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직업은 무엇일까. 록스타다. 라이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일수록 더 많이 돌아다닌다. 세계 투어 시장은 보통 미국-캐나다, 중남미, 유럽, 오세아니아, 아시아, 일본(일본이 따로 있는 건 아시아 다른 지역에 비해 시장이 워낙 큰 덕이다) 등 6개 블록으로 나뉜다. 밴드가 월드투어를 떠나면 이 중 한두 개 블록을 다닌다. 해당 블록에는 여러 국가와 도시가 있게 마련. 한 장소에서 2~3일씩 머물며 몇 달 넘는 투어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월드투어는 음악을 막 시작하는 모든 이의 로망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이들 앞에서 하는 공연.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반응을 얻을 때 쾌감. 이는 ‘음악하길 정말 잘했어’라는 자기만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전율이다. 그들이 즐겨 쓰는 단어를 빌리자면 ‘어메이징’하고 ‘판타스틱’하다.
투어 일정 동안 음악인은 당연히 밥을 먹는다. 까다로운 의전을 요구하는 이는 주로 고급 음식점을 다니지만, 인디 출신 음악인의 경우 자유롭게 시내를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음식을 먹는다.
스코틀랜드 출신 밴드 ‘프란츠 퍼디난드’의 보컬 알렉스 카프라노스는 록스타가 되기 전 요리사로 일했다. 그때 경험과 투어 도중 먹은 음식을 엮어 내놓은 책의 국내 제목이 ‘맛에 빠진 록스타’다. 이 책을 보면 알렉스는 소탈한 여행자다. 그가 간 식당 중에는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된 고급 레스토랑은 거의 없다. 현지 친구들이 소개하는 로컬 맛집이나 산책 도중 충동적으로 들어간 카페가 있다. 사전에 알아보고 찾아간 디저트숍도 있다.
알렉스에게는 그 한 끼 한 끼가 소중했다. 공연도 어찌됐든 일이다. 그 ‘일’은 대부분 기다림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대기실에 세팅된 케이터링이 공연 전 끼니라면 어두운 거리의 음식은 공연 이후 요기다. 심야영업을 하는 식당이 많지 않은 도시라면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진다. 그는 말한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란 게 빤하다. 먹다 남은 피자 조각이나 분장실에 남은 햄 조각 같은 건데, 에어컨 바람을 맞아 딱딱한 데다가 여기저기 쩍쩍 갈라져 있고, 포개진 부위는 분홍빛이 돌고 반들거리기 일쑤다.’
이 책은 맛집 가이드가 아니다. ‘식사’에 대한 이야기다. 식당에서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 벌어지는 일들의 모음이다. 알렉스는 관찰자로서 한 끼의 기록을 서술하고 세상의 풍경을 담는다. 과거 자신이 일했던 식당 요리사로부터 배운 요리 철학을 음악과 연결한다. 테이블 앞에서 벌어진 멤버들과 일을 통해 프란츠 퍼디난드라는 밴드를 설명한다. 처음 가본 식당의 분위기를 묘사하며 그 도시의 인상을 그린다. 투어 후 고향으로 돌아와 먹는 ‘솔푸드’로 방랑하는 삶의 고단함을 은유한다. ‘맛에 빠진 록스타’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 뒷골목 지도를 판화처럼 찍어낸다. 접시에 펼쳐지는 이국적이고, 창조적이며, 불편한 속세의 한 끼가 이 책에 올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