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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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라, 질문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모든 성공 뒤에는 작은 실패 있어… 실패와 창의성의 연관관계도 흥미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3-10-24 09: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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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이란 훌륭한 사람의 말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보다 나은 말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때 사람들은 인용을 한다. 자주 인용하는 책의 저자들은 그 사람의 스승이기도 하다.

    인생 고비마다 마주치는 스승들이 있다. 필자의 경우 건축가 루이스 칸이 그런 사람이다. 칸이 언급한 문장을 20년째 마음속에서 속삭였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사후적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건축가 루이스 칸 [GettyImages]

    건축가 루이스 칸 [GettyImages]

    루이스 칸과 르 코르뷔지에

    “자연은 선택하지 않지만 예술은 선택을 한다.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을 인간은 예술(art) 안에서 한다. 자연이 만든 모든 것 안에 그것이 만들어진 기록이 있다. 우리가 이것을 의식할 때 우리는 우주의 질서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칸이 한 말이다. 선택이라는 단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칸이 언급한 또 다른 문장이 뒤따라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풀잎 하나를 아는 것만으로 우주의 법칙을 재구성할 수 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우주의 질서를 발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감지(感知)하기 전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Some can reconstruct the laws of the universe from just knowing a blade of grass. Others have to learn many, many, things before they can sense what is necessary to discover that order which is the universe).”



    스스로를 천재라고 여겨도 무방했겠지만, 칸은 아마도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박하게 느끼면서 앞선 말을 했던 것 같다. 혹여 르 코르뷔지에 같은 천부적 재능의 건축가와 자신을 비교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평범한 사람이 만든 위대한 걸작에는 천재에게 허락되지 않는 또 다른 감동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필자는 아침, 오후, 저녁, 밤 등 하루 네 번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프랑스 롱샹성당과 칸이 설계한 미국 소크 연구소를 본다. 그렇게 평생 두 건물을 마음에 두고 살았다.

    루이스 칸이 설계한 미국 소크 연구소. [뉴시스]

    루이스 칸이 설계한 미국 소크 연구소. [뉴시스]

    작은 실패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작은 성공도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작은 성공은 작은 실패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반면 큰 실패를 한 사람은 책을 읽지 않고, 큰 성공을 한 사람은 책을 쓰지 않는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누구보다 실패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시도해본 적 있는가. 실패해본 적 있는가. 상관없다.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는 무척이나 멋진 말을 남겼다. 베케트의 말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베케트는 성공을 위한 전 단계로서 실패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다. 그는 실패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 모든 사람은 패배자이고 실패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성공 뒤에는 여러 번의 작은 실패가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실패 뒤에도 생각지 못한 여러 실패가 숨어 있다.

    작은 실패는 큰 질문을 부른다

    패배한 사람은 아프다. 상처가 있기에 아픈 것이다. 아프니까 도피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생각하게 된다. 만약 그 생각이 새로운 질문으로 연결된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이전에 몰랐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 창의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오며 살았다. 그 시작은 미국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였다. 필자보다 공부를 못하는 것 같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은 친구가 훗날 좋은 논문을 쓰고 좋은 대학에 교수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괴로웠다. 이들과 필자 사이에 “영어를 못해서…”라는 차원을 넘어선,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다고 느꼈다.

    학교 도서관에서 창의성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지만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무사히 학기를 마쳤고 좋은 지도교수를 만나 박사학위도 받았다. 평탄했고 아쉬움 없이 살아왔다고 할 수 있지만 항상 마음 한구석에서 아쉬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슴 한쪽이 왠지 모르게 허전했다.

    당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도대체 누가 훌륭한 학자가 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중국 베이징대 물리학과 출신인 한 천재 학생이 있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물리학과에서 공부하다 온 친구였는데, 대학원 첫 학기 미시경제학 중간시험에서 1등을 했다. 하지만 그는 논문 작성 과정에서 고배를 마셨다. 반면 문화혁명으로 공부 적기를 놓친, 40세 가까이 된 다른 중국인 학생은 아주 좋은 논문을 썼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누가 창의적인 사람일까’ ‘창의성도 훈련으로 개발될 수 있을까’ 같은 의문이 필자를 사로잡았다. 이 의문들은 지금까지도 유령같이 따라다닌다.

    큰 실패는 질문할 의욕 자체를 지워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큰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반면 작은 실패는 큰 질문을 부른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슨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질문을 먼저 해야 할까’ ‘질문이 있다면 그 답이 있기는 한 것일까’ ‘답이 있는 질문도 있고 답이 없는 질문도 있는 것일까’ ‘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등 물음이 끊이지 않는다.

    천재 하나가 1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시대지만 창의성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인재가 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왜 우리는 아이폰 같은 것을 못 만드냐”고 호통치는 회장님만 있을 뿐이다. 그 대답은 이렇다. “우리가 그것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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