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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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행복, 걸어서 런던 한 바퀴

[재이의 여행블루스] 트라팔가 광장, 웨스트엔드 극장가, 런던 타워… 뚜벅이들에게 최상의 여행지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3-07-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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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배가 지나가면 다리가 올라가는 도개교 ‘타워 브리지’. [GettyImages]

    큰 배가 지나가면 다리가 올라가는 도개교 ‘타워 브리지’. [GettyImages]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프리드리히 니체)

    걸어서 만나는 세상만큼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복잡한 일상을 떠나 낯선 여행지를 걷다 보면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을 관찰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지키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며, 오래된 역사 현장을 살펴볼 기회를 얻기도 한다. 걷기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상념에 빠지고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니 곱씹고 곱씹는 것이 대부분 자신과 관련된 일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도보여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를 일부러 찾아가는지도 모른다. 길 위에서 뜻밖의 행복을 만나는 일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오늘 함께 떠나볼 여행지도 바로 그런 곳 중 하나다.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보면 더욱 아름답고 걸을 때마다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되는 곳. 바로 영국 런던이다.

    런던 번화가 ‘피카딜리 서커스’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수도 런던은 약 1600㎢ 면적에 950여만 명이 거주하는 유럽 최고 도시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런던은 유럽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관광지다. 한국에서 직항으로는 약 12시간이 소요되며 아시아, 중동, 유럽 국가를 경유하면 16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야 한다. 유럽 여행 코스를 짜는 사람은 대부분 영국을 여행의 시작이나 종착지로 선택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통화 때문인데 영국은 유로존도, 유럽연합(EU) 회원국도 아니기에 여전히 파운드화(£)를 사용한다. 요즘에는 신용카드나 외화 충전식 체크카드를 사용하면 편하지만, 영국에서는 종종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니 파운드화도 환전해 챙겨 가자. 전압은 240V이며 여느 유럽 국가들과 달리 BF 타입(구멍이 3개 뚫린) 콘센트를 쓴다. 영국은 대표적인 좌측통행 국가로, 통행과 운전 시 습관적으로 오른쪽을 쳐다보려 노력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런던은 시내 어디를 걸어도 좋은 도시다. 걷다가 지치고 목이 마르면 적당한 카페에 들어가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가까운 펍(pub·선술집)에 들러 영국의 대표 음식인 피시 앤드 칩스에 걸쭉한 에일 맥주(영국식 맥주의 일종)를 들이켜도 좋다. 이름마저 멋스러운 본드 스트리트, 리젠트 스트리트, 옥스퍼드 스트리트는 여행객이 선택하는 방향에 따라 볼거리도 달라진다. 스치며 지나가는 런더너(Londoner·런던 사람) 특유의 강한 발음 너머로 미국 뉴요커와 프랑스 파리지앵과는 또 다른 차원의 자유로움이 전해진다.

    내친김에 런던 최고 번화가인 ‘피카딜리 서커스’까지 걸어가보자. 6개의 각기 다른 길이 하나로 모이는 피카딜리 서커스는 대형 쇼핑센터가 즐비하고 사계절 내내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다. 피카딜리 서커스에 도착하면 아무 데나 털썩 앉아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을 관찰만 해도 좋다. 이런 평온한 시간이야말로 런던을 떠올릴 때면 늘 그리운 순간이다. 원형광장을 중심으로 런던 최대 환락가인 소호, 차이나타운과도 인접해 있어 명실공히 런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맥도날드, 삼성, 코카콜라 등 화려한 네온사인 광고판이 만들어내는 피카딜리 서커스의 야경 역시 일품이다.



    볼거리 가득한 템스강변

    런던의 상징인 빨간색 더블데커(이층 버스)와 블랙캡(택시). [박진희 제공]

    런던의 상징인 빨간색 더블데커(이층 버스)와 블랙캡(택시). [박진희 제공]

    피카딜리 서커스를 지나 내리막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트라팔가 광장’과 ‘내셔널갤러리’를 만나게 된다. 골목 구석구석을 아무 생각 없이 마냥 걷기만 해도 괜스레 신이 나고 흥이 솟는다. 도심 속 푸른 공원과 빈티지스러우면서도 모던한 숍들, 잘 정비된 길과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로 런던의 상징인 빨간색 더블데커(이층 버스)와 정감 있는 블랙캡(택시)이 질주한다. 이국적인 풍경 사이를 요리조리 걷노라면 어느덧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트라팔가 광장은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을 기념해 만든 곳이다. 윌리엄 4세 광장, 왕가의 광장으로 불리다 트라팔가 광장으로 명명됐다. 광장에는 트라팔가르 해전을 승리로 이끈 50m 높이의 넬슨 제독 동상이 멀리 영불해협을 바라보고 있다. 그 주위로 청동 사자상 4마리가 위엄을 뽐낸다. 광장 바로 옆에는 영국 최초 국립미술관이자 유럽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내셔널갤러리가 있다. 고흐, 얀 반 에이크,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루벤스, 렘브란트 등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1824년 문을 연 내셔널갤러리는 13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 사이 주요 작품 2300점을 소장·전시하고 있는데 세인즈베리관(16세기 이전), 서관(16세기), 북관(17세기), 동관(18~20세기) 순서대로 연대별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좋다. 가장 인기 있고 널리 알려진 고흐의 ‘해바라기’는 동관에 전시돼 있다.

    ‘빅 벤’으로 불리던 국회의사당 시계탑은 201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엘리자베스 타워’로 이름이 바뀌었다. [박진희 제공]

    ‘빅 벤’으로 불리던 국회의사당 시계탑은 201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엘리자베스 타워’로 이름이 바뀌었다. [박진희 제공]

    ‘웨스트엔드’ 극장가도 런던 여행에서 빼놓은 수 없는 필수 코스다. 웨스트엔드는 피카딜리 서커스에서부터 쇼핑 명소인 코벤트 가든까지 지역을 일컫는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캣츠’ ‘빌리 엘리엇’ 등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극장가이기도 하다. 햇살이 좋은 날에는 현지인처럼 하이드 파크 어딘가에 자리 잡고 샌드위치에 영국식 밀크티를 곁들이며 여유를 부려보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될 테다. 이제 템스강을 따라 매시 정각에 종소리가 울리는 런던의 아이콘 ‘엘리자베스 타워’로 향해보자. 템스강을 따라가는 도보여행은 국회의사당과 엘리자베스 타워에서 시작한다. 국회의사당 시계탑인 엘리자베스 타워는 원래 ‘빅 벤’으로 불렸으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2012년 이름이 바뀌었다. 고딕 양식의 국회의사당과 엘리자베스 타워는 해가 질 무렵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영국인의 삶을 느낄 수 있는 펍

    높이 135m의 대관람차 ‘런던 아이’. [박진희 제공]

    높이 135m의 대관람차 ‘런던 아이’. [박진희 제공]

    템스강 남쪽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다 보면 대관람차 ‘런던 아이’가 시야에 들어온다. 매년 관광객 350만 명이 찾는 런던 아이는 높이가 135m나 되고 한 바퀴 도는 데 30분이 소요된다. 낭만적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일몰 때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타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런던 아이에서 ‘런던 타워’까지는 성인이라면 도보로 충분히 이동 가능하다. 다만 조금 지쳤다면 템스강을 오르내리는 ‘템스 클리퍼’나 이층 버스를 이용하면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다.

    11세기에 세워진 런던 타워는 높이가 30m로, 당시에는 런던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중앙에 화이트 타워가 있고 주변을 성곽이 에워싸고 있다. 런던 타워에서 강변을 따라가면 ‘타워 브리지’를 만나게 된다. 타워 브리지는 1876년 세워진 도개교로, 지금도 큰 배가 지나가면 다리가 올라간다. 템스강 다리 가운데 야경이 가장 매혹적이라 밤만 되면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런던 야경을 감상하기 좋은 곳으로는 타워 브리지와 함께 도시 전경을 360도로 볼 수 있는 전망대인 ‘스카이가든’과 87층 건물로 높이가 310m에 달하는 ‘더 샤드’를 꼽는다. 어느 곳에 올라가든 런던 시내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런던의 주요 랜드마크 건물들이 반짝거린다.

    오늘 하루 열심히 걸었으니 빈속을 채울 시간이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 펍을 찾아가보자. 펍은 단순한 술집이 아니다. 영국인의 삶과 깊숙이 연결돼 있으며, 동네 사랑방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다. 여행자로 방문했지만, 오늘만큼은 현지인처럼 영국식 로스트비프 요리에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영국 문화와 일상을 경험하자.

    런던에서 꼭 가봐야 하는 명소들은 도보로 이동해도 그리 멀지 많다. 뚜벅이 여행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지인 셈이다. 걸어야지만 보이는 세상이 있다. 걸으면서 만나는 또 다른 행복이 궁금하다면 이번 여름휴가는 오랜 역사가 깃든 런던으로 떠나보자.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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