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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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이런 언어교육은 없다”

제2외국어 주입식 파행교육 심각…“사회에서 못써먹는 죽은 교육 하는 꼴”

  • 입력2006-04-04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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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 이런 언어교육은 없다”
    6. 다음 밑줄 친 곳에 들어갈 표현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A: 山田さんを しって いますか

    B: はい. _________ .

    ① しりました ② しります ③ しりません ④ します ⑤ しって います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1학년 대학입시 제2외국어 수능시험의 출제유형으로 제시한 일본어 문제 중 하나다.



    3월17일 서울 K고에서 기자가 만난 3학년생 이모군은 교육과정평가원의 이 모델을 보고 며칠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군은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독일어를 포기하고 일어를 ‘독학’하기로 거의 마음을 굳힌 상태다. 다음은 이군의 말. “난 일어를 거의 못하지만 이 문제는 한눈에 풀었다. 정답은 ⑤번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야마타씨를 알고 있습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가 되는 거다. 일어 수능시험이 정말 이 정도 수준이라면 난 학교수업을 포기하는 쪽을 택하겠다.”

    이군은 2학년 때 1년간 독일어 수업을 들었지만 별로 배울 마음이 없어서 실력이 형편없다고 했다. 이군의 반 학생 대부분도 독일어 동사 하나 변변히 못외운다. 이들은 “3월 4일 첫 모의고사를 본 뒤 과목변경을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73개 대학이 2001년부터 제2외국어를 대학입시에 반영하기로 한 것은 고등학교의 제2외국어 교육을 ‘정상화’시켜 보겠다는 교육부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지켜본 고3 교실에선 교육부의 의도가 실패할 것 같은 징조가 여기서기서 나타나고 있었다.

    현재 고3학생들은 2학년 때까지 독일어Ⅰ, 프랑스어Ⅰ, 일어Ⅰ, 중국어Ⅰ, 러시아어Ⅰ, 스페인어Ⅰ 중 하나를 배웠다. 과연 제대로 수업이 이뤄졌을까. 서울시교육청 김성기장학사는 “고교 제2외국어 교육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 모 고등학교 독일어교사의 말은 다르다. “제2외국어가 입시에 반영된다는 교육부 발표는 지금 고3생이 고교 입학할 때 이미 나왔었다. 그러나 교사나 학생들은 ‘그때 가봐야 안다’며 반신반의했다. 교육부정책이 신뢰를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내가 진행한 독일어Ⅰ 수업시간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 중간고사 등 시험은 매우 쉽게 출제해왔다. 학생들은 독일어에 대해 무지에 가깝다.”

    전국의 거의 모든 학교에서 제2외국어는 이렇게 ‘시간 때우기’로 흘렀을 것이라는 게 이 교사의 생각이다.

    제2외국어가 입시에 반영되는 올해도 정상적인 커리큘럼이 지켜질 리 없다고 한다. 서울의 다른 고교 독일어교사 말이다. “수능범위는 독일어Ⅰ에 국한됐다. 고3 때는 독일어Ⅱ를 가르치도록 돼 있는데 수업이 안될 것 같다. 시험과목인 독일어Ⅰ의 복습과 자습으로 채울 예정이다. 제2외국어가 입시에 반영돼도 제2외국어 교육은 비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프랑스어 교사는 입시반영으로 학생들이 눈길도 안주던 제2외국어 교과서를 들춰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좋은 변화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시험 위주 주입식교육의 ‘원죄’는 도저히 극복될 수 없더라고 했다. 학교 문만 나서면 써먹지도 못하는 죽은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로학원 김용근평가실장은 “공교육이 학생들의 기호를 무시한 채 제2외국어 선택권을 봉쇄한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 184개 일반고교 중 제2외국어를 한 과목만 두고 있는 학교가 70여개교, 나머지 대다수 학교는 두 과목을 두고 있다. 고려학력평가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 45.7%(1207명 중 551명)의 입시생이 일어를 선호했지만 일어를 가르치는 서울시내 일반고교는 21개교뿐이다. 서울 강남역 부근 K학원에서 만난 고3 학부모 진영숙씨(50)는 “아이가 제2외국어 과목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 차라리 수업을 포기하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한 독일어교사는 현재의 독어-불어 위주 교육과 고교생들의 의식 사이에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체감했다고 한다. “서울 J고에서 최근 선택과목으로 일어를 추가했습니다. 그러자 일어반이 10여개 반이 됐고 독일어반은 한 반도 제대로 채우지 못했습니다. 서울시내 독일어 교사들이 모두 깜짝 놀랐죠.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겁니다.”

    교육부는 일어가 쉽다는 생각을 불식하기 위해 다른 제2외국어를 쉽게 출제할 계획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대과거, 과거완료, 수동태 등 특정문법문제는 출제에서 제외한다는 발표도 나왔다. 이에 대해 기자가 만난 제2외국어 교사들은 “한 마디로 우리 나라 교육이 갈 데까지 갔다”는 침통한 반응을 보였다.

    서울 K고 한 교사의 말이다. “수동태는 어려우니 그건 빼고 언어를 배우라는 발상 아닙니까? 과거완료 문장이 나오면 건너뛰고 공부하는 학생도 나오겠죠. 세계 어디에도 이런 언어교육은 없습니다.”

    이 교사는 “교사수급 등 근본적 처방 없이 제2외국어 교육 문제를 대충 봉합하려 한 것이 또다른 교육적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입시반영이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듯 두 손 놓고 있는 교육부를 지적하는 말이다.

    “시험은 시험” 족집게 과외 ‘꿈틀’

    학원 ‘일어반’등 재학생 만원사례 … 치맛바람 예고


    “제2외국어가 대학입시에 반영됐으니 ‘당연히’ 제2외국어 과외도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난해까지 제2외국어 공교육은 공친 거나 다름없으니 과외수요는 더 커질지 모르죠. 다만 지금은 제2외국어를 쉽게 출제한다는 교육부 발표내용에 대한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탐색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강남대일학원 김숙 상담실장의 올해 ‘제2외국어 과외시장’ 전망이다. 이 학원은 최근 기민하게 제2외국어 반들을 개설하고 있다. 가장 인기있는 반은 역시 일어반. 문을 열자 마자 재학생들로 꽉 찼다. 강동대성입시학원도 지난 겨울부터 일어입시반을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서울 명일동 Y입시학원 관계자는 “아무리 쉬워도 시험은 시험이다. 학생들은 공교육만으론 불안해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제2외국어는 그만큼 과외가 파고들 여지가 많다는 의미로 들린다. 특히 올해는 수능시험을 불과 8개월여 남겨두고 과목을 바꾸는 재학생이나 재수생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여 ‘고액 족집게 과외’가 기승을 부릴 여지가 많다고 학원가에선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제2외국어 입시반영 폭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종로학원).

    제2외국어 족집게 과외를 한 적이 있는 K씨(33)의 경험담에는 음미해볼 만한 대목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때 불어를 했습니다. 무슨 접두어가 그렇게 복잡하고 단어는 얼마나 어려운지…. 불어는 한마디로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대학은 불어불문과로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불어를 배우니 불어가 딴판이었습니다. 언어의 ‘논리’와 ‘결’을 익힌 것이죠. 단어 외우기도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한 고등학생에게 내가 익힌 방법대로 불어 과외를 해주었습니다. 그 학생은 시험만 보면 만점을 받아왔습니다. 재미없는 언어는 없습니다. 제2외국어 교육은 학교가 언어의 뒤편에 숨어 있는 흥미를 불러일으켜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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