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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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파견 北 근로자 외신기자 집단 폭행 사건

중국 공안 수사 착수…외부 노출 꺼리는 평양의 과민반응?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5-06-08 0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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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파견 北 근로자 외신기자 집단 폭행 사건

    5월 31일 외신기자 폭행 사건이 벌어진 중국 지린성 투먼시 북한 공업단지 내 도문동륭복장유한회사. 2013년 겨울 촬영한 사진이다.

    최근 미국과 싱가포르 기자라고 밝힌 남성 2명이 북·중 접경 지역에서 북한 여성 근로자들의 움직임을 촬영하다 이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해 응급실로 긴급 후송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앞서 4월 중순 미국의 한 북한전문매체는 “북한 당국이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들에게 ‘외국 기자 등이 촬영할 경우 폭력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들의 인권 문제가 부각되는 상황이다 보니 이번 사건 역시 적잖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 기자 촬영하면 폭력 대응하라”

    중국 지린성 투먼시에 조성된 북한 공업단지로 진입하면 단지 입구 오른편에 ‘도문동륭복장유한회사’라는 봉제회사가 있다. 이 회사 공장에는 북한 근로자 400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투먼에 거주하는 중국인

    A씨는 5월 31일 일요일 아침 이 회사 앞에서 발생한 사건을 우연히 목격했다.

    아침 7시 30분쯤 정문 앞에 택시가 서더니 남성 2명이 내렸다. 당시 회사 공터에는 북한 여성 근로자 수십 명이 있었다. 남성 2명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 장비를 꺼내 북한 여성 근로자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한 명은 스틸 사진을, 다른 한 명은 동영상을 촬영했다. 이 모습을 본 북한 근로자 20여 명이 단박에 이들에게 몰려들어 왜 찍느냐며 소리를 지르고는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남성 2명은 살려달라고 외치며 신분증을 꺼내 신원을 밝혔다. 미국과 싱가포르 국적 기자였다.



    북한 근로자들은 신분을 확인한 뒤에도 두 사람을 에워싸고 더욱 거칠게 폭행했다. 주변에서 이를 본 중국인이 급히 투먼 당국에 신고했고, 투먼 공안요원과 함께 병원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두 기자는 구급차에 실려 급히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이때가 아침 8시 무렵. 불과 30분 만에 일어난 긴박한 상황이었다.

    외신 기자들의 정확한 소속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중국 공안당국은 이들의 현장 취재 과정과 폭행 사건 전말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의 카메라에는 북·중 접경 지역 여러 곳에서 촬영한 북한 근로자들의 모습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남성도 아닌 여성 근로자들이 이처럼 집단 폭력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4월 17일 미국 북한전문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외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을 문제 삼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커지자, 북한 당국이 ‘파견노동자 행동지침’을 하달했다고 RFA는 보도했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RFA와 인터뷰를 통해 북한 당국이 외국 파견 노동자들에게 ‘작업 현장이나 일하는 모습을 외부 사람들이 촬영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행동지침에는 ‘외국 기자 또는 인권운동가가 촬영할 경우 사진기나 촬영기, 손전화기를 빼앗아 그 자리에서 박살내야 한다’ ‘주저하지 말고 폭력으로 대응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작업 현장에 나타난 기자나 인권운동가를 저지 또는 구타해 그 활동을 저지했을 때에는 노동자에게 그에 맞는 평가가 내려지겠지만, 만일 저지하지 못해 사진이나 동영상이 촬영돼 인터넷이나 다른 나라 언론에 나오는 경우에는 엄격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도 대표는 기자와 통화에서 이 같은 행동지침이 4월 중순 중국과 러시아, 중동, 동남아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 중인 해외 북한 근로자들에게 일제히 하달됐다고 말했다. 최근 러시아에서 일본 방송 취재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북한 근로자들을 촬영하다 북측에 적발돼 봉변을 당하기 전 간신히 피신하는 일도 있었다는 것. 이들은 카메라 장비도 빼앗길 뻔했다고 한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는 평소 시장 등으로 단체 외출을 자주 하던 북한 근로자들이 아예 외출을 삼가는 등 노출을 꺼리고 있다고 도 대표는 덧붙였다. 당국 지시에 따라 외국인들의 카메라에 노출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중국 파견 北 근로자 외신기자 집단 폭행 사건

    중국 지린성 투먼시 북한 공업단지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 2014년 여름 촬영한 사진이다.

    北 근로자 임금 대북 송금 차단 논의도

    기자는 베이징 특파원 기간과 그 이후, 투먼과 단둥 등 북·중 접경 지역을 수시로 찾으며 북한 동향을 취재했다. 이번에 외신 기자 2명이 집단 구타당한 지역은 기자가 북한 근로자들의 동향 취재를 위해 여러 차례 다녀온 곳 중 하나다. 이때 경험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먼저 피해자들의 ‘대담한’ 취재 방식이다. 북한 근로자 촬영은 당사자들에게 노출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숨어 재빠르게 진행하고 빠져나가야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놀랍게도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자신들을 그대로 노출한 채 ‘당당하게’ 촬영에 임했다.

    이들이 지금처럼 극히 민감한 시기에 북·중 접경 지역을 찾아간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굳이 RFA 보도가 아니라도 올봄부터 북·중 접경 지역에서는 계속해서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북한과 중국 모두 외국 기자들의 북한 취재나 북한 인권운동가들의 활동에 대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이번 사건은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들에 대해 국제사회가 추가 대북제재를 모색하는 와중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엔과 미국은 ‘해외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들은 강제노동과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고, 이렇게 벌어들인 ‘검은돈’이 김정은 정권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판단 아래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들의 임금 송금을 차단하는 대북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5월 말 서울에서 열린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된 바 있다. 결국 이번 폭행 사건은 미국을 중심으로 검토 중인 추가 대북제재 실행을 한층 더 부채질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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