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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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사원을 달리기로 뽑으면 어떨까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영미 명문학교, 예외 없이 체육 중시… 예체능 교육이 창의성 증진과 성공 결정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3-07-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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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인생에서 익스트림 스포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북한산 인수봉과 설악산 공룡능선 등을 연이어 등반했다. 사진은 설악산 공룡능선을 오르는 모습. [원종민 제공]

    필자는 인생에서 익스트림 스포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북한산 인수봉과 설악산 공룡능선 등을 연이어 등반했다. 사진은 설악산 공룡능선을 오르는 모습. [원종민 제공]

    필자가 꿈꾸는 이상적 교육기관인 ‘다빈치스쿨’은 세상 모든 것을 배우는 장소다. 이 학교의 교훈은 ‘Just do everything’. 눈치 챘겠지만 나이키 슬로건 ‘Just do it’의 변형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다빈치스쿨은 유일한 학교, 유일한 대학을 꿈꾼다. “그 많은 분야가 다 필요한가” “어떻게 그 많은 것을 다 배우나” 같은 질문에는 “그냥 해보라”고 답하고 싶다.

    논문 잘 쓰는 몸이 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이 있다. 책의 의도를 존중하지만 아쉬운 지점도 있다. 모든 것을 배우는 일 못지않게, 겉만 스치듯 다루지 않고 중급 수준까지 배우는 일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급 수준까지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중급 수준까지는 예상외로 쉽다. 발음과 기초 문법만 배우면 8개 국어도 가능하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축구를 잘하려면 축구만 해서는 안 된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위대한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다.

    21세기 교육은 몸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 전문직이 사라지더라도 머리와 몸을 함께 쓰는 헬스 트레이너와 요양보호사 등은 살아남을 것이다. 체육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 예체능 교육은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 도장을 다니는 초등학생 때 끝난다. 중고교 체육수업은 공을 던져준 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라는 유명무실한 방법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체육교사들의 문제가 아니다. 입시 위주 교육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이다. “운동장도 교실이다”라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체육, 음악, 미술을 고교 3학년까지 배워야 한다. 대학에서도 음악과 미술, 연극, 무용, 체육을 ‘종합예술체험’이라는 필수 교양과목으로 배워야 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 공부는 잘했으나 소위 몸치였다. 체육을 등한시했고 음악과 미술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는 나중에 뼈아프게 다가왔다. 영국 유학 시절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독자들은 이 문제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살아도 박사과정 논문이 잘 안 써지던데, 영국 학생들은 요트 경기에 나간다고 종일 연습한 뒤 밤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논문도 쓰더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필자 역시 이때 논문을 잘 쓰는 창의적인 몸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다. 키와 몸무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몸통이 굵어야 한다. 가슴둘레가 큰 것과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가슴 두께가 두툼해야 좋다.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를 떠올리면 된다. 그는 비록 키가 작았지만 몸집이 큰 선수와 부딪쳐도 밀리지 않았다. 몸싸움에서 공을 지켜내는 이강인도 그렇다. ‘풀 오버’라는 운동을 하면 도움이 된다.

    이런 몸을 가지면 심폐능력과 지구력이 향상되고, 호흡 숫자는 줄어들며,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잘하게 된다. 어려운 수학, 과학 문제를 푸는 일에도 도움이 된다. 운동을 하면 수학 성적이 좋아진다는 영국의 연구 결과도 있다. 예체능 교육은 창의성 증진 외에도 인생의 성공을 결정짓는 핵심 주제다. 정말 그럴까. 필자는 그렇다고 믿는다.



    창의성 교육에 대한 관심은 뒤늦게 필자를 미술로 이끌었고, 이윽고 몸을 잘 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40대 초반 코오롱 등산학교에 입교해 한 달 동안 이론수업과 실기교육을 들으면서다. 나이 든 수강생이 많았는데 놀랍게도 4주 후 이들과 북한산 인수봉에 올랐다. 암벽등반을 한 것이다. 두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았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화강암 바위에 밀착할 때면 손끝이 아팠지만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에 아픔은 사라졌다. 바위틈에 팔을 통째로 넣고 비틀면 팔 전체가 몸을 지탱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 느낌이 좋았다. 암벽에서 발가락 하나하나가 디딜 곳을 찾아 헤매다가 작은 안식의 장소를 찾아 몸을 지탱해낼 때 느껴지는 안도감도 좋았다.

    북한산 구조대를 이끌던 등산학교 원종민 강사는 독도법을 배운 후 여러 명이 조를 짜 교대로 리더를 맡으며 낯선 산을 등반하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된다고 한다. 리더로 팀원들을 이끌며 낯선 산길을 헤치고 가는 체험이 리더십과 팀워크, 창의력에 좋다는 것이다. 수업이나 근무를 마친 후 인스타그램 또는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아니다.

    스포츠는 그저 편안해서는 안 된다. 극한에 도전하는 체험이 중요하다. 히말라야와 엘 캐피턴에 도전하는 등반가의 경험을 10분의 1이라도 체험해보면 인생이 질적으로 다르게 바뀐다. 2019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수상작 ‘프리 솔로’에는 극한 세계의 아름다움이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암벽등반과 산악자전거, 마라톤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는 인생에 꼭 필요하다.

    한국, 세계에서 가장 체육 무시하는 나라

    중국과 한국은 무(武)보다 문(文)을 숭상하는 문화를 가졌다. 무인은 때로 천시의 대상이었고, 결국 고려시대 무신의 난까지 일어났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체육을 무시하는 나라라는 느낌마저 든다. 같은 동아시아지만 일본 중학교에서는 유도와 검도를 가르친다. 댄스도 많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

    영국 왕족이나 귀족은 전쟁을 업으로 하던 기사, 즉 무인이면서 왕으로부터 받은 봉토가 부의 기반이 되는 지주였다. 유럽에서 귀족은 중세의 전사 계급이었다. 그들은 세련되고 우아하기보다 매우 호전적이었다.

    영미의 명문 보딩스쿨들을 보면 예외 없이 체육을 중요시한다. 전체 수업시간의 30%가 스포츠다. 프랑스에서는 오전에 공부하고 오후에 운동하는 학교도 많다. 실외에서 축구와 장거리 달리기를 하고, 실내 체육관에서 체조와 다양한 구기 운동을 하는 식이다. 이튼칼리지의 월게임(벽을 이용해 몸싸움을 하며 공을 던지는 게임)에서 보듯이 진흙탕에서 뒹굴며 투지와 협동심도 배운다.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출신은 전쟁이 나면 가장 앞에서 싸운다고 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보자.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는 성적순으로 사람을 뽑는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 지안이 달리기를 잘한다는 이유로 사원이 됐다는 설정은 그래서 신선한 충격을 줬다. 삼성전자 사원을 달리기로 뽑으면 어떨까.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을 하프 마라톤으로 하면 어떨까.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만큼은 확신한다. 다빈치스쿨은 운동장에서 시작한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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