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65

2022.11.18

공정한 케이팝을 꿈꾸며

[미묘의 케이팝 내비] 혐오 발언과 차별 의식에서 벗어나야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2-11-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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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대 재생산되는 케이팝 혐오 발언과 차별 의식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GettyImages]

    확대 재생산되는 케이팝 혐오 발언과 차별 의식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GettyImages]

    최근 인터넷상에서 특정 유명 아이돌의 혈통이 입방아에 올랐다. 이렇게 말하면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우스운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가 ‘화교’ 출신이라는 것을 알면 인터넷과 팬덤 문화에 익숙한 이에게는 짚이는 점이 있을 법하다. 지난 몇 년간 인터넷상에서 기승을 부리는 중국 및 중국계 이민자를 향한 외국인 혐오증이다. 일부에서는 그것의 배경이 정치권이나 중국계 유력자들에 닿아 있어 연예계 성공을 돕고 있다는 음모론까지 나온다.

    인터넷상에서 한중일의 경쟁의식과 반목이 두드러지는 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케이팝 팬덤에서는 아이돌이 인기를 얻은 뒤 케이팝을 이탈한 일부 사례를 중국 문제에 대입해 중국과 연관된 아이돌에게 가혹한 편견을 보이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도마에 오른 아티스트의 실제 국적은 여기서 핵심이 아니다. 특정 출신을 밝혀야 하는 이유는 그것에 따라 대우가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밝혀야 할 것을 밝히지 않았다면 공정하지 않다. 그러니 그의 가족, 친지들의 이름과 직업, 경력을 뒷조사하면서 젊은 여성 아티스트를 집요하게 음해하고 학대한다. 차별 논리와 그에 따른 광기다.

    부적절한 비판 제지·반박하는 자세 필요

    케이팝의 많은 어둠이 우리 사회와 인터넷 문화의 영향에 직결된 상황에서 케이팝만 사회와 유리해 청정구역화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한 작전’이다. 혐오 발언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티스트의 인성이나 행실, 케이팝의 시각 이미지나 가사 내용에 “청소년 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잣대가 적용된다면, 혐오 발언과 차별 의식 역시 케이팝 문화를 그 터전의 하나로 삼아 확대 재생산된다고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제지할 만한 뚜렷한 주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연예매체에 그 역할을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다. 때로 ‘인터넷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혐오 발언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할 때도 있다. 대형 커뮤니티는 사용자 대량 이탈을 부를 수 있는 정치, 종교, 친목 등은 경계할지라도 트래픽을 부풀리는 혐오 발언을 제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소속사들도 아티스트 비방에 점점 단호하게 법적 조치를 강구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 내용을 밝혀 반박하는 데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업계 관행도 그렇거니와 자칫 아티스트 명예를 2차적으로 훼손하는 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케이팝 기획사와 아티스트로부터 ‘입바른 말’을 듣고 싶은 대중은 얼마 없지 않은가. 팬덤 역시 아티스트에 대한 공격과 방어라는 구도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팬덤이 사회적으로 긍정적 목소리를 낼 때는 ‘선한 영향력’이라고 칭송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을 비판할 때는 그저 ‘팬덤 싸움’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케이팝에 애정을 가진 개개인이 기회가 될 때마다 제지하고 반박하는 수밖에 없다. 거리에 쓰레기가 널려 있을 때 한두 점 치우는 일은 얼핏 무용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쓰레기 하나를 치우는 한 사람이 존재할 때 그 거리는 이미 이전과 다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쓰레기를 버린 자 이외 특정인에게 책임을 지우기는 어렵지만, 케이팝이 혐오와 차별의 쓰레기장이 되지 않도록 할 권리는 케이팝을 사랑하는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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