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지나가는 바람이라기엔 너무 거세다.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의 공화당 주자 가운데 한 명이자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69)가 초반 레이스의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다. 웬만한 대선 이슈는 트럼프로 수렴되는 형국. 민주당 간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마저도 화제성에선 트럼프에 미치지 못한다. 아직 고만고만한 다른 공화당 주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워싱턴에서 만나는 미국인 상당수도 트럼프를 화제에 올린다. 국무부 한 고위 외교관은 기자에게 “한국에선 트럼프 현상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기도 했다.
공화당 성향 백인 유권자들
지난달 출마 선언 직후 트럼프는 미국 내 히스패닉에 대해 “미국 여자들을 강간했다” “마약을 실어 나르고 있다”고 막말을 하는 ‘노이즈 마케팅’을 벌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곧 잊힐 주자로 간주됐다. 현지 언론들도 ‘트럼프가 사업하듯 지나친 승부수를 뒀다’며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메이시 등 유명 백화점은 히스패닉 소비자를 의식해 그의 이름을 딴 남성복 브랜드를 매장에서 퇴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히스패닉 비하 논란이 장기화하면서 트럼프는 오히려 공화당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시작했고, 급기야 공화당 간판주자였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지지율을 제치며 공화당 주자 선두로 부상했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 방송의 공동 여론조사(7월 16~19일, 1002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자들로부터 24% 지지율을 기록해 2위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13%), 3위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12%)를 2배가량 앞섰다. 지난달 같은 기관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4% 지지율을 얻은 것과는 천양지차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 돌풍의 원인은 뭘까. 현지 언론들은 먼저 트럼프가 오바마 정부의 진보정책에 지친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본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의 정책에 화가 난 공화당 지지자들을 트럼프가 긁어모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이 지난해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정부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 화가 난다’고 응답한 사람은 공화당 지지자의 경우 37%나 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와 희대의 섹스 스캔들에 휘말렸던 1998년에도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정부에 화가 난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14%에 불과했다. 2009년부터 7년째 지속되고 있는 진보 성향의 정부에 대해 공화당 지지층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 보여주는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그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력해온 개혁 작업의 핵심 이슈는 한마디로 백인 주류계층을 위한 정책을 수정하겠다는 것. 의료보험개혁 프로그램인 ‘오바마 케어’가 대표적이고, 멕시코 등에서 넘어온 불법 이민자의 추방을 유예하는 이민개혁도 그중 하나다.
트럼프는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다. 히스패닉이 백인 중산층 몫의 일자리 가운데 일부를 차지하고 급기야 백인 주류의 잠재적 경쟁자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보니 그의 히스패닉 비하 발언이 백인 사이에서 열광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이슈를 트럼프가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격’으로 시원하게 내질렀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백인 상당수가 익명이 보장되는 각종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가 공화당의 주요 정책인 자유시장주의와 작은 정부를 충실히 대표하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하지만 다른 공화당 주자들이 ‘표의 확장성’을 의식해 히스패닉과 흑인 계층 껴안기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백인 중산층이라는 ‘집토끼’를 확실히 겨냥하는 선택과 집중을 보여줬다. 지금까지는 이게 먹혀들었다.
그러나 기세를 올리던 트럼프도 최근 큰 고비를 맞고 있다. 공화당의 간판 중진이자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비하하면서 전방위로 뭇매를 맞고 있기 때문. 7월 18일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열린 행사에서 “매케인은 전쟁영웅이 아니다. 포로로 붙잡혔기 때문에 전쟁영웅이라는 것인데, 나는 붙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공화당 대선주자들은 물론 같은 참전용사였던 존 케리 국무부 장관까지 가세해 트럼프 때리기에 나섰다. 공화당에 우호적인 ‘폭스뉴스’마저 ‘이번엔 트럼프가 사람을 잘못 골랐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멍청이(jackass)’와 ‘바보(idiot)’
특히 트럼프의 인기 고공행진이 못마땅했던 다른 공화당 주자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는 7월 2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서 “트럼프이즘(Trump-ism)이라는 암에 맞서 보수주의를 지켜야 한다. 트럼프이즘은 유해한 선동과 헛소리로 똘똘 뭉친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아예 대놓고 “공화당과 국가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시점에 트럼프는 (막말로) 멍청이(jackass)가 돼가고 있다. 나는 그가 멍청이라고 생각한다”고 힐난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7월 21일 유세에서 “바보(idiot) 같은 그레이엄이 몇 년 전 내게 전화를 걸어 ‘방송에 나와 나에 대해 잘 좀 말해달라. 그리고 후원금 좀 내달라’고 한 적이 있다”며 그레이엄의 휴대전화 번호를 유세장에서 공개해버리며 맞불을 놓았다. 이를 본 트럼프 지지자들은 직접 그레이엄에게 전화를 걸었고, 너무 많은 전화를 받은 그레이엄은 한동안 착신을 중지하기도 했다.
정작 매케인은 직접적인 반응은 피한 채 “트럼프는 참전용사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거물인 매케인까지 가세한 이번 논란은 백악관도 관심을 보일 정도.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은 7월 20일 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항상 매케인 의원의 영웅적 행동을 존경하고 존중해왔다”며 간접적으로 트럼프를 비판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주자로서 계속 상승세를 이어갈지, 순간의 바람에 그칠지는 매케인 비하 발언 후폭풍에 대한 그의 대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제로 매케인 논란 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빠지는 분위기다. 미국 언론들은 고도의 사업수완을 가진 트럼프가 매케인 비하 발언에 대해서만큼은 조만간 꼬리를 내리며 ‘지지율 손절매’에 나설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공화당 성향 백인 유권자들
지난달 출마 선언 직후 트럼프는 미국 내 히스패닉에 대해 “미국 여자들을 강간했다” “마약을 실어 나르고 있다”고 막말을 하는 ‘노이즈 마케팅’을 벌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곧 잊힐 주자로 간주됐다. 현지 언론들도 ‘트럼프가 사업하듯 지나친 승부수를 뒀다’며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메이시 등 유명 백화점은 히스패닉 소비자를 의식해 그의 이름을 딴 남성복 브랜드를 매장에서 퇴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히스패닉 비하 논란이 장기화하면서 트럼프는 오히려 공화당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시작했고, 급기야 공화당 간판주자였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지지율을 제치며 공화당 주자 선두로 부상했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 방송의 공동 여론조사(7월 16~19일, 1002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자들로부터 24% 지지율을 기록해 2위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13%), 3위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12%)를 2배가량 앞섰다. 지난달 같은 기관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4% 지지율을 얻은 것과는 천양지차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 돌풍의 원인은 뭘까. 현지 언론들은 먼저 트럼프가 오바마 정부의 진보정책에 지친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본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의 정책에 화가 난 공화당 지지자들을 트럼프가 긁어모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이 지난해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정부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 화가 난다’고 응답한 사람은 공화당 지지자의 경우 37%나 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와 희대의 섹스 스캔들에 휘말렸던 1998년에도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정부에 화가 난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14%에 불과했다. 2009년부터 7년째 지속되고 있는 진보 성향의 정부에 대해 공화당 지지층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 보여주는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그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력해온 개혁 작업의 핵심 이슈는 한마디로 백인 주류계층을 위한 정책을 수정하겠다는 것. 의료보험개혁 프로그램인 ‘오바마 케어’가 대표적이고, 멕시코 등에서 넘어온 불법 이민자의 추방을 유예하는 이민개혁도 그중 하나다.
트럼프는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다. 히스패닉이 백인 중산층 몫의 일자리 가운데 일부를 차지하고 급기야 백인 주류의 잠재적 경쟁자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보니 그의 히스패닉 비하 발언이 백인 사이에서 열광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이슈를 트럼프가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격’으로 시원하게 내질렀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백인 상당수가 익명이 보장되는 각종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가 공화당의 주요 정책인 자유시장주의와 작은 정부를 충실히 대표하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하지만 다른 공화당 주자들이 ‘표의 확장성’을 의식해 히스패닉과 흑인 계층 껴안기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백인 중산층이라는 ‘집토끼’를 확실히 겨냥하는 선택과 집중을 보여줬다. 지금까지는 이게 먹혀들었다.
그러나 기세를 올리던 트럼프도 최근 큰 고비를 맞고 있다. 공화당의 간판 중진이자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비하하면서 전방위로 뭇매를 맞고 있기 때문. 7월 18일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열린 행사에서 “매케인은 전쟁영웅이 아니다. 포로로 붙잡혔기 때문에 전쟁영웅이라는 것인데, 나는 붙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공화당 대선주자들은 물론 같은 참전용사였던 존 케리 국무부 장관까지 가세해 트럼프 때리기에 나섰다. 공화당에 우호적인 ‘폭스뉴스’마저 ‘이번엔 트럼프가 사람을 잘못 골랐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멍청이(jackass)’와 ‘바보(idiot)’
특히 트럼프의 인기 고공행진이 못마땅했던 다른 공화당 주자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는 7월 2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서 “트럼프이즘(Trump-ism)이라는 암에 맞서 보수주의를 지켜야 한다. 트럼프이즘은 유해한 선동과 헛소리로 똘똘 뭉친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아예 대놓고 “공화당과 국가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시점에 트럼프는 (막말로) 멍청이(jackass)가 돼가고 있다. 나는 그가 멍청이라고 생각한다”고 힐난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7월 21일 유세에서 “바보(idiot) 같은 그레이엄이 몇 년 전 내게 전화를 걸어 ‘방송에 나와 나에 대해 잘 좀 말해달라. 그리고 후원금 좀 내달라’고 한 적이 있다”며 그레이엄의 휴대전화 번호를 유세장에서 공개해버리며 맞불을 놓았다. 이를 본 트럼프 지지자들은 직접 그레이엄에게 전화를 걸었고, 너무 많은 전화를 받은 그레이엄은 한동안 착신을 중지하기도 했다.
정작 매케인은 직접적인 반응은 피한 채 “트럼프는 참전용사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거물인 매케인까지 가세한 이번 논란은 백악관도 관심을 보일 정도.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은 7월 20일 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항상 매케인 의원의 영웅적 행동을 존경하고 존중해왔다”며 간접적으로 트럼프를 비판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주자로서 계속 상승세를 이어갈지, 순간의 바람에 그칠지는 매케인 비하 발언 후폭풍에 대한 그의 대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제로 매케인 논란 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빠지는 분위기다. 미국 언론들은 고도의 사업수완을 가진 트럼프가 매케인 비하 발언에 대해서만큼은 조만간 꼬리를 내리며 ‘지지율 손절매’에 나설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