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하우스 루이 로드레의 7대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프레데리크 루조(왼쪽)와 디자이너 필립 스탁. [사진 제공 · 에노테카코리아㈜]
러시아 황제들의 샴페인 사랑은 유난했다. 그들 중에서도 알렉산드르 2세는 루이 로드레(Louis Roederer)의 샴페인을 무척 좋아했다. 늘 암살 위협에 시달리던 그는 1876년 루이 로드레에게 특별한 주문을 했다. 병 속이나 바닥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도록 병을 투명하게 만들고 병 바닥도 평평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루이 로드레는 황제를 위해 병을 특수 제작하고 최상급 포도로 만든 샴페인을 담아 크리스탈이라 이름 붙였다. 루이 로드레의 최고급 샴페인 크리스탈은 이렇게 탄생했다.
크리스탈을 맛보면 부드러운 질감과 풍부한 향에 감탄이 절로 난다. 크리스탈은 포도 작황이 뛰어난 해에만 생산되는 빈티지 샴페인이다. 샤르도네(Chardonnay)와 피노 누아르(Pinot Noir)를 섞어 만드는데, 6~7년간 긴 숙성을 거친 뒤 출시된다. 병입 상태에서 20년 이상 견딜 정도로 숙성 잠재력도 뛰어나다. 빈티지가 어린 크리스탈에서는 흰 복숭아와 감귤의 상큼함이 돋보이고, 빈티지가 오래될수록 꿀과 견과류 같은 향이 발달해 복합미가 좋아진다.
루이 로드레 샴페인 하우스는 1776년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가족경영을 유지하며 그들만의 양조 철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루이 로드레가 새롭게 선보인 또 하나의 빈티지 샴페인 브륏 나투르(Brut Nature)가 이목을 끌고 있다. 전통과 위엄의 상징인 루이 로드레가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브륏 나투르는 루이 로드레가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Starck)과 함께 만든 샴페인이다. 스탁은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 프랑스 엘리제궁 안에 위치한 대통령 관저를 디자인한 인물이다. 그의 창의적이고 재치 넘치는 디자인은 심플하면서도 본질에 충실한데, 바로 이런 점이 루이 로드레가 브륏 나투르를 함께 만들 디자이너로 스탁을 선택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루이 로드레의 샴페인 크리스탈(왼쪽)과 브륏 나투르. [사진 제공 · 에노테카코리아㈜]
크리스탈과 브륏 나투르의 겉모습이나 맛은 다르지만 두 샴페인 모두 루이 로드레가 추구해온 최고의 맛을 담고 있다. 2018년을 시작하며 황제의 샴페인 루이 로드레로 조용히 축배를 들어본다. 각자 사는 모습은 달라도 모두가 행복하고 충실한 한 해를 맞이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