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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감독으로 산다는 것

단 10명밖에 없는 명예와 자부심…막강한 권한만큼 ‘파리목숨’ 신세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donga.com

프로야구 감독으로 산다는 것

프로야구 감독으로 산다는 것

2014시즌 한 달 만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한 LG 김기태 감독.

프로야구 감독. 우리나라에 단 10명밖에 없는 직업이다. 정원이 299명인 국회의원은 물론 17명인 장관(장관급 제외)보다 적은 단 10명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직업이다. 최고 5억 원 연봉을 받는 고소득자이며, 3년간 일하는 조건으로 별도로 최고 7억 원에 이르는 보너스도 받는다. 물론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도 있는데, 이 또한 억대 단위다. 최고급 승용차에 법인카드가 제공되며 지방에서 근무할 경우 숙소도 제공받는다. 급여 조건만 봐도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업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해군 제독과 함께 남성이 선망하는 3대 직업으로 꼽히는 프로야구 감독이 갖는 직업적 매력은 그 외에도 수없이 많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전장의 장수와 비교되는 막강한 권한이다. 감독은 경기가 열리는 녹색 그라운드 안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신적 존재가 된다. 프로야구 온라인 게임이 다른 종목에 비해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비결 가운데 하나도 경기를 지휘하는 감독의 힘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에 있다.

선택받은 10명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던 LG 김기태 감독이 4월 23일 구단 만류를 뿌리치고 사임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최하위로 추락한 팀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최후의 희생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2위 성적을 올린 뒤 더 높아진 안팎 눈높이에 대한 부담, 전력 보강 및 코칭스태프 재계약 과정에서 구단과 이견이 있었다는 등 여러 말이 뒤따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김 감독 또한 최근 성적 부진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프로야구 감독은 직업적 측면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김 감독뿐 아니라 대부분 감독은 불면증, 소화불량, 두통 등을 호소한다. 한 해 128경기를 치러야 할뿐더러, 2개월에 이르는 해외 전지훈련 등 막대한 업무량과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도 이겨내야 한다.

불면증, 소화불량, 두통에 시달려



프로야구 감독은 막강한 권한만큼 큰 책임이 뒤따른다. 유력 정치인을 제외하고 프로야구 감독만큼 하루하루 미디어의 높은 관심을 받는 직업도 드물다. 스타 가수나 유명 영화배우는 몰라도 프로야구 감독의 얼굴은 알아보는 수많은 팬이 있어 사적으로도 극도로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한다.

KT 조범현 감독은 KIA 사령탑 시절 이른 아침에 광주 무등산을 오르며 운동했다. 일부러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에 한적한 등산로를 택했지만, 거의 매일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거나 장엄한 ‘훈수’를 두는 팬들을 만나야 했다.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휴대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경기에 패한 날 비난 문자메시지 수백 통을 받은 적도 있었다. NC 김경문 감독은 식사 도중 갑자기 술병과 술잔을 들고 옆에 앉아 “한잔 받으시라”는 팬과 종종 마주한다.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도 성적이 부진하면 고향 팀에서조차 거센 비난을 받는 곳이 한국 프로야구다. 가장 큰 배경은 누구나 상상 속에서 감독이 될 수 있는 야구만의 독특한, 그리고 강렬한 매력에 있다. 프로농구 2013~2014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별명은 ‘만수’다. 코트 위에서 1만 가지 수를 펼친다는 극찬이다. 그러나 상대 팀 감독, 선수나 해설자를 제외하면 유 감독이 지금 어떤 수를 펼치는지 알아보기 쉽지 않다.

프로농구 감독은 각자 자신만의 패턴 플레이를 펼치는데 일반 팬은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쉽게 알아보기 어렵다.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미식축구는 선수조차 고개를 절로 흔들게 하는 매우 복잡한 작전으로 유명하다. 팀마다 수백 쪽에 이르는 작전집을 만들어 선수에게 ‘암기’를 요구한다. 감독도 헤드폰을 통해 전력분석팀으로부터 실시간 정보를 제공받으며 경기를 지휘할 정도니 팬의 상상 속 간섭은 매우 어렵다. 세계적으로 인기종목인 축구는 매우 역동적인 스포츠다. 순간순간 감독 판단이 개입하기 어렵고 교체카드도 많지 않다.

‘5000만이 감독’ 매 작전마다 고충

그러나 야구는 감독이 판단한 작전의 성공과 실패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경기가 끝나면 수많은 팬이 ‘왜 그때 번트사인을 내지 않았느냐’ ‘왜 투수를 빨리 바꾸지 않았느냐’며 비난을 쏟아낸다. 축구는 감독이 경기 도중 선수가 어떻게 공을 드리블하고 슛을 날리는지 간섭할 수 없지만, 야구는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개입할 수 있다. 팀에 애정이 깊은 골수팬은 선수 기용에까지 원성을 보낸다. ‘왜 베테랑 선수를 쓰지 않느냐’와 ‘왜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느냐’의 정반대 의견이 동시에 나온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되는 작전은 야구가 가진 훌륭한 경쟁력이지만, 결과로 매번 도마에 오르기 때문에 감독의 고충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감독은 시즌 전체를 보고 경기를 운영하기 때문에 순간순간을 즐기는 팬들과는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어려움은 구단과의 관계다. 보급 없이 전쟁을 치르기 어려운 것처럼 감독도 구단 지원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2군을 포함해 100여 명에 이르는 선수와 20여 명의 코치를 이끌고 매일 전쟁을 치르는 지휘관이지만 구단은 감독을 단기 고용한 특수 전문인으로 바라볼 때가 많다. 야구는 처음에는 참 쉽지만 파고들수록 어려운 종목이다. 처음 구단 운영을 맡은 단장이나 사장 상당수가 1~2년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감독 영역까지 간섭하기도 한다. 선수 출신 단장이 있어 프런트가 고도로 전문화된 SK와 두산의 경우 감독이 먼저 헤아려야 할 부분이 많아진다.

감독은 팀 내부에서도 소리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 1군 선수도 스타팅 멤버가 아니면 속으로 감독을 원망한다. 1군 백업에 만족하는 선수는 없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현역 시절 스타플레이어가 아니었지만 신인 박진만이 자기 대신 주전으로 뛰자 자기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왔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한번 권위가 흔들리면 곳곳에서 반기를 든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코치도 나타난다.

언제나 묵묵히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하는 온라인 게임과 달리 실제 선수들은 성격도, 성향도 제각각이다. 프로에서 뛰는 선수 대부분이 학창시절 팀에서 최고 중 최고였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다. 이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프로야구 감독은 최고 대우를 받고 명사로 대접받는 명예로운 직업이다. 그러나 그에 준하는 뛰어난 능력이 없으면 쉽게 버티기 어렵고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직업이다.

프로야구 감독으로 산다는 것

2014시즌 거듭된 패배로 최하위를 기록 중인 LG 선수들이 4월 23일 삼성과의 경기에 앞서 삭발을 했다.





주간동아 936호 (p64~65)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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