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국 프로야구 신인상 수상자 신재영(29·넥센 히어로즈)은 2017년 시즌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수함 투수인 그는 경찰청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그해 15승 9패, 평균자책점 3.90을 기록하며 데뷔 4년 차에 신인상을 탔습니다. 장정석 넥센 감독도 “한 시즌 잘했다고 나태해지면 2년 차 징크스가 찾아온다. 재영이는 겨우내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며 2년 차 징크스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결과는? 신재영은 지난해 6승 7패, 평균자책점 4.54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선발 로테이션에서 시즌 개막을 맞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펜에서 나오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흔히 말하는 2년 차 징크스가 찾아온 겁니다. 신재영은 “스트레스가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말했고, 장 감독도 “제구와 멘탈 측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고 신재영이 ‘한 시즌 잘했다고 나태해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차라리 ‘신재영도 예외는 아니었다’가 사실에 좀 더 가까운 표현일 겁니다. 아직 2년 차 성적이 없는 지난해 신인왕 이정후(20·넥센)를 제외하면 프로야구 신인상을 탄 선수는 모두 34명. 이 중에서 30명(88.2%)이 데뷔 2년 차 성적이 나빠졌습니다. 네, 2년 차 징크스는 실재(實在)합니다.
2년 차 징크스는 ‘있다’
2017년 시즌 ‘신인상 저주’에 시달린 신재영(넥센 히어로즈). [동아일보]
그것도 꽤 많이 내려갑니다. 신인상 수상자의 데뷔 시즌 WAR는 4.72였는데 이듬해에는 64.1% 수준인 3.02로 떨어집니다. 포지션별로는 투수 기록이 가장 나빴습니다. 야수가 4.53에서 3.15(69.95%)로 낮아졌을 때 투수는 4.90에서 2.89(59.0%)가 됩니다. 1991년 신인상 수상자 조규제(51·현 삼성 라이온즈 코치)는 데뷔 시즌 WAR 8.08을 기록했지만 92년에는 2.00에 그쳤습니다. 이후 2005년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끝내 데뷔 시즌보다 높은 WAR를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조규제가 아주 특이한 건 아닙니다. 신인상을 타고 은퇴한 21명 가운데 13명(61.9%)은 데뷔 시즌 WAR가 결국 커리어 최고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에 마지막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선물한 염종석(45)이 조규제 다음으로 성적이 내려간 사례. 염종석은 1992년 WAR 8.40을 기록하며 신인상은 물론,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에는 WAR가 3.61로 4.79 줄었고 끝내 8.40보다 높은 WAR를 기록하지 못한 채 은퇴했습니다.
말은 쉽지만 이들이 데뷔 첫해 WAR를 넘어서는 것부터가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습니다. 프로야구 역사상 한 시즌에 WAR 8 이상을 기록한 건 46번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데뷔 첫해 이렇게 어마어마한 성적을 거둔 성과를 인정받아 신인상을 수상한 겁니다. 그러니 이들이 이후 데뷔 시즌만 못한 성적을 냈다고 ‘나태해졌다’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신인상을 타고도 이듬해 WAR를 끌어올린 선수를 보면 △2009년 이용찬(29·두산 베어스) 0.78→0.99 △1999년 홍성흔(42·당시 두산) 1.72→2.96 △2000년 이승호(37·당시 SK 와이번스) 3.04→4.68 △2014년 박민우(25·NC 다이노스) 3.75→4.42 등으로 데뷔 시즌 기록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요컨대 선수들이 2년 차 징크스에 빠지는 건 ‘정말 2년 차에 못해서’라기보다 ‘데뷔 시즌에 너무 잘해서’ 생기는 착시 현상에 가깝습니다. 좀 유식하게 표현하자면 모든 기록은 ‘평균으로 회귀’하기 때문에 2년 차 징크스가 존재하는 겁니다.
이제는 깨진 지 10년도 넘었지만, 예전에는 프로야구에 ‘신인상의 저주’라는 표현도 있었습니다. 신인상을 탄 선수는 리그 최우수선수(MVP)가 될 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이 역시 신인상을 탈 만큼 빼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가 나중에 그 이상으로 성적을 끌어올리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2년 차에 최고 성적 기록한 ‘바람의 아들’
2017시즌 신인상을 수상한 이정후(넥센 히어로즈). 선수 시절 ‘바람의 아들’로 불리던 이종범 MBC스포츠플러스 야구해설위원의 아들이다. [동아일보]
2014년 서건창은 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200안타 고지를 정복하면서(총 201안타) 리그 MVP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이종범(48·현 MBC스포츠플러스 야구해설위원)이 해태 타이거즈 소속으로 1994년 기록한 196안타가 최다 안타 기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94년 이종범은 데뷔 몇 년 차였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데뷔 2년 차였습니다. 이해 이종범은 타율 0.393에 도루 84개가 성공하면서 지금도 사람들에게 회자 되는 시즌을 보냈습니다. 당시 이종범이 기록한 WAR는 11.77. 한 시즌에 이보다 높은 WAR를 기록한 타자는 없습니다.
이종범은 신인상을 놓친 게 2년 차 징크스를 피해간 비결이 됐는지도 모릅니다. 이종범은 1993년 WAR 6.14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삼성 라이온즈 신인이던 양준혁(49·현 MBC스포츠플러스 야구해설위원)이 WAR 6.85를 기록해 신인상을 차지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지난해 신인상 수상자 이정후는 바로 이종범의 아들. 지난해 이정후가 기록한 WAR는 3.59로 사실 역대 야수 신인왕 평균(4.53)보다 낮습니다. 그러면 2년 차 징크스를 겪지 않을 확률은 그만큼 올라갑니다.
문제는 그가 지난해 말 개인훈련을 하다 손가락이 부러지는 바람에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빠졌다는 점. 그는 2월 25일이 돼서야 대만에서 진행 중이던 퓨처스(2군)팀 전지훈련에 합류했습니다. 아직 시즌 개막 전이긴 하지만 역시 ‘2년 차 징크스’라는 말을 떠올리기 딱 좋은 상황입니다.
과연 피(血)는 통계보다 진할까요. 그러니까 이정후가 아버지처럼 ‘2년 차 징크스가 뭐람?’이라며 성장세를 이어갈까요, 아니면 많은 신인상 출신이 그랬듯 내리막길을 경험하게 될까요. 아직 결과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어느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든 올해 이정후의 연관 검색어로 ‘2년 차 징크스’가 따라다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극복하면 극복한 대로, 시달리면 시달린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