개인들은 이미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만의 정보창고로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이메일을 통해 세계 어느 나라의 사람들과도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전달받는 입장에서 정보의 당당한 생산자로 탈바꿈했다는 말이다. 정보화에서 뒤처진 사람은 물론 이러한 양방향성으로부터 전적으로 소외당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정보화 정도를 매개로 한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정보가 곧 무기이고 돈인 시대에서 정보에서의 소외는 곧바로 부(富)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디지털화에 따른 빈부 격차는 단순히 정보 부자와 정보 빈곤층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역적으로 보더라도 디지털 인프라가 집중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격차는 벌어지게 마련. 도시와 농어촌간, 중앙과 지방간 정보화 격차는 필연적으로 소득 격차를 배가시키게 된다.
그렇다면 디지털화에 따른 빈부 격차 문제는 이렇게 전문가나 학자들만이 미래학적인 관점에서 우려하는 대상으로만 남아 있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미래학을 전공하는 한양대 공성진교수는 “네트워크를 통해 나스닥 시장의 구체적 동향까지 장악한 기관투자가들만이 돈을 벌고 정보에서 소외된 개인투자자들이 몰락하는 것도 정보화로 인한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폭발 증시에서건 폭락 장세에서건 늘 개인투자자들을 골탕먹여온 ‘개미들의 몰락’은 바로 디지털 불평등 현상의 또다른 표현에 다름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디지털화가 정보 격차를 유발하고 이것이 곧바로 소득 불평등 심화로 이어진다는 가정이 아직 구체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중앙대 전석호교수(신문방송학)는 “실제로 디지털화로 인해 빈부 격차가 심화되었는지는 적어도 5년의 시차를 두고 검토해야 할 문제다. 아직은 가설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계는 디지털화의 급속한 진전이 몰고올 재앙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사전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 초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디지털 불평등 문제는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세계적 경영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세계의 주요기업 CEO 1020명을 대상으로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50%가 ‘인터넷은 개발도상국간 부의 차이 등 세계적 빈부 격차를 더욱 확대시킬 것’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 또는 비정부기구(NGO)가 아닌 기업인들이 디지털의 미래상에 대해 암울한 답변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기업인들이야말로 디지털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챙겨온 장본인들이 아니던가!
또 오는 11월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해 디지털 빈부격차를 논의하기 위한 경제 포럼이 열릴 예정이다. ‘전자상거래에 관한 신흥시장 경제포럼’이라고 이름붙인 이 포럼에는 OECD 회원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 등 35개 비회원국들도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경제발전에 따르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수많은 권고안을 내놓았던 OECD조차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명쾌한 결론을 제시할 것 같지는 않다. 파리 OECD 한국대표부 서병조서기관은 “이번 포럼이 디지털 빈부 격차 문제에 관해 정책 권고안을 내놓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며, 각국의 개별적 경험을 공유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히려 디지털 불평등이 몰고올 재앙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고 나선 사람들은 시애틀 뉴라운드 협상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세계화 반대론자들이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이들을 ‘연대’의 틀로 묶어주거나 한 자리로 끌어모았던 힘 역시 인터넷이라는 디지털의 총아였다. 이미 이들 ‘시애틀 독립군’은 뉴라운드 협상이 열리기 몇 달 전부터 인터넷이라는 ‘제국주의자들의 도구’를 이용해 ‘시애틀로! 시애틀로!’를 외쳐대지 않았던가.
고려대 박길성교수(사회학과)는 “디지털화에 따른 빈부격차 심화 문제의 심각성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지만 규범적 차원의 대책 외에는 별다른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대학에서 정보사회학을 강의하는 박교수가 내놓는 해법은 꽤 구체적이다.
“신문이나 잡지의 경우만 해도 유료 사이트가 대부분인 미국에서는 똑같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액수가 많은 만큼 정보화에 따른 빈부 격차는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크다. 결국 우리나라 같은 경우 인터넷 광고를 좀더 많이 싣더라도 무료 사이트를 확대해 정보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 디지털 빈부 격차를 줄이는 해결방안이 될 것이다.”
나스닥 거품 붕괴 시나리오라는 노이로제에 늘 시달리면서 호시탐탐 유료 서비스화를 노리는 요즘 벤처기업가들에게는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박교수의 발언은 매우 시사적이다. 물론 디지털 불평등이 초래되더라도 일단 떼돈을 번 뒤, HP의 CEO 칼리 피오리나처럼 이를 해소하기 위해 또다시 떼돈을 내놓겠다면 말릴 수야 없겠지만….
지난 4월17일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 지역을 찾은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디지털 불평등(Digital Divide) 해소를 역설하고 나섰다. 클린턴 대통령은 “기술의 발전은 과거 어느 때보다 빨리 많은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 있는 반면 경제적 불평등과 계층 분화 현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그 기로에 서 있다”고 선언했다.
증시 ‘개미의 몰락’이 그 상징
비슷한 시각 북미 대륙의 반대편에 위치한 세계 정치 경제의 중심지 워싱턴. IMF(국제통화기금)-IBRD(세계은행) 연차총회가 열리는 회담장 주변에는 IMF식 세계화에 반대하는 비정부기구(NGO) 시위대가 경찰과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격렬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이 외쳐대고 있는 구호 역시 클린턴의 우려와 비슷한 ‘빈부 격차를 해소하라’는 것이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국제자본의 국경간 이동이라는 ‘서로 다른’ 현상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미국 대륙의 양쪽 끝에서 ‘빈부 격차와 불평등’이라는 인류 공통의 적을 규탄하는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트 팔로 알토에서 열린 행사에는 클린턴뿐만 아니라 20여명의 하이테크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이 동참했고 LA 레이커스의 농구 스타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한 매직 존슨, 뉴욕 리버티의 레베카 로보 등 전`-`현직 스포츠 스타들도 참여해 미개발 지역 정보화에 대한 지원을 함께 호소하기까지 했다. 또 휼렛패커드(HP)의 CEO인 칼리 피오리나는 이 자리에서 ‘HP 디지털 빌리지 프로그램’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HP@학교’ ‘HP@지역사회센터’ ‘HP@가정’ 등 세 가지 지원센터를 만들어 정보화에 뒤처진 아이들이나 주민들에게 인터넷을 가르치고 정보화의 물결에 동참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1500만달러나 되는 돈을 내놓기까지 했다. 가히 디지털로 인한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데 미국 정부와 기업, 그리고 사회가 함께 나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 최대의 디지털 강국인 미국 정부는 왜 디지털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대통령부터 발벗고 나서야 했을까.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그리고 케이블TV나 컴퓨터 등 새로운 매체가 세상에 선보일 때마다 사회학자나 문명비평가들이 단골 메뉴로 내세웠던 주제는 바로 ‘정보 불평등’이었다. 또 이러한 뉴미디어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도 정보화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늘 잠재적 사회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 이른바 정보 격차의 문제. 정보화는 정보 격차를 낳고 정보 격차는 소득 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
물론 정보 격차 이론에 반기를 드는 세력도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이론은 이른바 천장 효과(Ceiling Effect). 정보를 얻는 속도에 차이가 나기는 하겠지만 결국 천장에까지 이르면 한 군데서 만날 것이기 때문에 불평등 문제는 야기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논쟁은 끊이지 않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정보는 한쪽으로만 흘러왔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출현과 대중화는 지구촌의 개인들을 정보의 수용자에서 정보의 생산자로 자리바꿈하게 만들었다. 기껏해야 캔맥주를 홀짝거리면서 TV만 바라보고 있으면 정보를 섭취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정보화에서 앞선 개인들은 이미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만의 정보창고로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이메일을 통해 세계 어느 나라의 사람들과도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전달받는 입장에서 정보의 당당한 생산자로 탈바꿈했다는 말이다. 정보화에서 뒤처진 사람은 물론 이러한 양방향성으로부터 전적으로 소외당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정보화 정도를 매개로 한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정보가 곧 무기이고 돈인 시대에서 정보에서의 소외는 곧바로 부(富)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디지털화에 따른 빈부 격차는 단순히 정보 부자와 정보 빈곤층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역적으로 보더라도 디지털 인프라가 집중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격차는 벌어지게 마련. 도시와 농어촌간, 중앙과 지방간 정보화 격차는 필연적으로 소득 격차를 배가시키게 된다.
그렇다면 디지털화에 따른 빈부 격차 문제는 이렇게 전문가나 학자들만이 미래학적인 관점에서 우려하는 대상으로만 남아 있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미래학을 전공하는 한양대 공성진교수는 “네트워크를 통해 나스닥 시장의 구체적 동향까지 장악한 기관투자가들만이 돈을 벌고 정보에서 소외된 개인투자자들이 몰락하는 것도 정보화로 인한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폭발 증시에서건 폭락 장세에서건 늘 개인투자자들을 골탕먹여온 ‘개미들의 몰락’은 바로 디지털 불평등 현상의 또다른 표현에 다름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디지털화가 정보 격차를 유발하고 이것이 곧바로 소득 불평등 심화로 이어진다는 가정이 아직 구체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중앙대 전석호교수(신문방송학)는 “실제로 디지털화로 인해 빈부 격차가 심화되었는지는 적어도 5년의 시차를 두고 검토해야 할 문제다. 아직은 가설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계는 디지털화의 급속한 진전이 몰고올 재앙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사전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 초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디지털 불평등 문제는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세계적 경영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세계의 주요기업 CEO 1020명을 대상으로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50%가 ‘인터넷은 개발도상국간 부의 차이 등 세계적 빈부 격차를 더욱 확대시킬 것’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 또는 비정부기구(NGO)가 아닌 기업인들이 디지털의 미래상에 대해 암울한 답변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기업인들이야말로 디지털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챙겨온 장본인들이 아니던가!
또 오는 11월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해 디지털 빈부격차를 논의하기 위한 경제 포럼이 열릴 예정이다. ‘전자상거래에 관한 신흥시장 경제포럼’이라고 이름붙인 이 포럼에는 OECD 회원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 등 35개 비회원국들도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경제발전에 따르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수많은 권고안을 내놓았던 OECD조차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명쾌한 결론을 제시할 것 같지는 않다. 파리 OECD 한국대표부 서병조서기관은 “이번 포럼이 디지털 빈부 격차 문제에 관해 정책 권고안을 내놓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며, 각국의 개별적 경험을 공유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히려 디지털 불평등이 몰고올 재앙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고 나선 사람들은 시애틀 뉴라운드 협상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세계화 반대론자들이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이들을 ‘연대’의 틀로 묶어주거나 한 자리로 끌어모았던 힘 역시 인터넷이라는 디지털의 총아였다. 이미 이들 ‘시애틀 독립군’은 뉴라운드 협상이 열리기 몇 달 전부터 인터넷이라는 ‘제국주의자들의 도구’를 이용해 ‘시애틀로! 시애틀로!’를 외쳐대지 않았던가.
고려대 박길성교수(사회학과)는 “디지털화에 따른 빈부격차 심화 문제의 심각성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지만 규범적 차원의 대책 외에는 별다른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대학에서 정보사회학을 강의하는 박교수가 내놓는 해법은 꽤 구체적이다.
“신문이나 잡지의 경우만 해도 유료 사이트가 대부분인 미국에서는 똑같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액수가 많은 만큼 정보화에 따른 빈부 격차는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크다. 결국 우리나라 같은 경우 인터넷 광고를 좀더 많이 싣더라도 무료 사이트를 확대해 정보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 디지털 빈부 격차를 줄이는 해결방안이 될 것이다.”
나스닥 거품 붕괴 시나리오라는 노이로제에 늘 시달리면서 호시탐탐 유료 서비스화를 노리는 요즘 벤처기업가들에게는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박교수의 발언은 매우 시사적이다. 물론 디지털 불평등이 초래되더라도 일단 떼돈을 번 뒤, HP의 CEO 칼리 피오리나처럼 이를 해소하기 위해 또다시 떼돈을 내놓겠다면 말릴 수야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