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5

2020.11.20

위스키 수입 20% 감소, 하이볼과 복고풍으로 만회 전략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45]

  • 명욱 주류 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입력2020-11-14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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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볼.

    하이볼.

    코로나19 사태로 집에서 소비가 늘어난 술은 아마도 와인과 전통주일 것이다. 외식이 줄다 보니 그것을 대체할 작은 사치로 와인이 필요했고, 전통주는 다양해진 품목을 배경으로 유일한 비대면 구입 주류라 더욱 주목받았다. 하나가 늘면, 다른 게 주는 것도 당연하다. 와인과 전통주와 달리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게 바로 위스키다. 

    위스키는 2009년부터 꾸준히 판매량이 내려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기업들이 접대비를 줄이기 시작했고, 2016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과 2018년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2, 3차는 물론 회식도 사라져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 중지(집합금지 명령)에 들어간 술집도 많다. 

    관세청의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1∼8월 위스키 수입량은 1만441t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5% 감소했으며, 위스키 수입액 역시 7447만 달러(약 829억 원)로 26.5% 급감했다. 외식업계만 본다면 코로나19 사태로 매출 70~80%가 빠진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에서 위스키는 주로 유흥업소에서 소비되던 주류로, 무엇보다 위스키의 성장에는 과음과 폭탄주로 이어지는 과격한 술 문화가 있었다. 그렇다면 위스키는 이렇게 무너지기만 할까.

    위스키에서 권위를 빼다

    최근 주요 상권 내 주점에는 하이볼(highball) 제품이 기본적으로 다 있다. 하이볼은 위스키에 탄산수, 레몬 등을 넣은 위스키 소다를 말한다. 영국에서 골프를 칠 때 공이 올라간 사이 빠르게 마신다는 뜻에서 나왔다는 설과 미국 서부 시대에 볼이 올라가면 기차역 바 손님들이 기차를 타려고 시켜놓은 위스키에 탄산수를 타 빨리 마신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하이볼이 인기인 이유는 위스키의 높은 도수와 가격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일반 위스키의 알코올 도수는 40도. 하지만 하이볼은 6~7도 전후로 맥주와 비슷하며,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가격도 한 잔에 5000원부터 시작하는 등 일반 위스키에 비해 훨씬 접근성이 좋다. 여기에 탄산과 얼음이 들어가 맥주나 칵테일 같은 느낌으로 즐길 수 있어 독주를 마신다는 이미지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그렇다면 하이볼은 기존 위스키 소다와는 뭐가 다를까. 기존 제품도 토닉워터 등 탄산수를 넣어 위스키를 희석하곤 했다. 하지만 잔 자체가 키가 작은 온더록스(on the rocks) 잔이었고 양을 조절하기보다 남이 따라주는 것을 받는 데 정신없었다. 즉 내가 술 양을 조절할 수 없었고, 강압적인 술 문화가 군대 문화, 조직 문화의 일환처럼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하이볼은 다르다. 주문할 때 취향에 맞게 탄산, 얼음, 위스키 양을 조절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포인트는 잔이 다르다는 점. 하이볼은 생맥주잔, 그리고 키가 큰 칵테일잔을 쓴다. 생맥주는 잔에 맥주가 떨어져도 남의 잔에 있는 것을 내 잔에 따라주지는 않는다. 즉 술을 취향대로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칵테일도 마찬가지. 주문해놓고 내 스타일대로 천천히 마셔도 되고, 남이 얼마나 마셨는지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이러한 부분이 기존 제품과 차별화돼 밀레니얼 세대도 하이볼에 응답했다. 하이볼을 좋아하게 되면 그 원액인 위스키도 언젠가는 즐기게 된다는 것이 위스키업계가 노리는 지점이다. 

    최근 1980~1990년대를 풍미한 패스포트라는 술이 다시 등장했다. 숙성 연도를 표기하지 않은 논에이지(Non Age) 제품인 12년산, 18년산 위스키 등에 밀려 2010년대 이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복고라는 시대 흐름에 맞춰 다시 등장한 것이다. 

    한국 위스키 시장은 1980~1990년대 비약적으로 성장했는데, 1984년부터 위스키 수입 규제가 완화되면서 스코틀랜드 위스키 원액 100% 제품을 소비자가 만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위스키 원액 30%에 주정 70%를 섞은 술이 위스키로 판매됐다. 위스키가 아닌 술이 위스키로 판매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최초로 나온 스카치위스키가 바로 패스포트다. 1984년 한국에 수입된 위스키로 시바스 브라더스(Chivas Brothers)사에서 생산한 대중적인 제품이다. 고대 로마시대 통행증(패스포트)을 모티프로 삼아 디자인한 사각형 디자인이 아이콘이다. 제대로 된 위스키를 즐겨보지 못한 일반 소비자에게 100% 원액은 신선한 맛이었고 가격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위스키 시장을 크게 이끈 건 편의점이었다. 1982년 롯데그룹에서 롯데세븐 1호점을 개점한 것이 최초의 편의점이다. 하지만 이내 사라지고 1989년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상가에 세븐일레븐이 생겼다. MBC 드라마 ‘질투’에서 최수종과 최진실이 이 편의점에서 데이트를 하면서 엄청난 붐을 일으킨다. 여기에 늘 있던 술이 바로 패스포트와 섬싱 스페셜(Something Special)이었다. 당시 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우유와 함께 위스키를 마시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소용량 위스키도 늘어

    패스포트.

    패스포트.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집에서 술을 마신다고 하면 알코올 중독자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류 품목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취미로 술을 즐기는 층이 늘고 있다. 술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굳이 대용량 제품이 필요하지 않다. 100㎖, 200㎖만 돼도 충분하다. 대형마트 등에서는 소용량 주류 품목을 대폭 늘렸다. 늘 가격이 부담되던 위스키가 작아지면서 1만 원짜리 한 장으로도 즐길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집에서 즐기는 홈쿡(Home Cook), 홈바(Home Bar) 시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주류 관련 액세서리 매출도 올라갔다. 잔, 거치대, 와인 셀러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최고급 위스키를 표방하는 맥켈란은 벤타코리아와 협업해 북유럽 스타일의 위스키 바스켓(basket)을 판매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일반 바스켓과 달리 따뜻한 황금색 조명이 들어온다는 것. 여기에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연결, 듣고 싶은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놨다. 내부에는 얼음을 넣는 공간도 있어 위스키를 시원한 상태로 마실 수 있다. 집과 야외에서 분위기 있게 즐기기 위한 아이템이자, 위스키의 새로운 시장을 여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위스키 시장은 작아지고 있지만 차별화된 맛과 콘텐츠로 승부하는 위스키는 계속해서 성장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싱글몰트 위스키(single malt whiskey)다. 기존 국산 위스키는 대부분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ey)로, 맥아(몰트)뿐 아니라 다른 곡물(밀, 보리, 감자 등)을 넣은 위스키를 배합해 숙성시켜 만들었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오직 맥아로만 만들었으며, 하나의 증류소에서 증류 및 배합을 진행한다. 그래서 양조장 특유의 맛과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셰리 오크통, 버번 오크통 등 숙성 용기를 바꿔 맛을 달리하고, 숙성 장소에 따라 차별화도 꾀하고 있다. 이렇게 넓어진 제품군을 통해 꾸준히 위스키 마니아를 양산하고 있다. 결국 위스키가 살아남는 길은 권위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위스키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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