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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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옥선’과 ‘화포’가 만났을 때…

이순신 ‘명량해전’ 최고 무기로 최상의 전투력 발휘

  • 박제광 건국대박물관 학예실장 umma621@hanafos.com

    입력2014-08-18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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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옥선’과 ‘화포’가 만났을 때…
    지금 대한민국은 이순신 신드롬에 빠졌다. 영화 ‘명량’ 관객 수가 12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고, 이순신 관련 책자 등 각종 문화 콘텐츠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왜 우리는 이순신에 열광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영화 ‘명량’에서 보여주는 이순신의 투혼이 관객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 아닐까.

    단 13척의 배로 133척에 달하는 일본군에 맞서 기적의 승리를 이끌어낸 이순신의 투혼은 국민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순신은 명량대첩의 승리를 천행(天幸), 즉 하늘이 내린 행운이라고 말했다. 누가 봐도 패배가 확실한 전투, 누가 봐도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전투로, 이순신 본인도 승리를 믿기 힘들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명량해전에서 거둔 기적의 승리를 단순히 이순신 리더십만 갖고 설명할 수 있을까.

    전쟁은 신화가 아닌 과학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아군의 하드웨어적인 전투력 요소와 소프트웨어적인 전투력 요소가 적군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생각하면, 명량해전의 승리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 가능하다. 첫째는 조선 수군 전함 판옥선(板屋船)의 막강한 전투력이고, 둘째는 지휘관 이순신의 뛰어난 병법 구사, 셋째는 이순신의 탁월한 리더십 역량이다.

    조선의 지혜가 결합된 전함

    대형화포로 무장한 ‘판옥선의 전투력’이 하드웨어적인 전투력 요소라 한다면 이순신의 ‘병법’과 ‘리더십’은 소프트웨어적인 전투력 요소라 할 수 있다. 대형화포 중심의 무기체계와 판옥선으로 대변되는 조선 수군의 하드웨어적 전투력 요소가 위대한 리더였던 이순신에 의해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적 전투력 요소와 결합해 막강한 전투력을 형성했고, 이것이 명량해전의 대승리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명량해전 당시 조선의 주력 전함이던 판옥선은 1555년(명종 10) 일본군의 공격 전술인 등선육박전술(登船肉薄戰術)을 무력화하려고 제작한 혁신적인 전함이다. 일본 전함보다 선체가 크고 높아 일본 병사가 기어오르는 것이 어렵고, 내부는 3층 구조로 돼 있다. 2층 갑판에는 노를 젓는 격군을 배치해 이들이 적의 조총이나 궁시(弓矢)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한 상태에서 배를 조종할 수 있게 했으며, 3층 갑판에는 전투원을 배치해 적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각종 화포와 궁시로 공격할 수 있게 했다. 특히 판옥선은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平底船)으로 전투 중 선회가 자유로웠고, 대형화포 사격 시 생기는 반동력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구조였다. 왜구 침입에 대비해 해양 방위에 종사했던 조선 관료들이 지혜를 모아 만든 꿈의 전함이라 할 수 있다.

    이 판옥선의 전투력을 더욱 극대화한 것이 천자, 지자, 현자, 황자총통 같은 대형화포다. 이들 화포는 판옥선에 장착돼 일본군을 상대로 당파전술(撞破戰術)을 펼치는 첨단병기로 활용됐다. 조선 수군은 판옥선 전후좌우에 장착한 대형화포를 이용, 대장군전 같은 대형화살을 발사해 적선을 파괴했다. 이들 대형화포의 사거리는 일본군 신무기인 조총의 사거리 150~200m에 비해 월등히 길었기 때문에 원거리에 있는 적선을 공격, 파괴할 수 있었다. 이는 조선 수군이 절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하나의 요인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의 전투 상황을 상상해보자. 1597년 9월 16일 대규모 일본 함선이 명량 물목을 통과해 조선의 여러 전함을 에워싸자 열세 상황에 낙심한 조선 장수들은 쉽게 대응하지 못하고 도망갈 궁리를 했다. 이때 이순신이 선두에서 돌진하며 지자, 현자총통 등 각종 화포를 집중 사격해 적의 접근을 저지했다. 영화 ‘명량’에서는 이순신이 홀로 적진에 남아 백병전을 벌이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판옥선’과 ‘화포’가 만났을 때…

    1994년 전남 여천 앞바다에서 발견된 임진왜란 당시 총포들. 왼쪽부터 승자총통, 현자총통, 지자총통(왼쪽).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1597년 명량대첩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 3점이 2012년 전남 진도 오류리 해저에서 발굴됐다. 국립고궁박물관 연구원이 소소승자총통을 들고 설명하는 모습.

    적함을 무력화시킨 대형화포

    이후 이순신은 뒤처져 싸우지 않고 머뭇거리던 거제현령 안위(安衛)에게 호통을 쳐 일본군을 공격토록 했다. 이에 안위가 이끄는 전함이 앞으로 돌진해가자 적의 장수가 탄 배와 휘하의 전함 2척이 합세해 안위의 전함을 공격한다. 이를 뒤에서 지켜보던 이순신은 자신의 전함을 이끌고 나아가 안위의 전함을 공격하는 일본 전함 후미에 화포를 쐈고,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조선 전함이 가세해 집중적인 화포 공격을 함으로써 일본 전함 3척을 순식간에 격파한다.

    당시 격파된 3척 가운데는 일본 장수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전함도 있었는데 조선 수군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고, 구루시마 자신도 전사해 시신이 떠올랐다. 이순신은 이 시신을 끌어올려 목을 잘라 효시(梟示)함으로써 적의 사기를 크게 꺾어놓았다. 이를 계기로 조선 수군은 사기충천해 일제히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총공격을 감행해 순식간에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던 일본 함선 30여 척을 격파함으로써 대승을 이끌어냈다.

    이날 전투가 벌어졌던 명량해협은 세계에서도 1, 2위를 다툴 만큼 물살이 험한 지역이다. 또 바다 밑에 크고 작은 암초가 있어 전함 운용이 쉽지 않다. 견고한 선체와 바닥이 평평한 형태의 독창적 구조를 지닌 판옥선은 이런 지역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빠른 물살과 지형 여건으로 접근전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했고, 장착한 대형화포로 적의 지휘선이나 주력함을 집중 공격함으로써 적함을 무력화했던 것이다.

    이순신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조선 판옥선과 대형화포의 위력을 굳게 믿고, 매순간 유효 적절한 전술을 구사하며 탁월한 리더십을 통해 기적 같은 승리를 이끌어냈다. 지금 일고 있는 이순신 신드롬은 그런 위대한 리더를 이 시대가 바라고 있다는 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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