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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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벙거리는 성격 바꿔 똑 부러지고 싶죠”

영화 ‘청포도 사탕’의 박진희

  • 김지영 신동아 기자 kjy@donga.com

    입력2012-09-24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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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벙거리는 성격 바꿔 똑 부러지고 싶죠”
    드라마 ‘쩐의 전쟁’과 ‘자이언트’에서 의롭고 당찬 캐릭터로 사랑받은 배우 박진희(34)가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친정엄마’ 이후 2년 만에 출연한 영화는 9월 6일 개봉한 김희정 감독의 감성 미스터리 ‘청포도 사탕 : 17년 전의 약속’. 그는 이번 영화에서 결혼을 앞둔 은행원 선주 역을 맡아 17년 전 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한 단계 성숙하는 여인의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우정과 질투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그의 연기는 “박진희가 온전히 선주로 보였다”고 할 정도로 좋은 평을 듣는다. 기존의 밝고 씩씩한 이미지를 벗고 연기 변신에 성공한 그를 만나 일과 사랑에 관한 속내를 들어봤다.

    ▼ 영화를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관객이 많더라.

    “10대에는 신체적 성장통을 겪고 30대에는 정신적 성장통을 겪는다고 하는데,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번 영화는 서른 살에 성장통을 겪는 선주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친구 소라가 나타나면서 선주는 17년 동안 잊고 살았던 13세 때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고, 그 일을 계기로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겪으면서 한 단계 성숙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나 역시 위로받고, 한층 성장한 느낌이다.”

    영화를 보니, 충분히 화낼 만한 상황에서조차 대놓고 화내지 못하는 선주가 답답했다.

    “내게도 비슷한 성향이 있어서 선주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연인과 문제가 있어도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는데, 무조건 참는 게 둘 관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더라. 정말 사랑한다면 상대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설령 부끄러운 일이더라도.”



    “대학원서 사회복지 전공…행복했다”

    ▼ 그런 깨달음을 얻은 계기가 있나.

    “사회생활 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불편한 감정을 숨기고 마냥 참는 것이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그렇다고 아무 때나 화내진 않는다. 화낼 만한 일이 생기면 한두 번은 참는데, 그게 쌓이면 어느 순간 폭발하더라. 요즘은 폭발하기 전에 감정을 해소하려고 한다.”

    ▼ 선주처럼 친구 때문에 아파본 경험이 있나.

    “물론이다. 중고교를 같이 다닌 절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뒤 연락이 끊겼고 그 일로 배신감을 느꼈다. 그땐 어렸으니 ‘친구니까 이해해야지’ 하는 생각보다 ‘어떻게 남자 때문에 연락을 끊을 수 있지’ 하며 원망했다. 그러다 3년 만에 다시 그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멀찍이서도 한눈에 알아봤다. 미워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별것도 아닌데 왜 그랬나 싶더라. 3년 동안 마음의 키가 자라선지 웃으며 재회했다. 그 뒤로 다시 친해져 자주 만난다.”

    ▼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튀지도 얌전하지도 않고, 공부도 중간 정도 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밝고 활달하긴 했는데 앞에 나설 만한 정도의 리더십은 없었다. 그때는 배우가 될 거라는 생각조차 못 했다.”

    ▼ 1997년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스타트’라는 드라마로 데뷔했던데.

    “당시 연예인 매니저로 일하던 오빠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권하기에 학원비 벌 요량으로 드라마 오디션을 봤는데 엉겁결에 붙었다. 데뷔 후 1년 정도는 연기에 큰 애정이 없었고, 1998년 영화 ‘여고괴담’을 찍고 나니 연기 욕심이 생기더라. 뒤늦게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에 들어간 것도 연기하면서 느낀 갈증과 부족한 점을 전문적으로 채우고 싶어서였다.”

    ▼ ‘여고괴담’ 이후 꾸준한 인기를 누렸는데, 혹시 남모르는 성장통을 겪은 적 있나.

    “첫 영화 ‘여고괴담’이 무척 잘돼 인기를 실감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지냈다. 그렇게 20대 중반을 넘어서니 내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무렵 선택한 작품이 ‘러브 토크’(2005)다. 그 영화를 찍으면서 성장통을 겪어선지 그 뒤로 연기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

    ▼ 작품에서 똑 부러진 역을 많이 했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덜렁대고 덤벙거리는 편이다. 기억력도 별로고, 뭐든 적당히 한다. 좀 더 부지런하고, 무슨 일을 하든 똑 부러지면 좋겠다. 자기관리를 잘하는 배우,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으면서도 소소한 행복을 아는 사람이고 싶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활동이 왕성할 때였는데, 논문 쓰느라 일을 1년 쉬었다. 배우생활에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되지만 인간 박진희로서는 아주 행복했다.”

    “글 쓰는 사람과 잘 맞을 것 같아”

    “덤벙거리는 성격 바꿔 똑 부러지고 싶죠”
    동료 배우 사이에서 그는 ‘의협심 강하고 성격 좋은 배우’로 정평이 났다. 그 역시 그동안 작품을 함께 한 배우 가운데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모두 좋았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연예계 최고 ‘절친’은 지난해 말 네 살 어린 사업가와 결혼한 탤런트 최정윤(35)이다.

    ▼ 친구에게 자극받아 빨리 시집가고 싶지 않은가.

    “친구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아, 예쁘다’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아직 결혼이 절실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 연애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되지 않나.

    “연애뿐 아니라 어떤 경험이든 연기에 바탕이 될 수 있다. 연인과 사랑하고 이별할 때 느끼는 모든 감정, 심지어 내가 계획한 일을 이루지 못했을 때 밀려오는 좌절감까지도 연기에 활용할 수 있다. 배우가 좋은 이유 중 하나다.”

    ▼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스타일인가.

    “글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 감성적으로 통하는 데가 있을 것 같다. 배우가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듯 글 쓰는 분은 활자로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가. 표현 방식이 다르더라도 감성이 비슷해서 잘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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