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6

2013.07.15

초록 여름 빛내는 ‘노란 꽃 군무’

모감주나무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07-15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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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 여름 빛내는 ‘노란 꽃 군무’
    온 숲이 진한 초록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열대성 강우로 바뀌어가는 듯한 이즈음의 빗줄기. 한바탕 쏟아지기라도 하면 초록빛은 그 깊이를 더합니다. 그 초록빛 향연 속에서도 무척 환해 도무지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 한가득 주렁주렁 매달린 노란 꽃송이는 초록빛에 반사돼 더욱 샛노랗게 보입니다. 공원에서도, 가로화단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있는 나무. 만일 이 여름 어딘가에서 노란빛 꽃나무를 마주한다면 아마도 모감주나무일 것입니다.

    7월은 모감주나무 꽃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입니다. 줄지어 선 모감주나무 군락이든, 우아하게 수형을 잡고 선 정원의 독립수이든 한껏 피어난 이 나무의 꽃송이들은 마치 황금빛 물결을 연상하게 하리만큼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이토록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 이렇게 강한 빛줄기 속에서 어쩜 그리도 싱그럽게 서 있을 수 있는지! 가혹한 생활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천진스럽고 환한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그 꽃의 색은 밝기만 합니다. 우중충하던 우리네 마음까지 맑아지게 하네요.

    모감주나무는 무환자나뭇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교목입니다. 노란 꽃잎을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 붉은색 점이 있어 더욱 애교스럽지요.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생긴 잎 모양도 개성이 가득하고, 꽃이 지고 난 후 생기는 열매 모양도 특별합니다. 마치 나무에 달린 꽈리인 양 주머니에 싸여 있습니다.

    지방에 따라서는 모감주나무를 두고 염주나무라고도 부릅니다. 열매 주머니를 벗기면 드러나는 씨앗이 까맣고 반질거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지요. 그 모습도 염주로 적합하지만, 더욱 신기한 점은 염주를 엮으려고 열매에 구멍을 뚫기가 무척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2∼3mm만 뚫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뚫린다고 하네요. 모감주나무란 이름은 닳거나 소모되어 줄어둔다는 뜻의 모감(耗減)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이 역시 염주와 연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서는 ‘즐거운 나무’ 또는 ‘즐거운 열매’란 뜻의 이름을 가지며, 영어로는 ‘Golden Rain Tree’, 즉 ‘황금비나무’라고 합니다.

    모감주나무가 가장 유명한 곳은 천연기념물 제138호로 지정된 충남 태안 안면도 모감주나무군락입니다. 지금 그곳에 가면 해안선을 따라 100m쯤 이어진 모감주나무 꽃무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보다 환하고 아름다운 꽃천지를 만나게 되지요. 이곳 모감주나무군락은 작은 해안가에 한정적으로 모여 있는데, 여러 학자가 이를 신기하게 여겨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중국에 있는 나무 열매가 바닷물을 타고 떠내려 온 뒤 이곳에 닿아 자라게 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하네요.



    하지만 얼마 전 포항 영일만에서 모감주나무 대군락을 발견한 이후 완도, 백령도, 대구, 충북 월악산 중턱에서도 발견해 이 아름다운 나무가 한반도 전체에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말하자면 우연히 중국에 있는 나무가 씨앗으로 떠내려와 정착한 것이 아니라, 흔치 않았을 뿐 본래부터 우리 나무였던 것입니다. 한방에서는 난수화라고 해서 꽃잎을 말려 간염, 장염, 지질(脂質) 개선 등에 쓴다고 합니다.

    너무 덥고 축축해 온몸이 끈적일 만큼 불쾌지수가 높은 때입니다. 거기에 이런저런 사고 소식도 들려오네요. 모감주나무의 노란 꽃이 참으로 큰 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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