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1

2013.01.14

티격태격 50대 남녀 ‘人生 성찰기’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 김유림 월간 ‘신동아’ 기자 rim@donga.com

    입력2013-01-14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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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격태격 50대 남녀 ‘人生 성찰기’
    여기,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남녀가 있다. 함께 아이를 낳았으나 결혼한 적은 없으니 부부는 아니고, 30년 이상 알고 지냈으나 친구라는 말로는 뭔가 부족하다. 매 순간 서로에게 날이 서 있지만 원수라고 하기에는 그 사이에서 진한 애정이 느껴진다.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남녀가 30년간 끌어온 질문 “우린 어떤 사이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담았다.

    국제 분쟁 저널리스트인 연옥이 위암을 선고받으면서 극이 시작한다. 의사는 “시간이 얼마 없다”며 “준비하라”고 하지만 연옥은 정작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른다. 그때 불쑥 정민이 나타나 낯선 제안을 한다. “너도 시간이 많고 나도 안식년이니까 우리 매주 목요일,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자!” 비겁함, 행복, 역사, 죽음, 그리고 문장…. 아옹다옹하면서 두 사람은 30년간 의문투성이였던 서로의 역사를 되짚는다.

    두 사람은 평생 어긋나기만 했다. 연옥이 최루탄에 휩싸인 동안 정민은 프로야구에 열광했다. 연옥이 시리아, 이집트, 터키 등 전 세계 전쟁터를 활보하며 ‘더 나은 나’를 찾을 때 정민은 연옥의 등만 보며 외로워했다. 연옥이 정민의 아이를 가졌을 때 정민은 다른 여자와 결혼할 꿈에 부풀었다. 정민은 언제나 책임이 두려워 도망쳤으며, 연옥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를 부정하기에 급급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원해도 함께하지 못한 채 멀찍이 떨어져 한곳을 바라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목요일의 대화가 쌓여갈수록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해간다. ‘서로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흔하지만 어려운 진리를 드디어 받아들인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자신들의 딸 이경에게 좀 더 나은 부모가 되고자 노력한다. 도전보다 체념이 익숙한 50대 남녀가 대화를 통해 합일점을 찾고 성장하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준다. 유난한 방법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대신 가장 사랑하는 일을 찾아 떠나는 연옥은 비현실적일지라도 많은 이가 꿈꾸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 아름답다.

    사진틀을 닮은 무대에는 이동이 자유로운 흰 테이블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화려한 장치보다 두 배우의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각오인데, 주인공을 맡은 배우 배종옥과 조재현은 그 기대에 부응한다. 두 사람은 각각 강단 있고 자아 강한 여기자와 능글맞지만 미워할 수 없는 ‘먹물’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낸다. 2시간 가까운 공연이 특별한 이벤트 없이도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고 곱씹을수록 흥미로운 대사 덕분이다. 몇 번이나 무릎을 치게 만드는 촌철살인 대사는 연극 ‘아트’ ‘썸걸즈’ 등에서 감각 있는 연출 능력을 발휘했던 작·연출가 황재헌이 진가를 발휘한 부분이다. 2월 1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자유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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