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0

2014.06.02

팬과 스타 서로 힘 되는 ‘쌍방 통행’

‘팬덤 문화’ 급부상

  • 배선영 텐아시아 기자 sypova@tenasia.co.kr

    입력2014-06-02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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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과 스타 서로 힘 되는 ‘쌍방 통행’

    MBC 예능 프로그램 ‘별바라기’에 출연한 아이돌그룹 인피니트의 주부팬 가족(왼쪽)과 개그맨 이휘재.

    아이돌 팬덤 문화가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이돌 팬덤 1세대라 할 수 있는 1990년대 1020세대가 문화 주역인 2030세대로 성장하면서 생긴 변화다. 팬덤 문화의 수용자로서 당시 문화적 혜택을 적극 흡수해온 이들이 문화를 이끌어나가는 세대로 성장하면서 팬덤 문화를 바라보는 인식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과거 팬덤은 ‘빠순이’(오빠와 순이의 합성어로 모든 일을 제쳐두고 스타 등을 쫓아다니며 응원하는 여자팬을 일컫는 경멸적 표현)나 ‘사생팬’(스타의 사생활, 일거수일투족을 알아내려 밤낮없이 해당 연예인의 일상을 쫓는 극성팬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불렸다. 골칫거리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14년 현재 TV가 조명하는 팬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오랜 친구같이 긍정적 변화

    MBC는 5월 1일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별바라기’를 선보였다. 스타와 팬이 함께 나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다. 스타의 과거 모습을 통해 팬은 과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며 추억에 젖는다. 앞서 케이블채널 tvN은 ‘응답하라 1997’(2012)과 ‘응답하라 1994’(2013) 등 두 편의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각각 H.O.T와 대학농구 스타를 향한 1990년대 팬 문화를 인기 콘텐츠로 만들었다. 이들 프로그램은 모두 팬덤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과거 팬덤은 스타를 향한 지극히 일방적인 구애였고 그 방식이 극단적일 때도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라이벌이나 열애설 상대에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때로는 팬덤 간 경쟁이 과열하는 양상도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팬덤 문화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드라마 제작발표회 등 스타의 공식 행사에 팬클럽이 불우이웃을 도우려고 쌀 화환을 보내는 건 이제 흔한 풍경이다. 스타의 생일에 고가 선물을 준비하는 ‘조공 문화’를 지양하고, 환경을 보호한다는 의미로 스타 이름을 딴 숲을 선물하는 사례도 생겼다. 배우 하정우의 팬클럽과 가수 이효리의 팬클럽이 그 주인공으로, 이 선물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 이미지까지 좋아지는 일석이조 효과를 누렸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TV가 팬덤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훈훈해지고 있다. ‘별바라기’에는 아이돌그룹 인피니트의 주부 팬이 출연해 개인적인 일로 힘들었을 때 인피니트의 노래가 큰 힘이 됐고 그 덕에 소원했던 남편과의 사이가 더 좋아졌다고 이야기했다. 이 팬의 남편까지 스튜디오에 출연해 아내와 팬덤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 사실을 알게 된 인피니트는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같은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이휘재의 팬은 스타와 팬에서 출발해 이제는 오랜 친구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고 고백해 훈훈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스타와 팬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이런 풍경을 TV 속에 담은 주인공, ‘별바라기’의 황교진 PD와 황선영 작가, ‘응답하라’ 시리즈의 김란주 작가는 모두 팬 문화를 직접 겪은 세대다. 황 작가는 1990년대 인기 아이돌그룹 신화의 팬클럽 출신이고, 김 작가는 H.O.T 멤버 토니의 팬이다. 김 작가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응답하라 1997’ 주인공을 토니 팬으로 설정한 건 유명한 일화다. 황 PD는 가수 서태지의 팬으로, 서울 공연을 보려고 상경한 경험이 있다. 그는 “여전히 팬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부정적인 면이 지배적이지만, 실제 팬 문화를 겪은 사람으로서 꼭 그렇지는 않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제작 취지를 설명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팬덤 문화를 통해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세대가 대중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직업인으로 성장한 것은 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제작진이 직접 겪은 문화를 묘사하니 당연히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복원도 디테일해진다. ‘별바라기’에는 그 누구도 기억지 못했던 스타의 과거 모습이 ‘깨알같이’ 등장해 웃음을 자아냈으며, ‘응답하라’ 시리즈 역시 당시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간직해온 이들의 철저한 시대 고증을 통해 섬세한 감정 묘사로 공감을 얻었다. 황 PD는 “팬들을 직접 취재해보니 전문가 수준으로 해당 스타를 파악하고 있더라”며 파일럿 프로그램에 출연한 팬들에게 감탄했다.

    팬과 스타 서로 힘 되는 ‘쌍방 통행’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가수 서태지의 팬 역을 맡았던 배우 도희와 농구스타 이상민의 팬을 연기한 배우 고아라, 아이돌그룹 H.O.T의 팬을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왼쪽부터).

    누구나 공감 다양한 이야기

    이런 팬덤 문화는 ‘복고’ 개념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1990년대 팬덤 문화를 가장 먼저 문화 주역으로 이끌어낸 ‘응답하라’ 시리즈 이후 90년대 노래 등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과거 1970~80년대 문화를 의미하던 복고라는 단어가 90년대 문화까지 포괄하게 됐다. 90년대를 추억할 만한 세대가 문화의 주요 소비층이 되면서 그들이 가장 활발하게 문화를 흡수하던 과거를 소비하게 된 것이다.

    팬덤 문화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을 가진 콘텐츠다. 황 PD는 “어머니 세대는 조용필과 남진, 나훈아의 팬이었고, 지금 10대는 엑소의 팬이다. 대한민국 전 세대가 누군가의 팬이었거나, 현재 팬이다. 또 과거에는 팬덤이 여자를 중심으로 형성됐지만, 이제는 ‘삼촌팬’이라 부르는 남자팬 비중도 상당하다”며 “따라서 (팬덤을 조명하면)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팬덤이라는 형태로 대중문화를 적극 수용한 세대가 자신이 흡수해온 문화를 긍정적으로 그릴 힘을 갖게 되고, 스스로를 문화 주변부에서 주인공으로 격상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흥미롭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 역시 ‘빠순이’를 대중문화 주체로 봤다. 그는 과거 ‘응답하라 1997’을 선보이면서 “음악 산업이 성장하려면 음악을 듣고 사는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며 “팬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그들이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팬 활동을 해온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가 ‘응답하라 1997’에서 H.O.T 팬을 전면에 내세운 데 이어 ‘응답하라 1994’에서도 서태지 팬을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설정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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