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7

..

또 엎은 北의 투자설명회

국가경제개발위 10월 중순 중국서 대규모 행사 추진 한국 기업 참가 불허하자 9월 말 돌연 연기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3-10-07 11:4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또 엎은 北의 투자설명회

    2012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대북투자 설명회. 북한 무역성 산하 대외경제투자협력위원회와 중국의 민간외교 기구인 공공외교문화교류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필자는 ‘주간동아’ 901호를 통해 북한이 경제지도기구인 ‘국가경제개발위원회’를 신설하고 인사를 단행했다고 전했다. 한 달여가 지난 최근 국가경제개발위원회에서 작성한 문건이 필자 손에 들어왔다. 아울러 국가경제개발위원회가 10월 중순 중국 베이징에서 계획한 투자설명회 관련 문건도 확보했다. 그러나 북측이 역대 최대 규모로 준비했던 이 설명회는 개최가 임박한 9월 말 돌연 연기됐다. 행사 기획과 갑작스러운 연기에 얽힌 복잡한 속사정은 북측 경제개발 노선이 쉽사리 현실화되기 어려운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한편의 소극(笑劇)에 가깝다.

    북측 경제개발 노선의 어려움

    8월 중순 취재원이 전한 내용은 이렇다. 북한은 7월 말 국가경제개발위원회를 신설하고 당 비서에 김양국, 위원장에 김기석을 임명했다. 김양국은 김양건 대남담당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의 동생으로, 김 부장은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인물. 북한이 국가경제개발위원회를 신설한 것은 5월 말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한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이후 한동안 국가경제개발위원회의 활동은 노출되지 않았지만, 9월 23일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기사를 통해 그 존재가 비로소 대외적으로 공개됐다. 이철석 국가경제개발위원회 부위원장이 함북 나진과 러시아 극동도시 하산을 잇는 철도 개통식에 참여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위원회와 관련한 북한 매체의 첫 보도였다.

    이 기사가 나오기 일주일 전 무렵 필자는 국가경제개발위원회가 작성한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 작성일은 8월 14일로, 국가경제개발위원회가 중국 국가발전 및 개혁위원회(발개위)의 국제협력센터 해외투자연구소 앞으로 보내는 ‘동의서’다. 발개위는 중국 경제발전 계획을 총괄해 수립하고 해외에서 들어오는 주요 투자를 승인하는 부서다. 그만큼 중국 최고국가행정기관인 국무원에서 가장 힘 있는 부서로 꼽힌다.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가 발개위 앞으로 작성한 동의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는 중국 발개위의 국제협력센터 해외투자연구소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려는 데 대해 진심으로 사의를 표한다. 또한 10월 중에 제1차 동북아 지역 경제 성장 연구 토론회를 진행하자는 데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러한 내용 아래 붉은색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직인이 선명히 찍혀 있다. 직인 윗부분에는 한글로 국가경제개발위원회라고 적혀 있고, 아랫부분에는 STATE ECONOMIC DEVELOPMENT COMMISSION이라는 영문 기구명이 뚜렷하다. 동의서는 8월 중순 중국 발개위 국제협력센터 해외투자연구소의 겅즈웬(耿志遠) 소장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작성한 것이라고 한다. 내용으로 미뤄 북·중 양측이 10월 베이징에서 행사를 개최하기로 합의한 바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발개위가 개최한다는 ‘동북아지역 경제성장 연구 토론회’가 어떤 행사인지는 필자가 별도로 입수한 공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발개위는 최근 한국의 관련 정부기관과 연구소, 기업 등에 이 토론회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하는 초청장을 보냈다. 발송 대상은 통일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남북경제협력연구소, SK와 삼성, 현대 등 모두 50곳 정도다. 문건에는 토론회가 10월 14일부터 이틀간 베이징 한 호텔에서 열리는 것으로 돼 있다. 제1차 토론회라고 밝힌 점으로 미뤄 앞으로 정기 개최를 염두에 뒀음을 알 수 있다.

    당초 초청장에는 토론회의 세부계획과 일정이 첨부돼 있었다. 목적은 ‘남북한과 중국, 싱가포르 등 동북아 주요 당사자의 다자간 협력 가능성을 검토하고 다자간 경제 교류를 통한 동북아의 상생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으로 돼 있다. ‘한반도의 신성장동력사업을 통해 남북의 공동번영을 도모하며 아울러 동북아 경제권 진출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내용도 있다.

    또 엎은 北의 투자설명회

    7월 말 신설된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가 8월 14일 중국 국가발전 및 개혁위원회 앞으로 보낸 투자설명회 개최 동의서(왼쪽). 중국 국가발전 및 개혁위원회가 10월 중순 베이징에서 개최하려고 기획한 투자설명회와 관련해 주요 관련국 당국과 기업에 발송한 초청장(가운데)과 연기를 통보한 9월 30일 추가 공문.

    이번 토론회 주제로 발개위 측은 ‘북한의 경제성장 촉진’을 제시했다. 이틀간의 일정은 크게 세 차례 회의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첫날에는 제1회의, 2회의가 열리는데 제1회의 주제는 ‘동북아 협력 가능한 신성장동력사업’으로, 발표자는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와 중국, 홍콩, 싱가포르 기업으로 돼 있다. 중국 측에서는 상지그룹이 나진·선봉 개발 방안에 대해, 홍콩 측에서는 다중화(大中華) 국제그룹이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 방안에 대해, 싱가포르 측에서는 메칠그룹이 원산 관광특구 개발 방안에 대해 각각 발표할 예정. 이들 기업은 각각 발표를 담당한 지역의 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제2회의 주제는 ‘동북아 협력 가능한 경제 협력 방안’으로 북한 측이 발표를 맡을 계획이었다.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산하의 두 기관인 경제개발총국과 국가관광총국을 비롯해 육해운성과 무역성, 금속공업성이 발표하도록 예정돼 있었다. 둘째 날 오전 열리는 제3회의는 경제특구와 관광특구, 산업통상자원, 교통·물류 분야 4개 분과로 나눠 그룹별 미팅으로 진행한다는 게 당초 예정돼 있던 행사의 골자였다.

    아랍계 수양딸 진달래 등장

    또 엎은 北의 투자설명회

    2012년 9월 설명회에 참석한 고(故)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아랍계 수양딸 진달래 씨.

    이번 투자설명회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의 김기석 위원장과 김철진 부위원장이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조직의 사실상 첫 국제무대 데뷔였던 셈이다.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은 장관급으로, 계획대로라면 북한의 역대 투자설명회 가운데 최고위직 참석이다.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는 예정된 설명회에서 경제특구와 관광특구 등 중앙급 13개, 지방급 220개의 경제개발구 개발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됐다(‘주간동아’ 901호 관련 기사 참조).

    요약하면 이렇다. 5월 말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한 북한은 이를 집행하려고 신설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를 이번 투자설명회를 통해 대외적으로 소개할 계획이었고, 더불어 자신들의 다양한 특구 개발계획을 제시해 외국기업의 투자를 호소한다는 것이 주요 취지였다.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설명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던 이유다.

    북한이 베이징에서 투자설명회를 여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필자는 2012년 9월 말 베이징에서 열린 북한의 투자설명회를 취재한 적이 있다. 중국 기업인을 상대로 한 이 설명회의 명칭은 ‘조선 투자 환경 소개 및 투자 항목 상담회’였다. 설명회 바로 직전 중국은 대북 투자 펀드 5300억 원을 조성하기로 북한과 합의한 바 있다. 북한은 당시 설명회에 중국 언론을 제외한 외신취재를 허용하지 않았고, 필자는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설명회장에 들어가 취재를 진행했다.

    중국 기업인 100여 명이 참석한 당시 설명회는 북한 무역성 산하 대외경제투자협력위원회와 중국의 민간외교 기구인 공공외교문화교류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북한 측에서는 국영기업 관계자 30여 명이 나와 광산과 조선소, 건강식품 등 50여 개 투자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북측은 이러한 투자설명회가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지시라고 강조했다. 윤형일 당시 대외경제투자협력위원회 국장은 “(김정은 동지는)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은 대담하게 우리 실정에 맞게 받아들이며 세계적인 발전 추세에 맞게 모든 일을 설계하고 진행하도록 이끌고 있다”고 발언했다.

    북한 측은 다양한 투자유치 홍보동영상과 설명자료를 제시했지만,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고(故)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아랍계 수양딸로 알려진 진달래 씨의 등장이었다. 진달래 씨는 북한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를 지낸 인물의 딸로, 진달래라는 이름은 김 전 위원장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진달래 씨는 당시 중국 베이징대 생명과학원 병원의 산부인과 의사로 재직 중이었다. ‘진달래 아동기금회’ 회장 자격으로 설명회에 참가한 그는 중국 기업들에게 적극적으로 기금에 참여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 기금회는 북한 어린이의 교육과 건강을 위해 2011년 7월 설립한 것으로, 북측이 진달래 씨를 공개행사에 등장시킨 것은 기금 모금 목적과 함께 김 전 위원장의 ‘인덕’을 선전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설명회에 참가한 중국 기업인들은 ‘북한의 개방’을 기회로 여기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정강 당시 중국 하이산국제투자유한공사 대표는 “미래에 북한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의 북한 투자는 역사적으로 드문 기회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설명회 이후 북한은 투자 프로젝트 43개를 중국 측에 추천하면서 관심 있는 중국 기업과 일대일 개별상담을 이어갔다. 비용을 지불한 기업들만 참가 가능한 자리였다.

    다시 불거진 ‘신뢰’ 문제

    이번에 북한이 10월 중순을 예정으로 야심차게 준비하던 설명회는, 그러나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나 계획대로 열리지 못하게 됐다. 중국 발개위가 설명회 개최 연기를 결정했기 때문. 필자는 발개위가 9월 30일 설명회 초청 대상들에 발송한 추가 공문을 입수했다. 공문은 ‘주요 대표들의 일정 배치 문제로 설명회를 부득이 미룰 수밖에 없게 됐다’고 설명한다.

    같은 날 한국 정부는 예정됐던 베이징 투자설명회에 우리 국민과 기업의 참가를 사실상 불허했다. 통일부 측은 “현재의 남북관계 등을 감안할 때 이번 설명회에서 대규모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발개위가 계획한 북한 투자설명회는 한국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게 현실. 이를 잘 아는 북한과 중국의 관련 당국이 설명회를 연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일단 남한 기업의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11월 초에는 설명회를 연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일방적 폐쇄로 문을 닫았던 개성공단이 5개월 반 만에 정상화되면서 한반도에는 화해 무드가 무르익는 듯했다. 10월 31일에는 개성공단에서 외국기업을 상대로 남북이 함께 투자설명회를 개최한다. 최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한인 의류업체들이 개성공단 진출을 검토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돌발변수를 맞아 휘청거리고 있다. 9월 하순으로 예정됐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돌연 무산된 것. 북측은 남측 지도부와 언론의 이른바 ‘막말’을 문제 삼으며 행사 수일 전 돌연 연기한다고 발표했지만, 이러한 주장에 설득력이 없음은 불문가지다. 인도주의적 행사를 정치 목적에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해줬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적 관점에서 봐도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외국인 투자자의 눈에 이러한 돌발행동이 어떻게 비칠지는 명확하기 때문이다. 투자 유치를 위해 다각도로 애쓰는 상황에서 튀어나온 행동은 ‘이렇듯 약속을 쉽게 어기는 상대를 믿어도 될까’ 하는 의문을 낳기에 충분하다. 많은 외국기업에게 대북 투자는 여전히 선점해야 할 미개척 분야인 동시에 수많은 리스크가 얽힌 종목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준비한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설명회가 성과는 고사하고 계획대로 열릴지조차 불투명해진 현실이 그 ‘섣부른 행동’의 결과물인 셈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