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8

2015.07.27

민간인 사찰 없었다고?

15년 차 안보담당 기자의 ‘해킹 의혹’ 경험기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5-07-24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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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인 사찰 없었다고?
    짧지 않은 기자생활, 크고 작은 경험을 했다. 지금 꺼내놓으려는 이야기는 그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기억에 속한다. 그럼에도 굳이 활자로 남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2주 이상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해킹 의혹과 관련해 매우 유력한 심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7년 전 생긴, 이후 지금까지도 상처로 남아 있는 개인적 경험이다.

    사건의 시작은 2008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는 그해 ‘신동아’ 11월호를 통해 ‘내우외환 김성호 국정원’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당시 김성호 원장을 중심으로 한 국정원 수뇌부의 조직 장악력에 대해 청와대와 여권 핵심 등이 갖고 있는 불신과 논란을 짚은 기사였다.

    기사가 나간 이후 국정원 측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거셌다.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다는 반론이 아니라, 기사의 취재원을 집요하게 캐내려는 시도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됐다. 취재원의 익명성을 보호해야 하는 기자로서 당연히 거부했지만, 이후 국정원은 기자와 개인적 인연이 있는 국정원 직원들, 예컨대 대학 선후배나 먼 인척 등을 감찰실로 소환해 강도 높은 압박조사를 벌였다. 정부부처와의 대립을 적잖게 겪어왔지만 취재기자 개인의 친지를 압박하는 방식은 듣도 보도 못한 경우였다. 그러나 기자와 접촉이 뜸했던 이들에게서 별다른 ‘소득’이 나올 리 없었다.

    그들은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뜻밖의 일은 그다음에도 이어졌다. 국정원 측이 탈북자 출신의 50대 직원 한 사람을 감찰실로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 가운데 국정원 분위기에 관한 사소한 디테일, 예컨대 최근 들어 예산 절감 차원에서 엘리베이터를 격층 운행 중이라는 이야기 정도를 들려준 사람이었다. 놀랐던 건 기자가 이 직원을 만난 사실을 국정원 측이 어떻게 알아냈느냐는 점. 당시 기자가 쓰던 휴대전화는 차명이었다. 국정원 직원 전체의 통화기록을 조회하지 않은 이상 그를 감찰 대상으로 지목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 이전까지 국정원의 압박 속에서도 기자가 내심 자신만만했던 근거다.



    해당 기사의 핵심 정보를 들려준 수많은 주요 취재원을 두고 유독 이 직원만 감찰을 받은 이유도 의문스러웠다. 다른 점은 단 한 가지였다.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만 취재수첩이 아닌 노트북컴퓨터에 파일 형태로 기록해 저장해뒀다는 점. 만난 시간과 장소, 오간 이야기를 상세하게 정리해둔 메모였다.

    나중에야 확인한 일이지만, 조사 과정에서 감찰실 직원들이 면담자리의 정황을 세밀하게 알고 있었다는 점은 더욱 의심스러웠다. 해당 직원은 당시 감찰실 직원들이 “황 기자가 우리에게 이미 다 얘기했다, 털어놓으라”고 압박했다고 회고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보를 세밀하게 제시하는 바람에 그대로 믿었다는 것. 그러나 기자는 그러한 정보를 국정원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당시 감찰실 측은 조사 과정에서 “(두 사람이 만난) 냉면집 옆자리에 어린아이와 엄마가 앉아 있었다”며 “모든 대화 내용을 알고 있으니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 직원은 이를 전하며 “우리는 옆 테이블이 없는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자는 모골이 송연했다. 옆자리에 아이와 엄마가 앉았다는 사실이 또렷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붐비는 대형 음식점 내부 정황을, 그것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확인할 수 있는 정상적인, 혹은 합법적인 방법이 있는지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비슷한 경우는 또 있었다. 이 직원은 “(감찰실 직원들이) 내가 그해 9월 말 있었던 한 행사장을 방문했던 경험담을 황 기자에게 이야기했다고 하더라”고 말한다. 그는 이 또한 같은 부서 직원들을 상대로 취재해 지어낸 ‘심리적 압박용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자 역시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지 당시에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무실로 돌아와 취재용 메모를 다시 열어보니, 놀랍게도 9월 말 행사장에 대한 이야기가 적시돼 있었다. 이 직원은 또 감찰실 직원들이 “‘downsizing’이라는 단어를 당신이 사용했다”고 적시하며 물었다고 전했다. 이 단어 역시 메모 파일에 들어 있었다.

    공교로운 일은 또 있다. 기자와 접촉한 적이 없는 국정원의 한 중견 간부가 마찬가지 사유로 조사받았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한 것. 만나기는커녕 전화나 e메일 한 번 주고받은 적이 없는 사람을 왜 불렀을까. 의심의 단초는 하나뿐이었다. 당시 기자가 개인용 컴퓨터(PC)에 저장해둔 메모 파일, 정확히는 앞서 설명한 직원과의 대화를 담은 파일과 같은 폴더에 있었던 다른 메모의 제목 가운데 하나가 해당 간부의 이름이었다. 국정원 대북전략국의 ‘차세대 주자’로 알려져 있어 언젠가 만나야 할 인물이라는 취지에서 남긴 메모였다. 훗날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들은 내용이지만 이 직원이 감찰과정에서 받은 수모 역시 적잖았다고 했다.

    권력 다툼과 승진 경쟁 사이에서

    이쯤 되면 당시 국정원이 기자의 노트북컴퓨터를 해킹했다고 의심하는 게 지나친 의혹일까. 기자의 친지를 불러다 감찰을 벌이는 비정상적 행동을 했던 국정원이, 마땅한 희생양을 찾지 못하자 PC나 휴대전화를 해킹하는 극단적 수단을 택했을 가능성이 과연 제로(0)일까. 당시 국정원 수뇌부는 청와대 핵심의 대구·경북 출신 인사들이 국정원 내부의 같은 지역 출신 직원들과 결탁해 자신들을 흔들려 한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문제의 ‘신동아’ 기사에 격분한 수뇌부가 감찰실을 강도 높게 다그치며 ‘내부 발설자를 찾아내라’고 압박했다는 사실 역시 다양한 경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국정원은 이 탈북자 출신 직원에게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가 해준 말은 기사의 핵심 내용과는 무관한 지엽말단이었지만, 고령에 탈북자 출신이라는 신분이 ‘희생양’으로 삼기에 가장 적합했으리라고 그는 말한다. 당시 ‘신동아’ 편집실은 이 직원의 해임 처분을 막느라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후 진행된 소송 과정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애썼으나 ‘분노한 수뇌부’의 뜻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해당 직원에게 해임처분을 내린 직후인 2009년 1월, 김성호 전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수뇌부 역시 교체됐다. 인사 배경에는 어김없이 기자가 ‘신동아’ 기사를 통해 짚었던 수뇌부 내부의 알력과 조직 장악력 미비 문제가 거론됐다. 해임된 직원이 이후 각종 매체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북한 전문가로 명성을 얻었다는 사실만이 미미하기 짝이 없는 위안이었다.

    이후 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기자는 PC에 메모 파일을 남기지 않는다. 펜과 수첩만을 믿을 뿐이다. 일정 관리 프로그램도 사용하지 않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또한 지난해 ‘망명 사태’로 텔레그램 사용자가 늘어나기 전까지는 쓰지 않았다. 업무는 불편하고 시대에 뒤처질까 염려스럽지만, 해킹으로 취재원이 노출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해서다.

    이러한 이유로 “내국인 해킹은 없었다”는 국정원의 말을 개인적으로 그리 신뢰하지 못한다. 기자로서 오랜 기간 경험해온 국정원은 특히 이런 문제에서 그리 믿을 만한 조직이 아니다. 오히려 상시적인 권력 다툼과 승진 경쟁에 내몰리는 간부들이 수뇌부와 권력 핵심의 의중에 따라 그 정도 ‘선(線)’쯤은 훌쩍 넘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조직에 가깝다. 국정원의 해킹 의혹이 진실인지 여부를 규명하는 작업과 관련해, 2008년 가을부터 기자가 겪은 ‘기묘한 일’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 협조할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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