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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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결과는 잡것들의 ‘부패완판’ 유토피아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1-03-08 10: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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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수완박은 부패 판치게 할 부패완판”이라는 뜻을 밝힌 윤석열 전 검찰총장. [동아DB]

    “검수완박은 부패 판치게 할 부패완판”이라는 뜻을 밝힌 윤석열 전 검찰총장. [동아DB]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 4일 전격 사퇴했다. “헌법정신 파괴와 법치 시스템 붕괴”를 더는 지켜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올해부터 시행된 수사권 개혁의 안착과 반부패 수사 역량이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차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런데 영(令)이 먹히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레임덕’이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 꽤 오래전부터 그는 허수아비였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 사실을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이 한 말씀하면 일사불란하게 당까지 다 정리되는 것은 과거 권위적인 정치 과정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그렇게 해오셨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적이 거의 없으시다.” 대통령 패싱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말은 가관이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남았고요. 21대 국회는 1년 됐어요, 임기가. 그래서 마무리하는 청와대와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국회의 입장은 좀 다를 수 있어요.” 

    대통령은 어차피 곧 떠날 사람.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문제는 임기 3년 남은 자기들이 결정하겠다는 얘기다. 



    박범계 장관의 발언도 재미있다. “나는 법무부 장관이지만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다. 당론이 모아지면 따르겠다.” 

    국무위원의 정체성보다 민주당 의원의 정체성이 더 중요하니 대통령 지시를 무시하고 당론을 따라가는 것이다. 나라가 ‘입헌대통령국’이 됐다. 대통령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


    이 나라는 누가 통치하는가

    이 나라는 대체 누가 통치하고 있을까. 이른바 검찰개혁, 사법개혁 이슈에서 강경론을 주도하는 것은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민주당 황운하·김남국·김승원·김용민·이탄희 의원이 주축이 돼 결성한 ‘처럼회’다. 중수청을 밀어붙이는 것도 이들이고, 헌정사상 초유의 판사 탄핵을 주도한 것도 이들이다. 

    하지만 고작 ‘초선’의원 몇 명이 감히 대통령까지 패싱하면서 당·정·청을 좌지우지한다고 믿기는 어렵다. 이들은 그저 행동대원에 불과하고, 이 정권의 실세들이 이들을 앞세워 폭주하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신현수 대통령민정수석의 사표 파동은 지금 이들의 농단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의미할 테다. 

    이들의 폭주에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조응천 의원은 박 장관에게 “국무위원이 된 이상 당론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법무행정에 대한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잘 보좌하라”고 했다. 이상민 의원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중수청이 신설되면 수사기관이 난립해 국민과 기업에 부담과 압박이 지나치게 가중된다’고 썼다. 

    대통령의 지시는 “반부패 수사 역량이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면 아주 오랫동안 반부패 수사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통령이 우려하는 그 사태가 여당의 강경파들이 원하는 상황이라는 데 있다. “검찰개혁을 한다”며 멀쩡한 증권범죄합동수사단부터 해체한 사람들 아닌가. 

    라임·옵티머스 사건 같은 금융범죄는 날로 지능화하고, 그것을 수사할 수 있는 기관은 현재로서 검찰이 유일하다. ‘중수청’을 만들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나 우리법연구회 출신들로 채운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게다가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돼 있으니 설령 수사한다 해도 공소 유지가 쉽지 않을 게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과는 빤하다. 범죄자들은 수사망을 쉽게 빠져나갈 테고, 운 나쁘게 걸려도 법정에서 줄줄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날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범죄자들이 권력과 유착돼 있다면 아예 손도 대지 못할 게다. 마침내 이 땅에 잡것들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도래하는 것이다.


    부패한 자들의 천국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도 중대범죄수사청 법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동아DB]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도 중대범죄수사청 법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동아DB]

    수사 공백에 따른 피해는 당연히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VIK), 라임·옵티머스 사건으로 수많은 이가 평생 모은 돈을 날려야 했다. 그 사건들에도 여당 인사 여럿이 연루돼 있었다. 3월 3일 대구지방검찰청을 방문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 판친다)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도 중수청 법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어느 날 확 바뀌어버리면 혼란이 발생”할 수 있으며, 형사사법 시스템이 “크게 바뀌는 과정에서 가장 애로사항을 겪을 것은 국민”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와 여권이 주장하는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에도 그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2020년 ‘올해의 법조인’으로 선정된 박준영 변호사도 민주당의 중수청 신설 시도를 “적개심과 한(恨), 그리고 잘못을 감추기 위한 의도로 진행하는 사법개혁”이라고 비판했다. 

    “공수처장의 발언처럼 제도가 확 바뀌면 그 피해는 국민이 본다. 국민 중에서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민주당 의원과 당원들이 수사청 신설을 밀어붙이는 일부 의원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의 말대로 검찰개혁을 외치는 이의 상당수가 다양한 혐의로 기소당하거나 수사를 받는 이해 당사자들이다. 게다가 수석부터 실장, 행정관까지 비리 혐의로 기소된 청와대 인사가 얼마나 많은가. 

    ‘검수완박’이라는 구호는 검찰을 향한 그들의 무한한 공포감을 보여준다. 뭐가 그렇게도 무서울까.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동안 지은 죄가 워낙 많아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해놔야 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게다. ‘검찰개혁’은 그렇게 이 땅을 부패한 자들의 천국으로 바꾸는 작업으로 전락했다. 

    윤 총장의 말대로 ‘검수완박’은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최소국가를 주장하는 이들도 도둑을 잡는 ‘야경국가’의 기능만은 인정한다. 그런데 ‘검수완박’은 국가의 그 원초적 기능마저 부정한다. 옛날 도둑들이 국가 시스템을 피해 도둑질했다면, 요즘 도둑은 도둑질하려고 아예 시스템을 만든다.

    진중권은… 날카롭고 정교한 논리로 좌우 진영을 넘나드는 논객. 진보에 대한 비판을 넘어 보수진영에 혁신과 재건을 제시한 책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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