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3

..

김민경의 미식세계

감각이 살아나는 짜릿한 향신료의 맛

홍대 근처 베트남 식당 ‘공’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gmail.com

    입력2017-11-14 09:50:54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입맛을 돋우는 고이꾸온,얼큰하고 개운한 국물이 맛있는 분보후에,여럿이 나눠 먹기 좋은 반쎄오.
(시계방향 순서대로)

    입맛을 돋우는 고이꾸온,얼큰하고 개운한 국물이 맛있는 분보후에,여럿이 나눠 먹기 좋은 반쎄오. (시계방향 순서대로)

    내가 태어나 처음 ‘알바’를 한 곳은 쌀국숫집으로, 1997년 당시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유일한 베트남 식당이었다. 베트남식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스타일의 쌀국수만 파는 곳이었다. 그때 ‘고수’라는 허브를 처음 알았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당시에는 고수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싸 금가루 다루듯 손톱만 한 이파리까지 일일이 챙겨 손질해야 했다. 지금은 고수 한 다발을 1000~2000원이면 살 수 있다. 고수 이외에 다양한 향신채소도 여러 식당에서 부담 없는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베트남 식당 ‘공(CON)’에 가면 다른 곳보다 훨씬 순수하고 강렬한 본토 향에 빠질 수 있다. 메뉴는 5~6개뿐이지만 하나같이 개성 만점이다. 제일 먼저 맛보는 것은 ‘고이꾸온(gỏi cuốn)’, 즉 프레시롤이다. ‘자, 이제 식사 시작!’을 알리는 듯 입안에 환하게 불을 밝혀주는 애피타이저다. 비결은 민트에 있다. 민트향이 기분 좋게 입맛을 돋운다. 달콤하고 짭짤한 돼지고기 구이, 아삭한 오이, 부드러운 상추, 약간의 쌀국수를 넣어 라이스페이퍼로 통통하게 감싼다. 쿰쿰하고 새큼한 소스에 찍어 먹으면 아삭거림, 양념 맛, 그윽한 향이 한데 어우러져 입맛 돋우는 구실을 톡톡히 한다.

    ‘반쎄오(ba′nh xe`o)’는 노르스름한 빛이 고운 부침 요리로 대부분 따뜻한 애피타이저로 먹지만 식사를 대신할 만하다. 주재료가 달걀처럼 보이나 찹쌀가루와 쌀가루, 강황가루를 넣어 반죽한 뒤 얇게 부쳐 반으로 접은 것이다. 소로는 숙주와 구운 새우, 볶은 돼지고기 등이 들어간다. 새우에서는 양념 맛이 은은하게 나고, 돼지고기는 쫄깃하게 잘 익어 있다. 숙주는 뜨거운 김을 살짝만 쐐 아삭하다. 반쎄오에는 타이 바질이 줄기째 함께 나온다. 바질 잎을 똑똑 뜯어 상추에 얹고 반쎄오와 피클(무, 당근)을 올려 한 쌈 싼 뒤 ‘느억맘(nuoc mam)’에 푹 찍어 먹는다. 고소하고 파삭파삭한 맛에 채소의 시원함이 어우러진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바질은 주로 이탈리아나 프랑스 요리에 사용되는 스위트 바질이다. 맛과 향이 달콤하고 연하며 부드럽다. 타이 바질은 알싸한 향이 훨씬 강한데, 꼭꼭 씹으면 뒷맛에 달착지근한 여운이 남는다. 줄기와 어린잎이 약간 불그스름한 색을 띠는 점도 다르다. ‘공’의 주인은 일종의 생선젓인 느억맘을 직접 만든다. 베트남 남부식으로, 맛과 향이 부드럽고 개운하다. 맑은 느억맘은 ‘젓’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먹기에도 부담이 없다.

    식사로는 얼큰한 해장국 스타일의 ‘분보후에(bún bò huế)’가 독특하다. 쇠고기 육수에 매운 레몬그라스 소스를 풀어 얼큰한 맛이 나며, 고명으로 삶은 고기와 햄, 선지가 올라간다. 마지막으로 곱게 채 썬 바나나 꽃잎, 송송 썬 파와 고수를 듬뿍 얹는다. 잘 섞어 국물을 먹어보면 고추양념을 넣은 우리식 해장국에 허브향을 듬뿍 더한 맛이 난다. 쌀국수로 해장을 하는 이라면 꼭 맛볼 만하다. 



    언제 가도 이국적인 곳. 거기에서 음식을 통해 다른 세계와 만나는 일은 늘 설레고 즐겁다. ‘공’에서는 메뉴판에 없는 요리를 만들어주기도 하니 색다른 요리가 먹고 싶다면 살며시 물어봐도 좋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