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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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모임’ 급진 좌파 재편의 실체

통진, 정의당 등 헤쳐 모여 신당 창당…큰 변화 모색 않을 듯

  • 김운회 동양대 교수

    입력2014-12-29 0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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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모임’ 급진 좌파 재편의 실체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대세는 주체사상을 신봉한 민족해방(NL) 계열이었다.

    한국 좌파의 가장 큰 불행은 종북 주사파(NL·민족해방파)가 주류를 이뤄왔다는 점이다. 한국 좌파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반으로 해 트로츠키, 그람시, 알튀세르, 북한의 주체사상 등을 신봉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사상가 대부분이 ‘잡사상’이라고 해 사라지고 주체사상이 대세를 형성했다. 북한이 60년 이상 강력한 대남혁명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한국 좌파는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주사파를 반대하는 세력은 대부분 좌파에서 소외됐다.

    1972년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좌우를 망라해 광범위한 반독재투쟁이 일어나면서 좌파가 번성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70년대 주요 사건 가운데 후일 종북파에게 큰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79년에 있었던 남민전사건이 그것이다. 남민전은 주사파 성장에 결정적 구실을 한 단체로 김세원(광주), 이재문(대구) 등이 주도했다. 김세원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빨치산 출신으로 광주운동권을 정비하고 김남주, 윤상원 등과 접촉했다. 이재문은 김일성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며 북한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북한 측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1980년은 종북운동의 전환점이었다. 정통성이 결여된 신군부의 등장으로 촉발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좌파에게 절대적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안겼다. 해마다 5·18 당시 일부 진압군의 만행을 담은 사진들이 대학가를 점령하면서 많은 대학생이 좌파에 동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좌파운동은 빠른 속도로 전국 규모화하면서 ‘종북적’ 성향이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5·18 초기 송기숙과 김창길을 중심으로 한 ‘5·18 수습대책위원회’는 무장투쟁을 반대하고 반(反)군부 자유민주체제 수호를 위한 민주화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일부 탈북자의 증언과 김대령의 저서(2013) 등으로 5·18에 대한 북한의 개입설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주사파, 대학을 점령하다



    1980년대 대학가는 마르크스주의 계급투쟁을 표방한 PD(민중민주주의파)와 통일을 강조하는 NL이 대립했고, 결국 NL이 승리했다. 즉 89년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론(NLPDR)을 지도이념으로 한 자민투(반미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위원회)와 민족민주주의혁명론(NDR)을 지도이념으로 한 민민투(반제반파쇼 민족민주화 투쟁위원회)의 논쟁을 거쳐 NLPDR로 연대를 구성했다.

    이로써 한국 대학가는 자민투, 즉 주사파에 의해 통일됐다. 주사파는 최대 학생운동단체인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결성(1987)하고,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을 수용해 좌파운동을 주도했다. 민민투는 NDR파, PDR파 등으로 분파하면서 약화됐다.

    이제 학생운동권은 전과는 달리 평양에서 발행된 교재들을 사용하고 김일성, 김정일의 우상화가 본격화됐다. 계기는 1985년 김영환의 ‘강철서신’이었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는 비판의식이 사라지고, 오직 주사파로 양성되는 교육과 훈련이 주가 됐으며, 주체사상의 두 기둥인 ‘품성론’ ‘수령론’이 자리 잡았다. 당시 주사파의 행태는 북한의 대남전략과도 깊이 연계돼 있다.

    1991년 김영환은 월북해 김일성을 만났고 지하조직인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을 결성(1992)했다. 당 지도이념은 김일성 주체사상이며 김영환은 중앙위원, 이석기는 경기남부위원장이었다. 흔히 이들 세력을 경기동부연합이라고 한다.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의 후신으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이 결성(1991)됐는데 경기동부연합은 전국연합에 참가한 경기 동부 지역인과 이들과 연계된 주사파의 인적 네트워크를 총칭하는 말로, 민혁당 출신 인사가 주축이다. 이들은 광주전남연합과 공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모임’ 급진 좌파 재편의 실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의 정부 측 증인으로 나섰던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8 대 1 해산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000년 PD 중심의 ‘민노당’(민주노동당)이 창당되자 2001년 급진 주사파들은 군자산(충북 괴산)에 모여 “정치판에 뛰어들 것”을 결의했다(2001). 이때 문건이 ‘군자산의 약속’인데, 대중 정당을 통해 정권을 잡고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후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이룬다는 계획이 정리돼 있다.

    NL은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김대중을 지지했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조국통일의 대사변기(6·15 남북정상회담)를 맞았다”며 강력한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NL은 ‘6·15 공동선언으로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고 이후 10년 내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될 것으로 자신하면서 2004년까지 민노당 입당을 완료해 다수파가 됐다. 이들 NL이 당을 실질적으로 접수한 그해, 민노당은 국회의원 10명을 당선시켜 국회에 진지를 구축했다.

    2008년 민노당 임시 당대회에서 PD계(심상정)는 ‘종북 청산’을 요구하다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NL 출신 인사들은 2011년 통일전선 일환으로 야권연대를 추진해 진보신당(심상정), 국민참여당(유시민) 등과 연계해 ‘통진당’(통합진보당)을 구축했다(1차 연대). 이 여력을 바탕으로 4·11 총선에서 민주당과의 통일전선 구축(2차 연대)에 성공해 국회에서 13석이나 얻었다.

    종북 세력 사회 곳곳 뿌리 내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남파간첩이 맡던 역할을 1990년대 이후에는 친북 좌파 세력이 대신하고 있다. 사회주의 붕괴에도 김정일이 자신감을 갖고 공세적 대남공작을 전개한 배경에는 제2 전선이라 할 남한 내 종북 좌파 전선이 확고히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헌법재판소(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계기로 온건 좌파나 국민 대다수는 종북과 결별하고 민생 복지에 집중하는 성숙한 진보 세력의 등장을 염원하고 있다. 그래서 온건 좌파는 “양극화 해결에 집중하는 ‘선진국형 진보’로 나아가야 한다”(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거나 “고용(일자리)과 복지, 이 두 가지에 집중하는 민생정치를 보여줌으로써 진보에 대한 국민의 열망에 부응해야 한다”(박용진 전 민주당 대변인)고 한다. 한국의 성숙한 진보는 향후 온건 좌파가 얼마나 적극성을 발휘하는지에 달렸다.

    하지만 60년 이상 토착화한 종북 세력은 큰 변화를 모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진지를 상실한 주사파 출신들은 대정치투쟁과 함께 신당 창당 등으로 통일전선 구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은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새정치연합의 주축 세력 일부가 해산 결정이 내려진 통진당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단지 강온의 차가 있을 뿐이다.

    새정치연합의 과제는 종북 고리를 완전히 끊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려는 견고한 의지를 재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새정치연합이 단독으로 정권을 창출하기 어려울 경우 언제든 종북 성향의 정치집단과 야권연대를 시도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급진 좌파의 경우 외형적으로는 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재야 세력은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기 전부터 부지런히 대책을 논의해왔다. ‘국민모임’이 그 실체다. 이들은 통진당과 정의당, 원외의 노동당, 녹색당 등으로 분열된 진영을 재편하고 신당이 창당되면 다시 새정치연합과 통일전선을 구축하려 할 것이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판결로 종북 세력이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이 확인됐다. 통진당 RO(혁명조직) 계열 인사가 1000여 명에 달하고 이에 동조하는 자는 수만 명에 이르고 있다. 그들은 통진당 해산에도 ‘메기 효과(catfish effect)’를 기대할지 모른다.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침착하게 좌파 대통령이 당선하기를 기다려 국면 전환을 도모할 공산도 크다. 자본주의에서는 필연적으로 다수의 소외 계층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이들은 그 그늘에 들어가 자리 잡을 수 있다. 이 세력이 사회 전체로 확산하지 않도록 내성을 키우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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