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6

2013.02.25

필드에 한국형 캐디 서비스 수출

한류 골프① ‘중국 캐디 마스터’편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입력2013-02-25 10: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필드에 한국형 캐디 서비스 수출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주간동아’ 875호에서 여성시대가 다가왔음을 말했다. 왜 하필 지금인지, 이 시대인지 궁금해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논의는 아직 이르다. 다만 다가오는 시대의 징후로 살펴보는 사실관계는 흥미로울 것이다. 지구촌을 선도하는 우리 민족, 천손(天孫)족으로서의 한민족이 이 세상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류 골프를 통해 징후를 예측해보기로 한다.

    2008년 중국에 갈 일이 있었다. 골프 때문이 아니라, 내 특기인 수련문화를 중국에서 알고 일합(一合)을 겨뤄보자는 요청이 와서 관광 겸 간 것이다. 중국에서는 수련하는 사람을 국가가 관리하고 자격증도 준다. 그런데 이 자격 요건이 아주 재미있다. 4급부터 특급까지 부여하는데, 1급 기공사는 최소한 호풍환우(呼風喚雨·바람을 부르고 비를 부른다는 뜻의 초능력)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조선족 기공사 한 분은 영적 에너지가 특히 발달해 귀신을 부르고 천도를 잘한다고 해서 랴오닝성 특급 기공사 자격을 갖고 있다. 우리 문화에서는 무당 또는 고상하게 엑소시스터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아예 자격증까지 부여하는 점이 재미있었다.

    하여간 이 분이 추천해 한 중국 기업가가 놀러오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갔다가 시험에 들게 됐다. 조선족인 중국 기업가는 베이징에 있는 백작원 골프장 사장이었는데, 당시 골프장을 건설 중이라면서 나에게 회사에 소속된 1급 기공사 3명과 일합을 겨루게 한 것이다.

    베이징은 예부터 물이 귀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평야지대에 수도를 건설하다 보니 지하수도 귀하고 강물도 귀하다. 주변에 골프장은 엄청 많지만 시내 근처에 고급 골프장이 없어 돈 많은 부호나 고관대작은 원정 가서 골프를 한다. 외국 귀빈이 오면 근처 일반 골프장에 가서 대충 접대하고 술 문화로 마무리하곤 한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라운딩



    이 점을 노리고 조선족 기업가가 건설한 고급 골프장이 백작원 골프장이다. 하여간 그다음 날 골프장에 가보기로 하고 저녁에 기공사 두 명, 사장과 함께 식사했다. 재미있는 것이 중국 기공사는 특이공능이라 부르는 초능력이 없으면 급수를 받지 못한다. 기공사 두 명 중 한 명은 지상술이라 부르는 땅속 기운을 감지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소리로 술잔을 깨뜨리고 상대를 혼미하게 만드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술을 못하니까 자기들끼리 술잔을 돌리고 분위기를 잡았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초능력 시합이 벌어졌다. 소위 말하는 시험이 시작된 것이다. 먼저 중국 기공사 두 명이 각자 재주를 뽐냈는데, 오차(식사 때 나오는 물)를 한약 냄새 나게 만들고 소리로 와인잔을 깨뜨리는 등 두세 가지 초능력을 보여줬다.

    그러고는 한국 기공사 능력을 보여달라고 조르기에, 이게 무슨 원숭이 장난인가 싶어 처음에는 거절했다. 하지만 조선족 기업가가 조용히 귓속말로 하는 얘기를 듣고 나도 한 가지 재주를 보여주기로 했다. 내일 골프장에 가서 지상술 시합을 할 예정인데, 저녁에 뭔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사기꾼으로 전락한다는 것이었다. 간단한 능력을 보여주기로 하고 물었다. “지상술 시합이 뭡니까?” 대답인즉, 물이 귀한 베이징 골프장에서 땅속 어디를 파야 물이 나오는지 알아맞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닝기리… 결국 이 목적이었구먼.

    그래도 베이징에 온 김에 기공으로 한류를 전파해보자는 욕심도 생기고 해서 시합에 응했다. 쿠바산 시가를 한국산 인진쑥으로 바꾸기, 술을 물로 바꾸기 등 서너 가지 보여주자 환호하며 서로 친구 하자고 난리다. 펑이요(朋友) 펑이요. 무척 단순한 마음 운용법이지만 좌도방에 익숙한 그들이 좋아한 것은 당연하다.

    다음 날 9홀만 작업이 끝난 골프장에 갔다. 나머지 9홀은 물이 없어 작업 대기 중이었다. 중국 기공사와 함께 둘러보다가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기감(氣感)으로 분명히 물이 있는 자리라고 느꼈기에 왜 파다가 그만뒀느냐고 물었다. 물이 안 나온단다. “5m 정도만 더 파보지 그래요, 분명히 나옵니다.” 동행한 부사장이 그 말을 듣고 내일 파보겠다고 하고는 이왕 온 김에 저쪽 가서 9홀만이라도 라운딩을 하고 가란다. 기분 좋게 답하고 부사장, 기공사, 나 셋이서 채를 빌려 라운딩을 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라운딩이었다. 캐디가 각각 한 명씩 붙어 도왔는데, 기존 베이징 골프장 캐디와는 차원이 다른 캐디였다. 아니, 정확히 말해 한국형 캐디였다. 중국 캐디를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누가 도우미고 경기자인지 모르게 시끄럽다. 대충 채 가져다주고 자기들끼리 떠들면서 놀고, 하여간 불성실하기 짝이 없다. 중국에서는 캐디를 골프채 운반자 정도로 생각해야지 한국에서 하는 식을 기대했다가는 짜증이 난다.

    그래서 이날도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하고 갔는데, 우리식으로 서비스를 했다. 동행한 부사장에게 “아니, 캐디가 꼭 한국식으로 도움을 줍니다?” 했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한국에 가서 가장 우수한 캐디 마스터를 스카우트해왔어요. 3개월째 한국식으로 교육 중인데,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꼭 말씀해주세요. 선생님을 초청한 진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하! 이거 진짜 연구해볼 만한 놀음이로구나.

    라운딩 후 한국에서 특별 초빙해온 캐디 마스터와 대화할 시간을 가졌다. 모 그룹이 운영하는 경기 포천 한 골프장에서 근무했다는데, 중국 캐디 교육에 특별한 방법이 필요치 않았다고 한다. 백 내리는 것부터 시작해 손님 특성 파악, 거리별 채 건네기, 초보자와 고급자 상대하기, 언어교육과 서비스 정신 등 한국에서 하는 그대로 주입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곳 부사장이 캐디 교육을 위해 유럽과 미국 등지를 다녀보고 한국 골프장 몇 군데를 돌아본 후 한국 캐디 마스터를 초빙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국가 캐디와 한국 캐디가 뭐가 다른지 묻자 간단하게 답해줬다. 한국 캐디는 성질을 낼 줄 모른다는 것이다. 캐디에게 가장 짜증나는 대상은 초보자다. 캐디는 늘 감정 동요 없이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모든 캐디가 감정을 다스리면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고 주저 없이 결정했다고 했다.

    감정 노동자도 머리가 좋아야

    초빙한 한국 캐디 마스터가 교육하는 내용을 지켜봤는데, 특히 한국 여성 두뇌가 아주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골프장 캐디를 선발할 때 머리 좋은 사람을 먼저 뽑고 그다음 미모를 본다고 했다. 즉 감정 노동자도 머리가 둔하면 쓸모없다는 점을 자국 캐디에게 유독 강조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날 같이 라운딩을 해보니 중국 캐디들이 한국에 대해 경외심을 가진 것이 느껴졌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 여성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평가해달라는 부탁에 흔쾌히 답해줬다. “이만하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소이다.” 물론 그다음 날 땅속을 5m 더 파자마자 물이 콸콸 쏟아진 것을 보고는 내 말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졌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우수성을 말할 수 있는 게 어디 이것뿐이랴. 한류라고 이름 붙은 여러 현상 가운데 저급한 섹슈얼 문화에서부터 고급스러운 감정노동까지, 그리고 프랑스 장관에 임명된 플뢰르 펠르랭을 보더라도 어디에 내놔도 대단한 인물들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한국 여성은 엄마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세계 최고 교육열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양육에서 벗어나 자신이 직접 재능을 발휘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두 박씨가 이미 이러한 세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박세리와 박근혜. 둘 다 미혼에 혹독한 시련과 어둠의 세월을 보냈지만, 이 땅의 딸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박세리는 ‘세리 키즈’라는 용어를 만들 정도로 선구자 노릇을 했다. 박근혜는 어떤 여성 지도자상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된다. 앞으로 한류가 지구촌을 들썩이게 할 것이다. 국내 경쟁이 치열하면 할수록 해외로 나가는 일이 더 많아질 테니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