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76

2023.02.10

이란 핵 보유 초읽기… 美·이스라엘 무력 저지 가능성 커진다

국제 핵 전문가들 “핵무기 본격 생산까지 불과 몇 주 남았다” 추정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3-02-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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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8일 이란이 이스라엘의 자폭 드론 공격으로  불타는 군수공장 모습을 공개했다. [WANA NEW AGENCY]

    1월 28일 이란이 이스라엘의 자폭 드론 공격으로 불타는 군수공장 모습을 공개했다. [WANA NEW AGENCY]

    이란 이스파한은 두 얼굴의 도시다. 수도 테헤란에서 남동쪽으로 350㎞ 떨어진 이스파한은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의 압바스 1세 통치 시절(1587~1629) 수도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각종 모스크가 잘 보전돼 중세 이슬람 문명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스파한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1612년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이맘 호메이니 광장이다. 샤(왕)의 광장이던 이곳은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이 성공한 이후 그의 이름을 따 이맘 호메이니 광장으로 불린다.

    이란, 핵 탑재 가능한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이란이 보유한 최신형 원심분리기 IR-6. [이란 대통령실]

    이란이 보유한 최신형 원심분리기 IR-6. [이란 대통령실]

    그런 이스파한에는 이란 핵 시설이 밀집해 있다. 이곳에는 핵기술연구센터(NTRC)를 비롯해 우라늄 변환 시설이 자리한다. 우라늄 변환 시설은 우라늄 원광에서 분리된 중간 생산물 옐로케이크를 육불화우라늄(UF6)으로 바꾸는 곳이다. 옐로케이크는 우라늄 원광을 화학 처리해 순도를 높인 고체 물질이고, UF6는 우라늄 농축을 위해 원심분리기에 주입되는 기체 물질이다. 이스파한 인근 나탄즈 우라늄 농축 시설에서는 원심분리기를 돌려 기체 물질인 UF6를 농축 우라늄으로 만든다. 이란은 이 시설에서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90% 이상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할 수 있다.

    이스파한은 미사일 연구·개발·생산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란은 그동안 이곳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을 비롯해 각종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 생산해왔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사이트인 미사일 위협(Missile Threat)에 따르면 이란은 세질(사거리 2000㎞), 호람샤르(2000㎞), 가드르-110(샤하브-3 개량형·1950㎞), 에마드(1700㎞), 레즈반(1400㎞), 샤하브-3(1300~2000㎞) 등 각종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실전 배치하고 있다. 케네스 맥킨지 전 미국 중부군 사령관은 “이란이 보유한 탄도미사일은 3000여 기로 이 중 상당수가 이스라엘을 타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맥킨지 전 사령관은 “이란 미사일은 중동 지역 안보의 최대 위협”이라면서 “이란은 핵탄두 탑재 가능 미사일을 개발해 수차례 시험발사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사거리 2000㎞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IRGC]

    이란 혁명수비대가 사거리 2000㎞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IRGC]

    특히 주목할 점은 이란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미랄리 하지자데 이란 혁명수비대 우주군 사령관은 지난해 11월 10일 국영방송 IRIB와 인터뷰에서 “자체 기술로 새로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며 “이 극초음속 미사일은 현존하는 모든 방공망을 무력화할 수 있고, 이 미사일을 방어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려면 최소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방 언론들은 러시아가 드론 등 무기 공급 대가로 이란에 극초음속 미사일 기술을 이전해줬을 개연성을 제기하고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음속의 5배 이상에 해당하는 속도로 비행해 세계 어느 곳이든 1~2시간 이내에 타격할 수 있고, 핵 탑재도 가능하다. 기존 미사일방어(MD) 시스템으로는 탐지와 요격이 어렵기 때문에 ‘게임 체인저’라는 말을 듣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 등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거나 개발 중이다.

    이란 군수공장에 드론 공격 감행한 이스라엘

    최근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이스파한의 군수공장에 자폭 드론으로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란 국방부는 1월 28일 오후 11시 30분쯤 소형 드론 3대가 공격을 감행했지만 방공망을 통해 1대를 격추하고, 나머지 2대는 창고 위에서 폭발해 지붕에 경미한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이란에 불안을 조성하려는 비겁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니 주유엔 이란대사는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조사 결과 이번 공격 시도의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란은 국제법 및 유엔 헌장에 따라 이스라엘의 위협과 부당한 행위에 단호하게 대응할 고유한 권리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드론의 공격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이란 국방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이 피해를 입었는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서방 언론은 극초음속 미사일 생산 시설 또는 핵 시설 등이 목표였다고 추정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드론 공격에 관여했다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 드론이 이란의 첨단무기 생산시설을 공격했고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포스트’도 “이란 정부는 실패했다고 주장하지만, 이스파한에 대한 드론 공격은 경이적인 성공이었다”고 보도했다. 다니 야톰 전 모사드 국장도 이스라엘 군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드론 공격의 대상은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시설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는 “이란 과학자들이 극초음속 미사일에 핵폭탄을 탑재하는 기술을 개발하려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소식들을 종합해보면 이스라엘은 이란이 극초음속 미사일이나 탄도미사일에 핵을 탑재하는 것을 막으려고 드론 공격을 감행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모사드는 그동안 이란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저지하기 위해 ‘그림자 전쟁(Shadow War)’을 벌여왔다. 그림자 전쟁이란 어떤 국가가 개입 사실을 숨긴 채 증거를 남기지 않고 특정 국가의 시설을 공격하거나 요인을 암살하는 것을 말한다. 모사드는 2020년 이란의 최고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를 암살했고, 2021년 나탄즈 우라늄 농축 시설에 사이버 공격을 감행해 대규모 정전 사태를 일으켜 원심분리기를 파괴한 바 있다.

    이란은 이미 핵폭탄 제조가 가능한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해 비축하고 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1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의회 연설을 통해 “이란은 농도 60% 이상 농축우라늄 70㎏, 20% 농축우라늄 1000㎏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핵폭탄 1개 생산에 90% 이상 농축된 우라늄 15∼20㎏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비춰 “이란의 우라늄 보유량으로 볼 때 핵폭탄 여러 발을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경고했다. NYT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갈등과 대립으로 한동안 가려졌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폐기한 핵 합의를 복원하겠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희망의 불씨가 이제 거의 꺼지기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이란에 강경 입장인 美

    국제 핵 전문가들은 이란의 핵 시설과 우라늄 변환 역량 등을 고려하면 핵무기 생산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인 이른바 ‘질주시간(dash time)’이 불과 몇 주 정도라고 추정한다. 이란은 나탄즈 농축 시설에 설치한 최신형 원심분리기 IR-6를 가동하고 있다. IR-6는 기존 1세대격인 원심분리기 IR-1보다 농축 속도가 10배 빠르다. 반면 서방과 이란의 핵 합의 복원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양측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테러조직 지정 철회와 제재 부활 방지 보증 조항, 미신고 핵 시설 사찰 등을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조차 지난해 11월 4일 “이란과 핵 협상은 끝났다”고 토로한 바 있다.

    미국 B-52H 전략폭격기가 미국과 이스라엘 공군의 호위를 받으며 비행하고 있다. [CENTCOM]

    미국 B-52H 전략폭격기가 미국과 이스라엘 공군의 호위를 받으며 비행하고 있다. [CENTCOM]

    미국과 이스라엘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양국은 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지중해 동부 해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에는 항공기 140여 대와 군함 12척, 병력 7500여 명(미군 6400여 명과 이스라엘군 1100여 명)이 동원됐다. 미국에선 조지 부시 핵 항공모함 전단을 비롯해 F-35·F-18 전투기, B-52H 전략폭격기, 공중급유기 등이, 이스라엘에선 F-35·F-15·F-16 전투기가 각각 참여했다. 양국 공군은 장거리 폭격 훈련을 함께했고 공중급유 및 실탄 사격도 실시했다. 미국이 B-52H 전략폭격기와 공중급유기를 이스라엘과의 연합훈련에 동원한 것은 군사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미국이 B-52H 전략폭격기로 이란 핵 시설을 폭격하거나 이란 공습에 나선 이스라엘 전투기들에 공중급유기로 연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군의 이번 연합훈련은 이스라엘의 핵 시설 공습과 이에 따른 이란의 보복 공격 등에 대비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정부는 이란에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1월 30일 예루살렘을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에서 이란 핵 보유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게 하는 모든 옵션이 탁자 위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새해 초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우파적인 정부를 출범시킨 네타냐후 총리도 그동안 이란 핵 시설을 공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이런 맥락에서 이란이 레드 라인(핵무기 개발 또는 보유)을 넘으려는 의도를 보인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를 무력으로 저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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