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HBOMax를 통해 공개된 ‘프렌즈: 리유니언’ 스페셜 에피소드. ‘프렌즈’가 2004년 종영하고 처음으로 주인공 6명이 완전체로 모였다. [HBOMAX 캡처]
현모 미국 시트콤 ‘프렌즈’(1994년부터 2004년까지 방송된 인기 시트콤으로, 뉴욕 맨해튼에 사는 여섯 청춘 남녀의 우정과 사랑, 성장을 담았다)의 주제 아닌가요?
영대 맞아요. 17년 만에 다시 돌아온 ‘프렌즈: 리유니언’(당초 ‘프렌즈’ 25주년을 기념하고자 지난해 방송을 목표로 기획됐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미뤄졌다. 이번 특별판은 대본이 있는 시트콤 형식은 아니다), 현모 님도 보셨나 봐요?
현모 네. 보는 내내 계속 소름 쫙! 눈물도 그렁그렁…, 감동의 도가니. ㅠㅠ
영대 저는 이제 가족이 중심인 삶을 살다 보니, 제작자가 밝힌 저 한 줄 요약이 새삼 무척 애틋하더라고요.
현모 저도 그랬어요. 어릴 땐 ‘프렌즈’를 보면서 막연하게 나도 나중에 크면 그렇게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살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훌쩍 성인이 됐고 결혼해 그럴 기회마저 없어졌잖아요. 그게 아깝다 억울하다 그런 건 아니고, 하나의 선택만 가능하다는 당연한 진리 때문에 자연스럽게 잃어버린 것들이 그리워 조금 짠하더라고요.
영대 저도 눈물이 핑 돌았어요. 나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나, 있었겠죠. 아마, 가족과의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과는 또 다른 우정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던 한때.
현모 저는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것 중 하나가 시간의 흐름이거든요.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한 번 훑고 지나간 곳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요. 배우들의 과거 완전 앳되고 애기 같던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도 슬프더라고요. 누구든 이삼십대 청춘을 한 번 겪고 나면 그 시기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너무 아쉬워요.
영대 어른들이 그러잖아요, 그 시절 금방 간다고. 근데 실제로 생각해봐도 친구들과 놀던 젊은 시절은 정말 짧은 기간이었어요. 짧아서 더더욱 애잔하죠. 그걸 지금에서야 자각했어요.
현모 장장 10년을 이어온 그 인기 시트콤도 주인공들이 극 중에서 각자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종영해야 했듯이, 우리의 젊은 날도 어찌 보면 느리든 빠르든 언젠가는 막을 내리게 돼 있는 거고요. 종영 후 지금까지 제작진이건, 시청자건 전부 똑같은 양의 세월을 흘려보냈기 때문에 결국 같은 지점에서 공감대가 생기는 거 같아요. ㅜㅜ
영대 저는 사실 친구 소중한 걸 어릴 때는 잘 몰랐어요.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고, 연락도 잘 안 하는 편이거든요. 그럼에도 제 곁을 지켜준 ‘베프’가 늘 셋 정도는 있었더라고요. ‘프렌즈: 리유니언’을 보면서 그 친구들 생각에 맘이 몽글몽글해졌어요.
현모 너무나도 공감해요. 저는 특히 15~20년 지기들이 전에도 소중했지만, 특히 최근 방송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더욱더 소중해졌어요. 방송에서 보이는 안현모가 아닌 실제 안현모를 무척 잘 아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건 정말로 큰 축복이에요.
영대 친구란 어쩌면 나랑 제일 잘 맞는 사람이 아니라, 한참 부족하고 철없던 날들의 나를 알고도 끝까지 남아준 사람들 같아요. 궁합이라는 걸로 따지면 지금도 친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죠. 이를테면 저랑 현모 님처럼요. 그렇지만 그게 15~20년 친구랑은 다르잖아요.
현모 맞아요. 제가 얼마 전 베프랑 여행을 갔을 때 정말 놀랐던 게 뭐냐면요. 저희가 새벽 4시까지 떠들었거든요. 그 내용이 지난 20년의 집대성이었어요. 나의 깨알 같은 옛날 에피소드들을 친구가 무척이나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영대 흑역사 같은 거요?
현모 아뇨. 흑역사로 치부하기엔 더 아프고 무거운, 내가 확 지워버린 일들 있잖아요. 근데 그 모든 걸 친구가 또렷하게 다 끄집어내는데 ‘와, 얘는 내 굴곡마다 항상 내 편에서 내 옆에 있어줬구나’하는 깨달음이 엄청 컸어요. 게다가 이제는 우리가 좀 더 성숙해졌다는 점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걸 보면서 진정한 친구가 있다는 게 진짜 진짜 감사했죠.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주인공들. [구글 캡처]
현모 그죠. ‘프렌즈’로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다양한 사람의 인터뷰를 보면서 방탄소년단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실제로 잠깐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역시 오늘날 전 세계 수많은 이에게 ‘프렌즈’ 같은 존재니까요.
영대 맞아요. 또 저는 이렇게 오래 방영된 드라마를 보면 살짝 소름 끼치는 게 한 배우가 자신의 젊음을 그야말로 통째로 바친 거잖아요. 그만큼 극 중 인물과 그걸 연기한 배우가 완벽하게 붙어 있어요. 드라마 설정을 배우도 점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하나가 된 거죠.
현모 그러니까요! 대본 리딩을 하는 현재 장면이랑 과거 촬영 장면을 교차 편집해 보여줄 때 시간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연기 싱크로가 완벽하게 일치해 경이로울 정도였어요. 중간 중간 편하게 앉아 진행자랑 토크쇼 형식으로 대화할 때도 말투며 표정이며 다들 극 중 캐릭터 자체더라고요.
영대 페르소나가 나인지, 내가 페르소나인지 모르는 어떤 애매한 영역이 생긴 거예요.
현모 아! 그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몇 년 전 들은 인상 깊은 구절이 떠올랐어요.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틴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이 그러셨어요. 보통은 내가 작품을 만든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작품이 나를 만든다고. 진짜 예술가는 자신과 작품이 혼연일체가 되는 거죠.
영대 정확히 알겠어요. 예술가는 아니지만 저도 글을 쓸 때 분명 글에서만 나타나는 자아가 있는데, 그 자아가 나를 이끄는 거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현모 대단하신데요!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에 예컨대 제니퍼 애니스턴이 다른 영화에 출연해도 잠깐이나마 늘 레이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도 해요.
영대 그나저나 각자 레이철과 로스를 연기한 제니퍼 애니스턴과 데이비드 쉬머가 실제로도 서로에게 감정이 있었다는 비하인드는 정말 대박 아닌가요? 결국 맺어진 결론이 진짜로 좋아하는 마음과 우정에서 비롯된 거라니…! 그 과정이 제 나름 진정성이 있더라고요.
현모 우리나라였으면 절대 솔직하게 말 안 했을 텐데. ㅋㅋ 다 지난 일이니까, 애틋한 눈빛으로 사실대로 추억하면서 그 감정을 역할에 쏟아부었다고 털어놓는 게 애잔했어요.
영대 그러니까 ‘프렌즈’는 배우들에게 단지 출연작이 아니에요. 그들 삶의 한 부분이죠. 그것도 가장 아름다웠던 날들이요. 이제 쇼는 끝났고요.
현모 엉엉 ㅠㅠ 이제 앞으로 6명이 한자리에 다시 모이는 이런 특집은 없을 거라는 대목도 넘 아쉬웠어요.
영대 피비 역의 리사 쿠드로도 이 이상의 에피소드는 없으면 좋겠다고 했잖아요. 좋은 결말 그대로 놔두고 싶다고. 영원히 간직하고픈 아련한 추억인데, 그걸 현실 세계로 굳이 다시 꺼내 와 망치고 싶지 않은 심정, 너무나 이해하죠.
현모 어떡하죠. 진짜 진짜 즐거웠는데….
영대 그럼 저처럼 매일 자기 전 한 편씩 다시보기 하세요. ㅋㅋ
현모 저도 RM처럼 집에 DVD 박스 세트 있는데…. Could I BE watching any more episodes?(극 중 조이의 유행어 “Could I BE wearing any more clothes?”)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