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평균 3시간 정도 해요. 처음엔 그냥 오락하는 것처럼 했는데 백댄서가 됐으면 좋겠어요.”
힙합 바지에 점퍼를 입고 펌프(pump) 기계 위에서 춤추던 권지은양(16)은 붉은 뺨 위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서울 숙명여대 앞의 한 ‘펌프텍’. 속칭 굴다리 골목으로 통하는 이곳에만 앞뒤를 마주하고 4개의 펌프텍이 있다. 모두 올해 들어 문을 연 곳이다. 지난해 테크노와 DDR로 일기 시작한 ‘춤바람’은 올해 펌프로 옮겨가 뜨거운 춤의 열기를 이루고 있는 중이다.
펌프는 기계 위에서 발판을 밟는다는 점에서 DDR와 비슷하다. 그러나 팝음악에 맞춰 4개의 발판을 밟는 DDR와 달리 펌프는 우리 가요 리듬에 맞춰 5개의 발판으로 춤을 추게 하는 기계다.
“스텝으로만 이뤄지는 DDR와는 완전히 달라요.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몸동작이 훨씬 다양하고 화려하죠.”
최근 DDR 밀치고 ‘펌프’ 각광
펌프 마니아라는 김채린씨(숙명여대)의 말이다. 과연 발뿐 아니라 손과 무릎, 팔꿈치로 발판을 찍는 ‘아크로바트’에 사방에서 휘파람과 찬사가 터져나왔다. 브레이크 댄스에서 봤던 회전이나 슬라이드와 비슷하다. ‘스테퍼’는 화면도 보지 않는다. 이미 ‘족보’(足譜)를 다 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구경하던 한 학생은 “저런 동작을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펌프의 또 한 가지 특징은 ‘퍼포먼스’가 용이하다는 것. 일종의 상황극을 기계 위에서 연기하는 것으로 ‘지하철 추행’ ‘복싱’ 등의 제목이 붙는다. 펌프 퍼포먼스 동호회 ‘철가면’의 한 회원은 “한복 입고 큰 꽃을 머리에 꽂고 ‘꽃파는 소녀’ 퍼포먼스를 했었다”고 말했다.
올 초부터 일기 시작한 펌프 열기로 적잖은 오락실이 ‘펌프텍’이나 ‘댄스방’으로 업종변경을 해 이화여대 앞에 10여개, 서울대 부근에 7~8개가 성업 중이다. 또한 억대의 상금을 내건 ‘바이코리아배’ 같은 대규모 댄스 대회가 열려 ‘스테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한다.
물론 DDR나 펌프처럼 ‘기계가 찍어주는 화살표에 맞춰’ 춤을 구성해서 추는데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클럽에서 춤을 춘다. 우리나라에서 테크노의 원산지가 된 홍익대 앞의 ‘101’ ‘108’ ‘MI’ 등은 여전히 자유로운 테크노 마니아들로 붐빈다. 비교적 조용하게 춤을 추는 ‘해외파’와 이정현 전지현 등을 흉내내 격렬하게 춤을 추는 ‘국내파’로 확연히 나뉘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하이텔 댄스뮤직동호회 운영진이자 비평가인 조영준씨(30)는 “나이트클럽이나 디스코텍으로 상징되던 80년대의 춤문화가 술을 마시고 자신을 잃어버리기 위한 것이라면 요즘 사람들은 음악을 느끼는 순간에 춤을 춘다”고 말한다.
2, 3년 전부터 뚜렷해지기 시작한 댄스의 열기는 음반시장 판도도 바꿔놓았다. 댄스음악 편집 앨범이 뚜렷한 성장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플래티넘’ ‘밀레니엄’ 등의 편집 앨범은 발라드에서 테크노까지 장르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곡들을 댄스버전으로 편곡해 담았는데 ‘댄스에 순정’처럼 10만장 판매를 훌쩍 넘긴 앨범들도 적지 않다.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댄스 광고들도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 전지현의 아찔한 테크노댄스와 정우성과 고소영의 ‘그리스’ 패러디 광고는 ‘15초가 짧아’ 아쉬움을 주는 광고들.
춤을 못추는 ‘춤치’가 ‘음치’ 못지 않은 ‘폭탄’ 취급을 받으면서 춤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힙합에서 재즈, 라틴 댄스, 스포츠 댄스를 가르치는 학원까지 교습소들의 종류도 무척 다양해졌다. ‘무도장’이란 말이 주는 음습한 느낌과는 달리 최근의 교습소들은 스포츠센터처럼 밝고 쾌적하다. 3개월 전 문을 연 신촌의 댄스교습소 ‘Xn’의 김윤정원장은 “요즘 젊은이들의 꿈이 어떻게든 튀는 것이란 점에 착안해 교습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라고 말했다. 친구를 따라왔다는 한 여중생은 “요즘은 춤을 못추면 엄청 쪽팔린다”며 주저없이 등록을 했다.
한달 전부터 힙합 댄스를 배우고 있다는 이은진양(고2)은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라며 “부모님도 적극 찬성하셨다”고 말했다.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해요. 창피해하면 모션이 안되잖아요. 덕분에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했어요.” 386세대로 뒤늦게 ‘춤바람’이 나 재즈 댄스를 배우고 있다는 회사원 이옥태씨(36)는 어느 날 “TV에서 재즈 댄스 추는 장면을 보고 바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딸과 부인에게만 알렸을 뿐, 직장 동료들은 내가 춤을 춘다고는 상상도 못할 것”이라며 쑥스러워했다.
그의 모습에 수오 마사유키의 화제작 ‘쉘 위 댄스’의 주인공이 겹쳐진다. 주인공은 무의미한 일상을 반복하다 춤을 배우면서 삶을 사랑하게 되는 인물이다.
실제로 댄스 교습이든, 테크노 댄스든, 펌프든, 지금의 춤바람에는 ‘몸-또다른 나의 발견’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춤에 인생을 건 젊은이들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 학교와 결별했다는 강민호군(19)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을 몽땅 춤을 배우는 데 쓴다. 그는 “장차 백댄서가 되는 것이 꿈”이다.
조영준씨는 “인터넷 등으로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면서 몸을 움직이고 싶은 욕구는 커지게 된다. 펌프의 유행은 바로 그런 필요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 의미에서 테크노나 DDR가 불러일으킨 춤바람이 일시적 유행으로 사라지기보다는 주류의 문화와 오락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힙합 바지에 점퍼를 입고 펌프(pump) 기계 위에서 춤추던 권지은양(16)은 붉은 뺨 위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서울 숙명여대 앞의 한 ‘펌프텍’. 속칭 굴다리 골목으로 통하는 이곳에만 앞뒤를 마주하고 4개의 펌프텍이 있다. 모두 올해 들어 문을 연 곳이다. 지난해 테크노와 DDR로 일기 시작한 ‘춤바람’은 올해 펌프로 옮겨가 뜨거운 춤의 열기를 이루고 있는 중이다.
펌프는 기계 위에서 발판을 밟는다는 점에서 DDR와 비슷하다. 그러나 팝음악에 맞춰 4개의 발판을 밟는 DDR와 달리 펌프는 우리 가요 리듬에 맞춰 5개의 발판으로 춤을 추게 하는 기계다.
“스텝으로만 이뤄지는 DDR와는 완전히 달라요.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몸동작이 훨씬 다양하고 화려하죠.”
최근 DDR 밀치고 ‘펌프’ 각광
펌프 마니아라는 김채린씨(숙명여대)의 말이다. 과연 발뿐 아니라 손과 무릎, 팔꿈치로 발판을 찍는 ‘아크로바트’에 사방에서 휘파람과 찬사가 터져나왔다. 브레이크 댄스에서 봤던 회전이나 슬라이드와 비슷하다. ‘스테퍼’는 화면도 보지 않는다. 이미 ‘족보’(足譜)를 다 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구경하던 한 학생은 “저런 동작을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펌프의 또 한 가지 특징은 ‘퍼포먼스’가 용이하다는 것. 일종의 상황극을 기계 위에서 연기하는 것으로 ‘지하철 추행’ ‘복싱’ 등의 제목이 붙는다. 펌프 퍼포먼스 동호회 ‘철가면’의 한 회원은 “한복 입고 큰 꽃을 머리에 꽂고 ‘꽃파는 소녀’ 퍼포먼스를 했었다”고 말했다.
올 초부터 일기 시작한 펌프 열기로 적잖은 오락실이 ‘펌프텍’이나 ‘댄스방’으로 업종변경을 해 이화여대 앞에 10여개, 서울대 부근에 7~8개가 성업 중이다. 또한 억대의 상금을 내건 ‘바이코리아배’ 같은 대규모 댄스 대회가 열려 ‘스테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한다.
물론 DDR나 펌프처럼 ‘기계가 찍어주는 화살표에 맞춰’ 춤을 구성해서 추는데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클럽에서 춤을 춘다. 우리나라에서 테크노의 원산지가 된 홍익대 앞의 ‘101’ ‘108’ ‘MI’ 등은 여전히 자유로운 테크노 마니아들로 붐빈다. 비교적 조용하게 춤을 추는 ‘해외파’와 이정현 전지현 등을 흉내내 격렬하게 춤을 추는 ‘국내파’로 확연히 나뉘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하이텔 댄스뮤직동호회 운영진이자 비평가인 조영준씨(30)는 “나이트클럽이나 디스코텍으로 상징되던 80년대의 춤문화가 술을 마시고 자신을 잃어버리기 위한 것이라면 요즘 사람들은 음악을 느끼는 순간에 춤을 춘다”고 말한다.
2, 3년 전부터 뚜렷해지기 시작한 댄스의 열기는 음반시장 판도도 바꿔놓았다. 댄스음악 편집 앨범이 뚜렷한 성장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플래티넘’ ‘밀레니엄’ 등의 편집 앨범은 발라드에서 테크노까지 장르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곡들을 댄스버전으로 편곡해 담았는데 ‘댄스에 순정’처럼 10만장 판매를 훌쩍 넘긴 앨범들도 적지 않다.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댄스 광고들도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 전지현의 아찔한 테크노댄스와 정우성과 고소영의 ‘그리스’ 패러디 광고는 ‘15초가 짧아’ 아쉬움을 주는 광고들.
춤을 못추는 ‘춤치’가 ‘음치’ 못지 않은 ‘폭탄’ 취급을 받으면서 춤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힙합에서 재즈, 라틴 댄스, 스포츠 댄스를 가르치는 학원까지 교습소들의 종류도 무척 다양해졌다. ‘무도장’이란 말이 주는 음습한 느낌과는 달리 최근의 교습소들은 스포츠센터처럼 밝고 쾌적하다. 3개월 전 문을 연 신촌의 댄스교습소 ‘Xn’의 김윤정원장은 “요즘 젊은이들의 꿈이 어떻게든 튀는 것이란 점에 착안해 교습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라고 말했다. 친구를 따라왔다는 한 여중생은 “요즘은 춤을 못추면 엄청 쪽팔린다”며 주저없이 등록을 했다.
한달 전부터 힙합 댄스를 배우고 있다는 이은진양(고2)은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라며 “부모님도 적극 찬성하셨다”고 말했다.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해요. 창피해하면 모션이 안되잖아요. 덕분에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했어요.” 386세대로 뒤늦게 ‘춤바람’이 나 재즈 댄스를 배우고 있다는 회사원 이옥태씨(36)는 어느 날 “TV에서 재즈 댄스 추는 장면을 보고 바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딸과 부인에게만 알렸을 뿐, 직장 동료들은 내가 춤을 춘다고는 상상도 못할 것”이라며 쑥스러워했다.
그의 모습에 수오 마사유키의 화제작 ‘쉘 위 댄스’의 주인공이 겹쳐진다. 주인공은 무의미한 일상을 반복하다 춤을 배우면서 삶을 사랑하게 되는 인물이다.
실제로 댄스 교습이든, 테크노 댄스든, 펌프든, 지금의 춤바람에는 ‘몸-또다른 나의 발견’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춤에 인생을 건 젊은이들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 학교와 결별했다는 강민호군(19)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을 몽땅 춤을 배우는 데 쓴다. 그는 “장차 백댄서가 되는 것이 꿈”이다.
조영준씨는 “인터넷 등으로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면서 몸을 움직이고 싶은 욕구는 커지게 된다. 펌프의 유행은 바로 그런 필요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 의미에서 테크노나 DDR가 불러일으킨 춤바람이 일시적 유행으로 사라지기보다는 주류의 문화와 오락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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