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7

2013.07.22

마흔둘에 시작…난, 색소폰 부는 남자

혼자 놀기의 꽃은 취미

  • 강석우 배우

    입력2013-07-22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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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둘에 시작…난, 색소폰 부는 남자

    둘이 놀기의 진수는 아내와 놀기다. 화가인 아내 덕에 마흔여덟 살에 처음 붓을 들었다(왼쪽). 2006년 5월 처음으로 연 부부전에 송승환, 김수철, 이휘향, 이혜숙 등 동료들이 찾아왔다.

    “놀고 있네.”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우리는 왜 노는 것에 거부감을 보일까. 잘 노는 게 얼마나 좋은데. 놀지 못하고 일만 했고, 일만 하라고 강요받던 세대여서 그런지 그 좋은 걸 모른다. 경쾌한 음악소리나 우리 가락이 흥겹게 울리는 놀이마당을 보라. 그곳에 뛰어들어 노는 사람이 많은지, 아니면 선뜻 나설 용기가 없어 뒤에 숨어 혼자 노는 듯 마는 듯하는 사람이 많은지. 아, 그렇다. 혼자 놀기만 잘해도 놀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는 패거리에 휩쓸리 듯 섞여서 잘 노는 사람은 더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나서지 말라고 교육받아서 그런지 생각만큼, 마음만큼 양껏 놀지 못한다. 혼자, 둘이, 여럿이 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은가.

    혼자 놀기의 진수는 뭐니 뭐니 해도 취미를 즐기는 것이다. 만사에 별 관심 없는 사람도 곰곰 생각해보면 뭔가 한두 가지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이 있다. 물론 잘하고 즐기려면 약간의 연습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화가 아내 덕에 그림도 배워

    어릴 적부터 악기 연주하는 사람을 많이 부러워한 나는 그 시절 풀지 못했던 한을 마흔둘에야 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색소폰 연주하는 사람을 본 순간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했고, 그 주말에 서울 낙원상가에 가서 악기를 사고 음대교수인 친구 소개로 그의 제자를 선생으로 모셨다. 색소폰은 처음부터 쉽게 소리가 난다는 게 특징인데, 그건 말 그대로 ‘소리’지 ‘음악’에는 못 미친다. 소리가 음악이 되려면 적잖은 연습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고통이 아니라 조금씩 나아지는 연주소리를 즐기는 시간이다. 연습하느라 입술과 손목이 아프기도 하지만 지금도 나는 소리가 좋아지는 기쁨을 더 많이 느낀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골방에서 삑삑대던 솜씨가 무대 위에서 실력 발휘(?)를 하는 날이 오게 됐고, 이제는 생각보다 연주료를 많이 받기에 이르렀다. 악기를 들 힘이 남아 있는 70대 후반까진 무난하게 연주를 즐기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음악가라는 이름으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



    마흔둘에 시작…난, 색소폰 부는 남자
    또한 화가인 아내를 둔 덕에 붓과 물감과 캔버스를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물감을 갖고 이렇게 저렇게 칠해보던 나는 2005년부터 그림도 시작했다. 물론 197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화랑을 드나들며 그림을 친근하게 느끼긴 했으나, 전시회를 30여 차례 하고 ‘아트 아시아’나 ‘서울오픈아트페어’의 집행위원까지 됐으니 놀아도 제대로 노는 셈이다.

    어떤 때는 새벽까지 그림을 그리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림이라는 게 밤에 그렸을 때는 만족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보면 영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면 그때부터 고민에 들어가고 구상에 빠진다. 그림 그리는 것도 약간의 고통이 있기는 하다. 세상에서 즐길 수 있는 것 가운데 어느 하나 노력과 연습 없이 얻어지는 게 있던가. 적당한 스트레스 뒤에 참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무대에서 연주할 경우 준비할 때와 무대에 서기 전 약간의 김장감이 있다. 그러나 연주를 잘 마치고 내려올 때의 개운함과 자유로움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물론 전시회 날짜를 정해놓고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도 열중해서 새벽이건 대낮이건 마음에 들 때까지 그리고 나면 그 또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내 그림을 사간 적지 않은 분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부담을 느끼기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색소폰보다 붓 한 자루가 가벼우니 그림 그리기는 90세 이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부부는 환상의 복식조

    둘이 놀기의 진수는 아내와 놀기다. 나처럼 아내와 꼭 붙어 다니는 사람도 드물 듯하다. 프로야구 구경 가기, 농구장 가기, 축구장 가기, 음악회 가기, 전시회 가기, 부부 공동 전시회 열기. 모든 취미생활에 아내보다 좋은 친구는 없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정도는 아니지만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은 아내다.

    둘째아이를 낳고 시작한 골프도 20년이 됐다. 나는 7할, 8할은 아내와 골프를 한다. 아내와 골프를 칠 때는 라운드 도중에 절대 먼저 코치하지 않는다. 물론 잘 쳤을 때는 조금 과할 정도로 “굿 샷!”을 외치지만, 아내가 미스 샷을 했을 때는 샷 교정을 하지 않고 먼 산을 본다. 그 순간 제일 속상한 사람은 아내이니, 위로가 아니면 외면이 오히려 득이 아닐까. 골프 치다 싸우는 부부는 대개 코치를 하는 경우다. 그럴 때 아내는 대부분 속으로 그런단다. “너나 잘해!”

    비공식적인 우리 집 가훈은 ‘먹으면 걷는다’이다. 식사 후 동네 한 바퀴 산책이 우리 부부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 덕분인지 아내가 언제부터인가 허리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집안일이 힘들 때도 묵묵히 따라나서는 아내가 있어 ‘유남규, 현정화 이후 최고의 환상 복식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여럿이 놀기는 인생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현대인의 수명이 100세 전후가 되면서 멀리 가려면 동반자가 필요하듯이 부부를 포함한 여러 커플이 꼭 필요할 것 같다. 가끔 식사를 하는 부부모임이 있는데 얼마 전부터 야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서울 남산걷기 모임으로, 처음엔 우리 부부만 가려다 ‘번개’를 조심스럽게 쳐봤고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다.

    첫 주엔 부부 4쌍이 참여했는데 ‘남산 돈가스’도 먹고 ‘케이블카’를 타고 팔각정에 오르기도 하면서 슬슬 준비운동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다음 주 또 ‘번개’를 쳤는데, 그 멤버에 한 부부가 더 참석해 그날은 장충공원에서 출발해 순환도로를 걷고 또 팔각정까지 오르니 다들 거의 초주검이었다. 생각보다 코스가 길었다. 장충동 족발에 소주 한잔하고 걷는 시늉만 하려고 가벼운 마음에 나왔던 그 새로운 커플은 기겁했는지 그다음 주 ‘번개’에는 얼굴을 비치지 않았지만, 네댓 부부가 참석하면서 주말마다 남산을 조각하듯 나눠 누비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뒤풀이를 꼭 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그 친구에 대한 배려도 필요할 듯해 가볍게 하산주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어떤 코스를 잡고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는 것이 요즘 나의 큰 숙제 거리다. ‘번개’ 때마다 과연 몇 명이 나올까 걱정도 들지만, 우리 관계가 왜 필요한지 알리라 믿으니 여간 뿌듯한 게 아니다. 다독여가며 멀리까지 함께 가야 하는 친구들은 참으로 귀한 사람이지 않는가. 잘 놀지 않고는 삶이 고되기만 하고 재미없을 것이다. 어떻게 누구와 노느냐. 짧지 않은 인생을 풀어가는 데 이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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