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5

2020.06.26

‘태권 트롯맨’ 나태주, “꾹꾹 눌러쓴 손편지 보며 수면 부족 이겨낸다”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0-06-25 11:38:1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태권도 선수 출신 트롯 가수로 화제를 모으는 나태주. [박해윤]

    태권도 선수 출신 트롯 가수로 화제를 모으는 나태주. [박해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나태주’를 검색하면 ‘풀꽃’이란 시로 유명한 시인이 가장 상단에 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청년 트롯 가수의 프로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1990년생으로 21년째 태권도와 인연을 맺고 있다. 9세에 태권도를 시작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선수 생활을 했다. 2010년에는 영화 ‘히어로’로 스크린에 데뷔하기도 했다. 이후 ‘더 킥’(2011)이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고, 2015년 개봉된 휴 잭맨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팬’으로 해외에 진출한 적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올 들어 ‘미스터트롯’ 출연을 계기로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비록 이 프로그램에서 최종 결선에 오르진 못했지만 방송 내내 건강하고 밝은 매력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현재 아이돌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초통령’으로 불릴 정도다. 매일 빡빡하게 잡혀 있는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수면이 턱없이 부족함에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나태주를 ‘주간동아’로 초대했다.

    나태주는 “팬들의 응원 글을 읽으면서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박해윤]

    나태주는 “팬들의 응원 글을 읽으면서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박해윤]

    -발목을 어쩌다 다친 건가. 

    “어제 ‘불후의 명곡-왕중왕전’ 녹화 중 맨발로 공중 발차기 시범을 보이다 발목이 삐끗했다. 태권도를 하다 보면 이런 부상이 잦다.” 



    -트롯 가수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미스터트롯’ 출연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태주만을 사랑해주는 팬들이 생긴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무도인을 넘어 내가 원하던 꿈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감사할 따름이다. 요즘 일정이 빡빡해 잠잘 시간이 많지 않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돼 너무도 기쁘다.” 

    -최근 전자랜드 CF를 2편 찍었다. 광고 출연은 이번이 처음인가. 

    “난생처음이다. TV에 내 얼굴이 비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신기하다. 평생 이런 경험을 못 할 줄 알았는데 이쪽저쪽에서 나태주라는 사람을 찾고, 나를 언급해주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21년 동안 태권도를 하고, 배우로 연기를 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에 젖어 있다.” 

    -이제는 나태주 하면 시인보다 트롯 가수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래전 네이버에 프로필이 등록됐는데 내 이름을 치면 항상 나태주 시인이 먼저 떴다. 그렇게 저명한 시인에게서 영광스럽게도 먼저 연락이 왔다. ‘늘 응원하고 있다. 같은 나씨로서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얼굴도 꼭 보자’고 하셨다. 최근 발간된 시집도 3권이나 보내주셨다. 시인의 ‘풀꽃’이란 시를 참 좋아한다. 어떤 분은 내가 그 시를 쓴 줄 안다. ‘노래도 잘하고 태권도도 잘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감성적인 글귀도 잘 쓰냐’고 하시더라(웃음).”

    방송 녹화장에서 발목을 다쳐 공중 발차기를 선보이지 못한 나태주가 ‘주간동아’와 화보 촬영 도중 멋진 품새로 그 느낌을 살리고 있다. [박해윤]

    방송 녹화장에서 발목을 다쳐 공중 발차기를 선보이지 못한 나태주가 ‘주간동아’와 화보 촬영 도중 멋진 품새로 그 느낌을 살리고 있다. [박해윤]

    청춘 가수 나태주도 풀꽃을 닮았다. 화보를 찍는 동안에는 남자의 향기를 물씬 풍겼지만 기자와 사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을 땐 천진한 아이 같은 표정으로 속내를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알면 알수록 더 호감이 가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자세히 보니 예쁘다. 오래 보니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무도인이면서 배우이고 가수이기도 하다.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태권도로 김연아, 손연재 같은 선수가 되는 것이 첫 번째, 이소령처럼 마샬 아트적인 면을 가진 배우가 되는 것이 두 번째 꿈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간직한 꿈이 트롯 가수다. 아주 어릴 때부터 트롯 가수가 되고 싶었다. 지금의 소속사(K타이거즈)에 태권도 시범단으로 들어간 것이 14년 전인 중학교 3학년 때인데 19살이 지나면서 대표님에게 처음으로 한 간청이 ‘트롯 앨범을 내주십시오’였다.” 

    -1990년생이 어떻게 트롯을 좋아하게 됐나. 

    “아버지가 노래 좀 하신다. 고모 여섯 분 가운데 트롯 봉사 공연을 하는 분도 있다. 그 영향으로 생활 속에서 댄스나 발라드보다 트롯과 스킨십이 더 많았다. 부모님의 유전자도 한몫했을 거다. 전라도 분들이라 뽕짝 특유의 꺾기가 유연한 편이다.” 

    -트롯 가수가 된 데는 ‘미스터트롯’에 함께 출연했던 장민호 씨의 영향도 있었다고 들었다. 

    “민호 형과는 9년 전 연예인 봉사단 컴패션으로 인연을 맺었다. 차인표 선배님도 활동을 함께했다. 어느 날 봉사 공연을 하던 중 트롯 한번 불러보고 싶어 양해를 구하고 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끝나고 민호 형이 ‘트롯에 소질이 있다. 형이 도와줄 테니 마음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했다. 당시 형은 트롯 가수로 막 데뷔할 준비를 하던 터였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다 소속사의 권유를 따랐다. 민호 형처럼 그 무렵 데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그런 감정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큰 선물을 이번에 받은 것 같다. 인내한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2010년 영화 출연은 아르바이트 개념인가. 

    “그때는 태권도의 저변 확대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태권도가 대중문화로 각광 받을 방법을 고민한 끝에 방송 노출을 생각해냈고 그러기 위해 연기에 입문했다. 태권도에 K팝이나 액션을 접목하면 당장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이 좋아해 줄 거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다.” 

    -배우로 데뷔한다고 해서 누구나 꽃길을 걷는 건 아니다. 태권도 시범단과 배우 활동을 겸하면서 정신적, 경제적으로 힘든 경험을 한 적이 있나. 

    “태권도 종주국임에도 태권도인에게 주어지는 달란트나 일자리가 많이 부족하다 보니 유명한 팀에 들어가지 않는 한 보상이 열악했다. 부상도 잦았고 내가 앞으로 이 이상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선수 생활을 빨리 접으려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수입도 비수기, 성수기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다. 배우로 데뷔해 쉽게 ‘알바’를 구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버스비가 없어 운동하러 못 간 적도 많다. 다 커서 집에다 손 벌리기엔 눈치가 보였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꿈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던 것 같다.” 

    -무엇으로 그 시간을 버티고 견뎠나.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나중엔 빛이 조금이라도 비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때를 돌아보면 태권도가 큰 버팀목이 됐다. 남는 시간에 운동하고 후배들 육성하며 잘 견뎌냈다.” 

    -2015년 개봉된 ‘팬’이라는 할리우드 영화엔 어쩌다 출연하게 됐나.
     
    “2011년에 개봉된 첫 주연작 ‘더 킥’을 보고 워너브라더스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다. 현장 오디션까지 치르고 합격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많이 참가했는데, 당시 감독이 나를 뽑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태주라는 배우를 포괄적으로 봤을 때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영어 발음도 나쁘지 않다’고. 그 덕에 휴 잭맨,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함께 영국에서 6개월 정도 촬영했다.” 

    -이후엔 할리우드에서 러브콜이 없었나. 

    “할리우드에서 두 작품이 들어왔는데 준비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제작이 무산됐다. 현재 제작 중인 할리우드 대작에서도 섭외가 들어와 출연 여부를 논의 중이다.”

    인터뷰를 할 때는 더 천진한 모습을 보이는 나태주. [박해윤]

    인터뷰를 할 때는 더 천진한 모습을 보이는 나태주. [박해윤]

    나태주의 자택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다. 그곳에서 그는 아버지와 누나, 남동생과 함께 산다. 그의 매니저에 따르면 촬영 일정이 많을 때는 고양시에 있는 숙소에서 지내고, 편히 쉬고 싶을 때 가족이 있는 상암동을 찾는다고 한다.

    -트롯 가수가 된 후 가족의 반응이 궁금하다. 

    “가족 모두 너무나 좋아한다. 주위의 지인들도 마찬가지다. ‘미스트롯’ 남자 편에 꼭 나가라고 한 사람도 고모들과 소속사 식구들이다. 나 역시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미스터트롯’을 준비했다.” 

    -그 와중에 국가대표를 두 번이나 했다고 들었다. 

    “2018년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와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자유 품새 부문에서 1등을 했다. 이전엔 전국대회 1등이 가장 좋은 실적이었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국제대회 시합보다 더 치열해 내심 부담이 됐지만 이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도전했다.” 

    -지난해 11월 브루나이 국왕이 방한했을 때 태권도 시범단의 일원으로 청와대에서 공연을 했는데 앞으로는 가수로 초대받는 일이 더 많을 것 같다. 

    “태권도를 21년간 했음에도 그 시간보다 지금이 더 좋다. 좋아하는 트롯 가요를 부르며 내 마음대로 무대를 꾸밀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 행복하다.” 

    -태권도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환호한다. 최근 태권도협회, 태권도진흥재단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태권도장들이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든데도 ‘나태주를 보면 힘이 난다’고 한다. 전 세계 태권도 인구가 약 1억 명이다. 저변을 더 확대하기 위해 태권도 홍보대사로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잠이 부족하진 않나. 

    “하루 2시간 정도 자는 것 같다. 매일 스케줄이 빡빡하게 잡혀 있어 오늘도 2시간 자고 왔다. 거의 못 쉬기 때문에 차로 이동할 때 쪽잠을 잔다. 집보다 차가 좋다. 하하.” 

    -식사도 규칙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겠다. 

    “원래는 하루 7~8끼를 먹는데 요새는 자주 먹지 못한다. 대신 몸에 해로운 인스턴트 식품을 거의 끊고 건강에 좋은 채소 위주로 식사를 하되 적당량만 먹는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자신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팬들이 촬영현장에서 보내주는 응원 함성과 팬카페에 올리는 응원 글이다. 그 덕분에 모든 일정을 즐겁게 소화하고 있다. 팬카페에 종종 들어가 팬들이 올린 글을 본다. 팬카페 이름이 ‘날개 달린 태권트롯맨’이다. 날개 달고 훨훨 날라는 의미다. 거기에 1분마다 글이 올라올 정도로 사랑을 듬뿍 주셔서 많이 웃는다. 나도 팬카페의 ‘태주가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고마운 마음을 글로 전한다.” 

    -가장 큰 감동을 안긴 선물을 떠오른다면? 

    “팬들이 보내준 모든 선물이 다 소중하고 감동적이지만 특히 손 편지가 기억에 남는다.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글자 하나하나를 다 읽어본다. 팬들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먹먹하다. 예전에 여자친구에게 손편지를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른 감흥과 감동이 밀려온다.” 

    -살다 보면 길을 잃고 헤맬 때도 있다. 그때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는 좌우명이 있나. 

    “태권도를 하며 자연스럽게 깨달은 ‘겸손하자’와 어떤 순간에도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한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다.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밝고 건강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또 그런 반응이 선순환을 일으켜 늘 몸과 정신에 ‘겸손’과 ‘긍정’ 에너지가 배어있게 하는 것 같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