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7

2014.07.21

음악인에 의한 음악 시장 독립선언

바른음원협동조합 출범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4-07-21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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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인에 의한 음악 시장 독립선언

    7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바른음원협동조합 출범식’에서 신대철 발기인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 하나. 음악의 주체는 누구일까. 뮤지션이다. 그들이 만들고 연주하고 부르는 노래를 우리는 듣는다. 하지만 ‘음악산업’이라는 카테고리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음반을 제작하거나 음원을 유통하는 사업자가 산업 주체가 된다. 그들에 의해 산업의 틀과 질서가 만들어지고 시장이 움직인다.

    음반의 시대였던 20세기에는 꽤 많은 음반을 팔았음에도 제작자로부터 돈 한 푼 받지 못한 가수의 이야기가 비일비재했다. 음반이 음원으로 대체된 21세기 시장에서는 무주공산이던 MP3를 비롯한 디지털 음원을 어떻게 ‘시장화’할 것인지가 논의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창작자의 권리가 논쟁이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는다. 적어도 한국에서 음악 창작자는 음악산업의 객체요, 소외자다.

    여기 두 가지 흐름이 있다. 첫 번째 흐름은 산업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현재 음악산업의 대세는 스트리밍이다. 음악을 듣는 플랫폼이 모바일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시장 판도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전미레코드협회(RIAA)에 따르면 2013년 스트리밍 서비스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39% 증가한 14억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다운로드 서비스의 매출은 전년 대비 1% 감소했다.

    음원업계 전체의 점유율 변화는 이 흐름을 더욱 잘 보여준다. 2008년 4%를 차지했던 스트리밍 서비스 비율이 2013년에는 21%를 차지했다. 2006년 스웨덴에 설립된 세계 스트리밍 시장의 최강자 스포티파이의 성장세는 놀랍다. 2013년 3월 1500만 명이던 가입자 수가 1년 만에 4000만 명으로 늘어났다.

    모바일을 선도하는 업체들이 손 놓고 있을 리 없다. 아이튠즈를 성공시키며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시장의 절대강자가 된 애플은 5월 비츠일렉트로닉스를 인수했다. 비츠일렉트로닉스는 월정액 9.99달러로 2000만 곡 이상을 스트리밍으로 감상할 수 있는 ‘비츠뮤직’을 서비스하고 있다. 구글 역시 최근 스트리밍 서비스 ‘송자’를 인수했다. 구글은 구글 플레이 뮤직, 유튜브 등 기존의 구글 음악서비스에 송자를 연계할 전망이다.



    창작자들이 음악산업 주체로

    음악인에 의한 음악 시장 독립선언

    2006년 스웨덴에 설립된 세계 스트리밍 시장의 최강자 스포티파이(Spotify)의 서비스 페이지.

    모바일 이전에도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장에서 큰 파이를 차지하던 한국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띈다. 삼성은 스포티파이와 연계해 밀크뮤직을 론칭했으며 모바일 시장의 강자인 카카오도 카카오뮤직을 출범했다. 모두 스트리밍 기반의 음악 서비스다. 그 밖에도 IT(정보기술) 스타트업 가운데 몇몇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는 뉴스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스트리밍은 배분율이나 아티스트에게 돌아가는 수익을 놓고 반발에 부딪히곤 한다.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활용할 경우 1회 재생 시 뮤지션에게 떨어지는 돈이 1원도 안 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공론화된 바 있다. 이 부당한 현실에 음악인들이 시위를 벌였던 게 2년도 되지 않는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개선책이 시행됐음에도, 스트리밍이 존재하는 한 음악인은 여전히 소외돼 있다. 2006년 3500억 원 규모였던 음원시장 매출액이 지난해 5740억 원에 이르렀음에도 말이다.

    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창작자들을 음악산업에서 또 하나의 주체로 세우려는 흐름이다. 7월 16일 출범식을 가진 ‘바른음원협동조합’(바음협)이다. 4월 시나위의 신대철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음악인이 고사할 수밖에 없는 음원 유통구조에 대한 글을 올렸다. “음원 서비스업체가 더 양보해야 하지만, 주주 이익을 보장해야 할 테니 그들은 안 한다. 해법은 하나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음원 서비스업체가 나타나야 한다. 바로 협동조합이다.” 1만 회 이상의 ‘좋아요’를 기록하면서 논의가 본격화하기 시작했고, 그의 글은 이내 현실화됐다. 바른음원협동조합이란 이름으로.

    그간 각종 위원회, 조합 등 음악인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시도가 적잖았다. 하지만 전부라 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이들 대부분은 일회성 시도에 그치거나 정치권 등에 의견을 전달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이미 199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조직된 힘을 보여줬던 영화계에 비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음협의 탄생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음악계 처음으로 ‘자체적인 시장’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기대어 시장을 개선하는 게 아닌, 주체가 돼 스스로 시장 일원이 되겠다는 움직임이다. 청사진은 가히 혁명에 가깝다. 이날 출범식에서 신대철 바음협 대표는 “수익의 70~80%는 생산자에 정산(순차적), 공정하고 균등한 음원 노출, 다양한 장르의 균형적인 소개, 팬들과 소통하는 기회 마련, 무제한 스트리밍·묶음 상품 제외 등이 특징이 될 것”이라 말했다. 모두 한국 대중음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혔던 부분이다.

    음악인에 의한 음악 시장 독립선언

    4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음원시장의 창작자권리, 어떻게 지킬 것인가’ 토론회.

    개혁 성공 위한 몇 가지 조건

    이 근본적인 개혁이 성공하려면 필요한 몇 가지가 있다. 먼저 대형 기획사의 참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시장에서의 개혁은 대개 킬러콘텐츠를 가진 세력의 지원 없이는 성사되기 힘들다. 아이튠즈가 성공했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4대 메이저를 자신의 플랫폼에 동참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SM엔터테인먼트 등 음원시장의 절대강자들은 이미 멜론, 엠넷 같은 대형 유통망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산업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들이 대형 유통망을 버리고 바음협에 가입할 리 없다.

    또 하나, 앞서 말했듯 스트리밍이라는 세계적 대세를 포기하고 시장에서 의미 있는 지분을 획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대부분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평범한 소비자 가운데 이 편리한 도구를 버릴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긍정하기 힘들다. 전투로 말하자면 강력한 지원군과 요충지를 버리고 탄탄한 새 거점을 마련하는 일에 가깝다.

    ‘듣고 흘려버리는’ 사용자가 아닌, ‘음악을 소유하고자 하는’ 애호가가 첫 번째 교두보가 돼야 하는 건 그래서다. 세계 음악시장 10위인, 그러나 뮤지션에 대한 대우와 존중은 최하위권인 한국에서 의미 있는 실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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