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4

..

진중권의 인사이트

오만하고, 미련하고, 방자한 민주당 패배

최악의 네거티브 선전이 민심 이반 높여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1-04-09 10:33:4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제38대 서울특별시장에 당선한 오세훈 시장(왼쪽)이 4월 8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제38대 서울특별시장에 당선한 오세훈 시장(왼쪽)이 4월 8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180석 압승에서 1년 만에 참패로. 마치 롤러코스터를 보는 듯하다. 선거 결과로 확인된 민심이반은 실은 오래전 시작된 것이다. 그 출발은 조국 사태. 지난해 초 총선을 앞두고 이미 지지율 크로스 등 위기 조짐이 보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잠시 ‘연기’되고, 총선 압승의 환호 속에서 잠시 ‘망각’됐을 뿐, 결국 올 것이 온 것이다.


    “패해도 더럽게 패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4월 8일 오전 부산 동래구 충렬사를 찾아 의열각에 분향하고 있다. [뉴시스]

    박형준 부산시장이 4월 8일 오전 부산 동래구 충렬사를 찾아 의열각에 분향하고 있다. [뉴시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중도층’을 아예 없는 존재로 치고 오직 강성 지지층에 의존해 정치를 해왔다. 그 이해하기 힘든 행태는 촛불집회 기억을 가진 2030세대나 중도층이 절대로 탄핵당한 정당으로 가지 못할 거라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방자하게 굴었으면 세상에, 그 불가능하다는 일이 현실이 됐겠는가. 

    그동안 진보진영의 여러 사람이 그 문제를 얘기해왔다. 나 역시 지난 1년 반 동안 칼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민주당의 문제를 수도 없이 지적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심한 진영논리로 애정 어린 ‘비판’을 정치적 ‘공격’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니 오류는 교정되지 않은 채 누적됐고, 그러다 구제불능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들에 대한 내 마지막 충고는 ‘원칙 있는 패배를 받아들이라’는 것.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선거라면 표차라도 줄여야 하고, 그러려면 과오를 겸허히 인정하면서 죗값을 치르는 마음으로 되도록 깨끗하게 선거전을 벌였어야 한다. 그런데 끝까지 이겨보겠다고 사상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를 시전했다. 패해도 참 더럽게 패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사실상 선거대책본부 노릇을 했으니 한심한 일이다. 그 음모론자의 지휘 아래 후보와 당과 지지자들이 한 몸이 돼 미심쩍은 익명의 증인들을 앞세워 유권자를 기만하려 했다. 그런 공작과 조작으로 도도한 민심의 흐름을 돌려놓을 수 있다고 믿다니, 얼마나 오만하게 미련하고, 방자하게 멍청한가. 



    애초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귀책사유가 자기 당에 있는 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뒤엎고 후보를 낸 것 자체가 문제였다. 머리에 든 거라고는 오직 이번 보선이 대선 전초전이라는 정략적 계산뿐. 반성할 줄 모르고 책임질 줄 모르는 정당에 유권자들이 표를 주리라 기대한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가령 후보 내기를 단념해 유권자들에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그 대신 중립적인 시민사회 후보를 세워 지지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면 결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오세훈, 박형준 후보에게 간 표의 상당수를 흡수해 참패를 면하고 잘하면 승리할 수도 있었을 게다. 

    웬 탐욕은 그렇게 많은지, 뭐든 혼자 다 먹으려 든다. 지난 총선 때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자기들이 ‘정치개혁’이라며 도입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무력화했다. 그렇게 소수당 의석까지 빼앗아 먹더니 이제 와 정의당에 도와달란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남들이 다 바보인 줄 아나 보다. 그 요구는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선거 참패로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대선주자로서 이미 아웃된 셈이다. 차기 주자라면 당이 그릇된 길을 갈 때 제동을 걸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려고 당내 친문(친문재인) 주류와 타협했고, 그들의 강경노선에 편승해 당 궤도를 수정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 자체가 차기주자로서는 실격인 것이다.


    민주당의 희망은 국민의힘

    이제라도 반성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상왕격인 이해찬 전 대표의 지도를 받는 586운동권 주류가 김어준의 방송을 매개로 강성 지지층을 세뇌시켜 당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당 밖으로는 이견을 가진 이들을 ‘토착왜구’로 몰아 입을 틀어막는 기제가 아예 민주당의 골격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국민의힘이다. 이번 선거로 심판의 심리는 어느 정도 충족됐다. 중도층의 국민의힘 지지는 메모지가 바람에 떠밀려 벽에 간신히 붙어 있는 것에 가깝다. 바람이 멈추면 메모지는 벽에서 떨어진다. 그런데도 한번 이겼다고 기고만장하게 굴면, 민주당은 보란 듯이 다시 회생할 것이다. 

    이번 선거가 민주당의 문제만 드러낸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이 아직 충분히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도 보여줬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콘텐츠는 시장을 그만두던 그 시점에 머물러 있다. 대통령을 “치매환자”라 불러놓고 “대통령에게 그 정도 얘기도 못 하느냐”고 따진다. 그 표현 자체가 장애인 차별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 

    2030 유세단으로 큰 공을 세운 이준석도 마찬가지. 여성단체 질의서에 호기롭게 “답변 거부”를 했노라고 자랑한다. 성추행 사건으로 벌어진 선거에서 20대 여성의 표를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적게 받았다는 사실은 적어도 여성 문제에 관한 한 국민의힘이 구제불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 사실을 모른다.
     
    불편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오세훈 대신 막대기를 출마시켰다면 아마 표차는 더 컸을 것이다. 아울러 대선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대선의 경우 유권자는 그저 과거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기 위해 투표장을 찾는다. 이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부족하나마 변화하려고 그 나름 애써왔다. 이번에 2030세대와 중도층이 국민의힘 손을 들어준 것은 바로 그 노력을 가상히 봐줬기 때문이리라. 겨우 4연패 고리를 끊었다. 승리 공식은 분명하다. 과거 오류를 철저히 반성하고, 당 체질을 과감히 바꾸며, 무엇보다 낙후한 콘텐츠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진중권은… 날카롭고 정교한 논리로 좌우 진영을 넘나드는 논객. 진보에 대한 비판을 넘어 보수진영에 혁신과 재건을 제시한 책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등을 펴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