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마다 떠올리는 음식의 모양이 다를 것 같다. 간장과 설탕이라는 천상의 조합을 기본으로 그에 더해지는 양념과 채소, 조리 및 먹는 방식에 따라 참으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바로 불고기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불고기는 소풍 같은 음식이다. 불고기와 관련한 기억에는 항상 가족이 함께 있고, 덩달아 풍요와 안정이 떠오른다.
어릴 적부터 먹어온 불고기는 고기를 굽고 육수를 끓여 함께 먹는 서울식이다. 둥근 불판의 가장자리 홈에 육수를 붓고 봉긋하게 솟은 불판 꼭대기에는 말랑말랑 부들부들한 고기를 얹는다. 대파, 버섯, 당면을 고기 주변에 풍성하게 두른다. 뜨거운 김이 오르면 당면은 육수에 담그고 채소와 고기를 뒤적여 볶은 다음 밥에 얹거나 쌈을 싸 한입 가득 먹는다.
서울식 불고기 양념은 곱게 간 과일과 채소, 다진 마늘과 파, 간장, 설탕, 참기름, 후춧가루 등을 넣어 달고 짭짤하지만 맛이 부드럽다. 고기를 양념에 재워 맛도 배게 하면서 연하게 만들어 먹는다. 서울식 불고기를 한 그릇에 푸짐하게 담아 1인분씩 끓여 내는 것이 뚝배기불고기다.
전남 광양식 불고기는 완전히 다르다. 고기 사이사이 힘줄과 기름을 모두 떼어내고 살코기를 결 반대로 잘라 칼끝으로 자근자근 두드려 부드럽게 만든다. 이것을 조선간장, 설탕, 참기름, 깨, 소금, 다진 마늘과 대파를 섞어 만든 양념장에 버무린다. 단, 고기를 양념에 재우는 것이 아니라 굽기 직전에 살짝 버무려 내야 한다.
따라서 고기 손질을 잘해야 짧은 시간에 양념이 잘 배고 고기를 구웠을 때 부드럽다. 커다란 화로에 참나무숯을 담고 석쇠를 얹어 고기를 구워 먹어야 제맛. 고기 육즙이 빠져나갈 틈 없이 한두 점씩만 석쇠에 올려 바로바로 먹어야 한다.
울산 언양식 불고기는 서울식과 광양식의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얇게 자른 쇠고기를 손으로 찢은 뒤 간장, 소금, 설탕, 마늘, 참기름으로 만든 간소한 양념장에 넣어 반죽하듯 뒤섞는다. 서울식처럼 양념 재료가 다채롭거나 국물이 흥건하지 않고, 광양식처럼 고기 대비 양념이 적지도 않다. 점성이 생길 정도로 고기와 양념을 골고루 치댄 다음 달군 석쇠에 기름을 살짝 바른 뒤 고기를 펼쳐 약한 불에 굽는다.
이때 고기는 그대로 둔 채 석쇠를 뒤집어가며 구워야 고기가 골고루 익고 불맛이 배어 맛있다. 언양식 불고기는 양념이 불에 직접 닿기 때문에 불기가 남은 숯을 꺼내 흙을 덮어 만든 백탄을 사용한다. 그래야 타지 않고 은은하게 구워져 고기가 부드럽고 향도 좋다. 고기 입자는 잘지만 언양식 불고기와 비슷한 맛을 볼 수 있는 것이 ‘바싹불고기’라 하겠다.
요즘에는 불고기를 빵에 끼우고, 피자에 올리고, 샐러드에 곁들이고, 밥이나 국수(파스타까지)에 올려 먹기도 한다. 엇비슷한 양념으로 쇠고기에 간을 해 맛을 내지만 굽거나 먹는 방식은 이토록 다양하다.
어릴 때 가족과 먹던 육수불고기가 그리울 때면 ‘사리원’, 육수에 냉면사리 넣어 먹고 싶을 때면 ‘우래옥’, 입에 짝짝 붙는 양념과 불 내음이 좋다면 ‘역전회관’, 친구들과 반주하려면 ‘옛맛서울불고기’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