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6

2020.04.24

허문명의 Pick

“좌파가 기득권 세력으로 재편됐다”

30대 동양철학자 임건순이 본 총선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0-04-24 09: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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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4·15 총선에서 패한 미래통합당 내부에서는 1980년대생, 30대, 2000년대 학번인 ‘830세대’를 전면에 세우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늙은 우파’로는 미래가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얘기다. 그렇다면 젊은 우파들은 이번 총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젊은 동양철학자 임건순(39) 씨는 조국 사태 때 386 운동권 좌파를 향해 날 선 비판을 했다. 1981년생인 그는 묵자, 손자, 노자, 한비자, 순자 등 제자백가 책을 14권 펴낸 전업 작가이면서 페이스북 등에서 한국 정치에 대해 돌직구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총선 직후 그를 만났다.

    상위 1%에서 10%로 주류 교체

    그는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한마디로 한국 사회 주류가 완전히 교체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선거”라고 총평했다. 

    “더는 보수 우파가 기득권층이 아니라 좌파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기득권이 됐음을 보여준 결과다. 현재 한국 사회 메인 스트림이 된 노동조합, 공공 부문 종사자, 386세대가 장악한 문화·언론계가 다 민주당 지지자다. 나는 이미 이명박 정권 중기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보수 우파 세력이 종지부를 찍는 과정을 보면서 고학력 수도권 거주자, 30~50대 화이트칼라, 공무원·공기업 같은 공공 부문 종사자 등 상위 10% 계층이 재벌, 검찰, 보수 언론이 갖고 있던 1% 권력을 차근차근 접수해갔다고 생각했다. 권력지형도는 변하고 있었지만 문화 지체, 의식 지체가 있어 잘 느끼지 못한 거였다. 



    어떤 면에서 박 전 대통령 당선은 우파가 연명한 것이지 승리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아직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고 청구서를 받고 있지 않은가. 주류는 이미 1%가 아닌 상위 10%로 넘어간 상태였는데, 상황을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지체 현상’이 있었고 이번 총선 결과가 그것을 백일하에 드러낸 거다.”
    그는 “우파, 특히 나이 많은 미래통합당 어르신은 자신들이 아직도 사회 주류라고 착각하고 있었고 여당 사람들도 자신들이 줄곧 피해자라고 얘기해왔다. 하지만 이번 총선으로 386 운동권이 장악한 여당과 청와대는 더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수 없게 됐다”고도 했다. 

    “조국 사태는 강남 좌파의 세습 구조를 그대로 보여줬는데, 이들을 어떻게 사회 비주류이자 약자라 할 수 있겠는가. 엄연한 사회 주류였으면서도 약자 편에 선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고, 국민도 여기에 속아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으로 좌파가 명실상부 입법·사법·행정을 장악한 실질 권력을 갖게 됐으니 온갖 사회적·정치적 문제를 떠안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우파는 그동안 좌파를 향해 ‘제대로 월급 받으며 세금 내본 적이 있느냐’며 ‘우파에 기생해 살았다’고 손가락질했지만 이제는 진보가 위쪽, 보수가 아래쪽으로 운동장이 기울었다고 생각한다. 이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우파는 너무 늙었고 아직도 자신들이 주류라고 생각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끼리끼리다. 이번에 미래통합당에서 공천권을 준 인물들을 보라. 대부분 오랜 기간 주류로 살았던 사람이다. 학력고사와 고등고시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고 체제 중심으로 들어가 ‘갑’으로만 장기간 살아온 사람에게 과연 세상을 균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조계종 승려들에게 육포를 선물하는 무신경은 평생 남 눈치 안 보고 대접만 받아온 늙은 우파의 모습을 상징하는 거다.” 

    우파 안에서도 세대별로 인식 차이가 있어 보인다. 

    “요즘 젊은 우파는 이미 ‘비주류이자 약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우파 이미지가 ‘구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우파’라고 얘기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늙은 우파’는 이런 젊은 우파의 감수성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미래통합당은 정권심판만 들고 나와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는 메시지 외에는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 보수 어르신들에게는 자기희생, 헌신 같은 ‘사과나무 정신’이 없어 보인다.”

    기득권 유무로 나뉜 성 밖, 성안 사람들

    평소 한국 사회의 대립 구조를 성(城) 밖, 성안 사람들이라고 표현해왔는데. 

    “준(準)내전 상황이나 다름없는 한국 사회에서는 보수 대 진보나 좌우 대결이 아니라, 성안과 성 밖, 전 근대 세력과 근대 세력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고 본다. 성안 사람들은 공무원과 공기업, 이른바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으로 대변되는 조직노동자다. 이들은 절대 해고 위험이 없고 호봉제 혜택도 누리고 있다. 이에 비해 성 밖 사람들은 비정규직 하청업체 종사자나 영세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비숙련 노동자, 소상공인, 소규모 자영업자로 하루하루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영세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불만이 많았던 것 아닌가. 

    “소득주도성장이나 주52시간 근무제로 수도권 3040세대, 화이트칼라, 노조로 보호받는 노동자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즐기며 이득을 보고 있다. 성 밖에 있는 사람들만 직격탄을 맞았다. 심지어 투표일에도 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수는 많지만 조직이 없고, 대변할 수 있는 스피커도 없으며, 시간자본과 문화자본도 없다. 현 정권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미래통합당은 이들의 마음을 전혀 얻지 못했다. 상위 1% 기득권층의 대변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 하층 남성들에게 어필하는 시그널과 메시지를 보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는 거다. ‘강남 좌파’를 이기려면 이제 ‘강북 우파’가 나와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중하층 러스트 벨트(미국 오하이오주와 펜실베이니아주 등 제조업이 발달한 중서부지역)의 강력한 노동자 지지층처럼 소득 수준이 평균 이하인 20대 남성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어젠다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당분간은 강남 좌파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정치를 인생 이모작으로 생각하는 늙은 우파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그는 이 대목에서 우파에게 뼈저린 경고를 하고 싶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는 정치가 장차관, 판검사, 행시 패스한 사람의 인생 이모작이 돼서는 안 된다. 좌파를 운동권이라고 비난하지만, 우파 중에서는 평생 대접만 받아오다 퇴직한 다음 정치로 인생 이모작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중도 확장이 안 되고 감성이나 공감 능력도 없다 보니 국민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평생 갑으로만 살던 사람이 국민을 섬기는 을의 입장이 되기는 매우 힘들다.” 

    미래통합당 안에서 젊은 우파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투표율이 높았던 점을 보면 정치로 몰리는 사회적 에너지가 높은 것 같지만, 정치로 가는 유능한 젊은이는 갈수록 줄어들 듯하다. 이건 여당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비약적인 수명 연장이나 의료기술 발전 때문에 50, 60, 70대가 오래 집권하는 게 아니라, 젊은이들이 정치권에 매력을 느낄 만한 유인체계가 부재해 정치 수준이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갈수록 늙고 수준 낮은 열등한 이들의 통치를 받는 구조가 될 것 같다. 이것이 체제 위기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국민도 더는 정치인을 엘리트로 보지 않는다. 정치인보다 연봉 3억, 5억, 10억 버는 사람을 더 선망하면서 능력 있다고 생각한다. 여든 야든 어떻게 하면 똑똑한 젊은이를 직업정치인으로 데려올 것이냐가 앞으로 정치의 질을 높이는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번에 정의당이 미래통합당보다 더 가혹한 민심의 회초리를 맞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번 총선으로 3세대 진보정당의 역사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롤(LOL·리그오브레전드) 대리 게임 논란을 빚은 사람을 비례대표 추천순위 1번으로 앉힌 걸 보면서 젊은이의 감수성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를 대변해야 할 정의당이 강남 좌파, 조직노동 운동가 같은 기득권층을 대변한다면 민주당과의 차별성이 있겠나. 하긴 심상정 당대표부터가 금속노조 간부 출신이니 새로운 노선으로의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 민주당 수뇌부나 정의당 수뇌부나 모두 1980년대 운동권이다. 

    정의당은 민주당 하청 정당처럼 행동하지 말고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싸울 각오를 하면서 노선 전환을 해야 하는데, 똑같이 민주당처럼 기득권 편을 드니 누가 지지하겠나.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얘기는 그만하고 진정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 사회 최대 기득권 조직인 민주노총을 배반해야 한다.” 

    우파에게 조언한다면. 

    “지금이야말로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해야 할 때다. 기업이, 자본가가 투자해 기업인과 기술자를 대변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철학자, 문화인을 끌어모아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 더는 ‘안보팔이’나 공포마케팅을 하지 말고 어떤 철학에 기초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어떻게 세련된 언어와 담론으로 만들어낼지 절치부심해야 한다. 코앞에 닥친 선거만 이겨보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파는 세 가지를 끊어야 한다. 태극기집회, 광화문 정치예배, 저질 정치 우파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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