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5

2014.04.28

남을 위한 서비스 미리내 가게 더욱더 커져라

소비에서의 이타심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4-04-28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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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세월호 침몰 사고를 다루며 ‘여객선 침몰에서 본 한국형 리더십 최고와 최악’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예상대로 최악은 해운사 대표와 선장이고, 최고는 남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쏟은 이타적 국민이었다.

    사고가 나자 근처 어부들은 조업을 중단한 채 승객들을 구조하려고 현장으로 모여들었고, 사고 후 민간잠수부와 자원봉사자들이 전남 진도로 몰려갔다. 경기 안산 단원고로는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와 상담사들이 갔으며, 장례식장에도 일손을 도우려는 자원봉사자 발길이 이어졌다. 전 국민이 자기 일인 양 슬퍼하고 분통해하면서 피해자를 위로한다. 구호물품과 성금이 줄을 잇고, 어떻게든 유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도움이 되려고 각계각층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모색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국민이 가진 자발적 이타심이자 서로에 대한 끈끈함과 사랑이다.

    비겁한 리더십을 보인 해운사 대표와 사주, 선장, 그리고 무책임한 리더십을 보인 정부와 달리 우리 국민만큼은 최고다. 우리는 남과 함께 잘 사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 많은 민족이다. 세계적으로도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을 확산하려는 추세를 보인다. 기부나 사회적 책임, 자원봉사, 친환경 같은 화두가 점점 중시되고 있다.

    1000원 한 장으로 상생 실천

    오늘의 작은 사치는 평소와 좀 다르게 특정 물건이 아닌, 소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소비에서의 이타심이다. 큰돈이 아니라도 남을 위해 돈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행위로 자신이 얻을 물질적 이득은 없다. 그럼에도 돈을 써야 하는 건 우리에게 소비가 아주 중요한 힘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만큼 강력한 권한도 없다. 소비를 멈추면 기업이 휘청거린다. 기업이 휘청거리면 경제뿐 아니라 정치도 덩달아 타격을 받고, 사회도 마찬가지다. 소비는 경제의 피와도 같다. 이 피를 좀 나누자는 거다.



    남을 위한 서비스 미리내 가게 더욱더 커져라

    서울시청 앞 지하상가에는 누군가 비용을 치러두면 다른 사람이 그 돈으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수 있는 ‘미리내 가게’가 3곳 있다. ‘미리내운동본부’가 지정한 ‘미리내 가게’ 중 ‘명동칼국수’ 사장 안현수 씨(왼쪽)와 ‘트리 안 카페’ 사장 이진영 씨가 이를 알리는 표지판 앞에서 환히 웃고 있다.

    과거 소비자는 자신에게 이로운 소비만 잘했다. 좀 더 싸고, 좀 더 좋은 물건을 사는 것이 합리적 소비였다. 그런데 요즘 소비자는 나와 남이 함께 이로울 수 있는 소비에 관심이 많다. 거창하게 소비가 기업을 바꿀 수 있고, 소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는 못해도, 적어도 소비가 우리 주변을 좀 더 윤택하게 바꾸는 힘이 된다는 건 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서스펜디드(Suspended) 커피다. 세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서스펜디드 커피는 수백 년 전부터 이탈리아 나폴리에 있던 문화다. 카페에 가서 내가 마신 커피값만 내는 게 아니라, 다른 이가 마실 커피값까지 미리 내놓는 것을 말한다. 그럼 그 카페는 누가 대신 내놓은 커피값이 있다고 표시를 해두고, 지나가던 노숙자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그걸 먹을 기회를 얻는다. 최소한 먹는 것만큼은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게 하자는 의식에서 나온 일종의 상생이다.

    카페 측에선 누가 미리 돈을 내놓은 걸 먹으려고 손님이 찾아온 것이니 서비스를 정석대로 하게 되고, 노숙자도 구걸이 아닌 구매를 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어른들도 구걸하는 거지들 배곯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곤 했다. 우리 사회가 현대화하면서 잊은 이런 상생 문화가 최근 서스펜디드 커피를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남을 위한 서비스 미리내 가게 더욱더 커져라

    소비자가 신발 두 켤레 값을 치르면 한 켤레만 주고 나머지 한 켤레는 제3세계에 기부하는 신발업체 ‘탐스’ 매장.

    서스펜디드의 한국 버전은 ‘미리내 가게’다.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미리 냈다고 해서 ‘미리내’라고 한다. 서스펜디드의 우리말인 셈이다. 아울러 미리내는 우리말로 은하수를 뜻해 좋은 걸 널리 퍼뜨리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하여간 손님이 다음 손님을 위해 미리 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지불하고, 가게는 서비스를 얻고자 하는 노숙자나 소외계층에게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 가게의 특징이다.

    큰돈이 들지도 않는다. 1000원짜리 한 장만 있어도 참여할 수 있다. 미리내 가게를 처음 시작한 경남 거창에서는 이 소비문화 운동에 카페, 빵집, 아귀찜 식당, 분식점, 미용실, 목욕탕 등이 동참하고 있다. 최근엔 선한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전남 담양, 강원 원주, 부산, 경기 광명과 군포에 이어 서울까지도 이 운동이 번졌다. 계속 확산 중이라 전국이 미리내 가게로 뒤덮일 날도 언젠간 올 거라 믿는다.

    최근엔 소비자의 기부를 유도해 사회 전반에 기부 문화를 확대하는 기업도 나타났다. 대표적 기업이 슈즈브랜드 ‘탐스’다. 이 기업은 소비자에게 신발 두 켤레 값을 내게 한 뒤 한 켤레만 주고 나머지 한 켤레는 제3세계에 기부하는 ‘One for One’이라는 마케팅을 진행했다. 놀라운 건 탐스가 이 마케팅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의 신발 기부량은 1000만 켤레가 넘는다. 자신이 가지려고 2개에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지지 않고 다른 이에게 기부하려고 과감히 돈을 낼 수 있는 게 요즘 소비자다. 놀라운 사실은 세계에서 탐스가 세 번째로 많이 팔리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점이다. 탐스에서는 신발뿐 아니라 선글라스도 판매한다. 탐스의 선글라스를 사면 제3세계에 안과진료를 기부할 수 있다.

    매력적인 씀씀이가 진짜 부자

    탐스 이후 이런 판매 방식을 선택하는 기업이 세계적으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소비를 통해 기부까지 할 수 있는 시대를 만난 것이다. 이는 여느 기부와는 다르다.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걸 소비하기만 하면 된다. 소비만 해도 자동으로 기부가 이뤄지니 일석이조다.

    쉽고 편리한 기부 방법을 소비자에게 마련해주면 기업도 이익을 본다. 소비자에겐 이젠 기부와 착한 이미지가 상식이 됐기 때문이다.

    사치라는 말에는 허영이나 비싼 것을 사용하는 것 외에 필요 이상의 돈을 쓰는 것도 포함된다. 자신의 필요와 상관없는 곳에 돈을 쓰는 것이니 이타적 소비 또한 사치는 사치다. 그러나 이는 아주 작고 매력적인 사치다.

    요즘 세상은 우리에게 소비도 세상을 바꾸는 흥미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준다.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각박하며 빈부격차가 크고 속상한 일도 많지만, 우리에겐 남과 함께 어울려 살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있다. 가끔 남을 위해 작지만 따뜻한 사치를 해보자. 그 순간 당신은 최고 부자가 될 것이다.

    남을 위한 서비스 미리내 가게 더욱더 커져라

    2013년 4월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신발 없는 하루’ 행사 모습. 신발업체 탐스와 서울시가 협력해 소비자가 신발 한 켤레를 살 때마다 형편이 어려운 외국 어린이에게 신발 한 켤레씩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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