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 힐튼 서울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2017 대상’에서 K리그 클래식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전북현대모터스 이재성. [동아일보]
1년 뒤 다시 K리그 대상. 이번에도 전북이 왕관을 썼다. 프로 2년 차인 이재성은 더욱 농익은 플레이로 화답했다. 성실하게, 겸손하게 임하니 성큼성큼 도약하는 폭이 뚜렷했다. 영플레이어상은 의심의 여지 없이 이재성에게로 향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전북은 2016년 FC서울에 빼앗긴 우승 트로피를 되찾았고, 이재성은 K리그 클래식 최우수선수(MVP)로 다시 단상에 섰다.
“혹시 몰라 어젯밤에 인터뷰 연습을 많이 했어요. 전북이란 팀을 만나 꽃길을 걷고 있습니다. 절대 초심을 잊지 않고 거듭나겠습니다.”
믿기 어려운 성장세였다. 갓 대학이란 알을 깨고 나온 신예가 K리그 클래식을 점령할 줄이야. 전북과 계약을 맺은 건 2013년 고려대 3학년 재학 시절이었다. 울산 학성고를 거쳐 서울권 대학리그에서 땀 흘리던 때다. 먼저 프로선수가 된 이재권(부산아이파크)의 친동생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관계자들은 “당장은 형보다 조금 부족할 수 있어도 참 바르고 부지런한 선수”라고 표현했다. 사실 전북행에도 주위 기대가 엄청났던 건 아니다. 전북은 화끈한 투자로 K리그 리딩클럽을 꿈꾸던 구단. 다른 팀 에이스를 두루 수집하는 게 취미였다. 쟁쟁한 자원을 끌어모으다 보니 신인이 딛고 설 자리는 사실상 없었다. ‘신인의 무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렇게 사라져간 이들이 어디 한둘일까.
타는 절박함으로 돋보인 유망주
미세한 균열조차 보이지 않던 벽을 이재성이 비집고 들어갔다. 2014년 전북 동계전지훈련 현장이었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이재성에 대한 칭찬을 쉼 없이 늘어놨다. 그럼에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주위 시선은 “설마 신인이 살아남겠어?”였다. 이재성은 전북의 2014시즌 첫 경기인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라운드 요코하마 F. 마리노스전에서 데뷔했다. 이어 인천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전북의 K리그 클래식 첫 경기까지 뛰었다. 시즌 초반인 2~3월 2개 대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그 흐름을 연말까지 이어갔다. 울리 슈틸리케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이재성은 이듬해 3월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성인 대표팀 선수로 첫선을 보였고, 이제는 2018 러시아월드컵을 헤쳐나갈 핵심 선수가 됐다.이재성은 왼발을 잘 썼다. 유연한 신체에 천부적인 센스로 말랑말랑함을 더했다. 공격 진영에서 내뿜는 창조적인 패스에 상대가 휘청했다. 수비력도 남달랐다. 상대 공격의 길목을 이상하리만치 잘 짚어냈다. 몸을 먼저 넣어 공만 쏙 빼내는 영리함을 자랑했다. 다재다능한 터라 커버 범위 역시 넓었다. 곳곳에 생긴 구멍을 틀어막느라 전전하는 용접공이 될 수도 있었지만, 어디든 특별하게 막아내는 멀티플레이어로 찬양받았다. 이재성은 중앙, 측면 가리지 않았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2선, 수비형 미드필더로 3선을 다양하게 오갔다.
예나 지금이나 살이 안 붙는 체형이다. 이 빼빼 마른 왼발잡이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간절함 때문이었다. 기술은 빼어난 듯한데, 힘이 덜 붙은 느낌이었다. 탁 치고 나가는 맛이 떨어졌다. 혹자는 피지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관심을 접었다. 믿고 기다려줄 시간이 필요해 즉시 전력감으로는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이재성은 주저하지 않는 플레이로 지켜보는 이들의 뇌리에 박혔다. 깨질 것 같은 장면에서도 몸을 날렸다. 유독 애절하게 뛰니 ‘고려대 7번’ 하면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었다.
성과 향한 무한한 욕심과 잃지 않은 초심
이재성은 최근 축가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도 있다. ‘이적료 10억 원 이상으로 해외 진출하기.’ 국내에서 주가를 높인 이재성은 해외 구단의 시선도 끌었다. 2016년 토트넘 홋스퍼, 레스터 시티를 포함해 여러 영국 팀이 이재성을 눈여겨본다는 소식이 돌았다. 최근에는 프랑스 리그앙도 뛰어든 모양이다. 현지 언론은 ‘안도니 수비사레타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 단장이 선수 관계자와 접촉했을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아직 공식 이적 요청이나 구체적 대화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나, 머잖아 수면 위로 떠 오를 대목이다. 유럽에 대한 본인 의지가 충만함은 물론,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로 병역 혜택도 받았다.
이적 타이밍이 더 빨랐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독일 분데스리가 등에서 뛰다 전북에서 은퇴한 에두는 ‘유럽에서도 통할 팀 동료’로 이재성을 지목했다. 그러면서도 “시기상 조금 늦은 감은 있다”는 부연 설명을 함께 내놨다. 유럽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아시아 선수의 연령대는 19~20세. 소위 빅클럽은 검증 안 된 아시아 선수에게까지 손을 뻗을 여력이 안 된다. 그보다 한 발 떨어진 리그나 팀이 투자한다. 키워서 내다 팔아 이적료 수익을 내는 구조다. 선수의 현지 적응을 돕고 경기장에 내보내 상품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최소 몇 년은 걸린다는 게 이들의 계산법이다. 차순위가 아시아에서 프로선수가 된 뒤 유럽으로 넘어가는 경우다. 20대 초·중반 현지 리그를 밟은 박지성,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지동원 등이 해당한다. 앞선 사례와 달리 대학에서 3년을 보낸 이재성 처지에선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제값을 높이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올여름 이적시장이면 만 26세가 되지만, 일단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주역 등으로 용의 눈을 그려뒀다. 점을 찍어 눈동자만 만들면 된다.
2009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 고(故) 이광종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8강에 올랐다. 김진수(전북현대모터스)가 주장을 맡았고,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득점포를 가동했다. 당시 이재성은 소속 고교에서 조용히 땀을 흘렸다. 또래를 부러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 고려대 진학 뒤에도 연령별 대표팀과 큰 연이 없던 이재성은 2014년부터 날기 시작했다. 4년 동안 프로 데뷔, 국가대표팀 데뷔, K리그 클래식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뤘다. 이제는 월드컵과 유럽이다. 묵묵히, 그러면서도 꾸준히 해온 이재성은 이제 세계를 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