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4

2012.09.10

‘포스트 문선명’ 시대 통일교 앞날은?

한학자 여사가 실권자…4남, 7남 對 3남 형제간 다툼 주목

  • 송홍근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2-09-10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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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문선명’ 시대 통일교 앞날은?

    1991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포옹하는 문선명 통일교 총재.

    9월 3일 ‘논란의 지도자’가 타계했다. 문선명 통일교 총재.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문제 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내 이름 자 앞에 수많은 별명을 덧붙이고 거부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반대부터 했습니다.”

    1920년 평북 정주 태생인 문선명 총재는 2009년 출간한 자서전(‘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92년 삶은 파란만장했다. ‘떠들썩한 인물’이라는 말마따나 ‘메시아’ ‘평화운동가’ ‘이단교주’라는 엇갈린 평가가 따라붙는다. 종교, 인종, 나라가 하나 되는 평화세계를 신도에게 강론했다.

    통일교는 문 총재를 정점으로 ‘유기체’를 구축했다. 통일교에선 고인을 ‘참부모’라고 부른다. 통일교는 참부모를 정점으로 한 ‘대(大)가정’을 지향했다. 국제합동결혼식은 참생명의 씨, 참혈통의 씨를 접붙이는 예식이다. 통일교가 미국에서 한때 신도수를 늘린 것은 개인주의화한 미국인에게 공동체적 가치를 제시한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포스트 문선명 시대의 통일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핵(核)이 사라진 조직은 크건 작건 동요하게 마련이다.



    통일교에서는 2010년부터 후계 구도를 놓고 노선, 자산 다툼이 거칠었다. 목회자들이 들끓었다. 동생이 형을 상대로 송사를 벌였다느니, 아들이 어머니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느니 하는 언론 보도에 통일교 원로들은 혀를 찼다. 다툼의 중심에는 3남 문현진(43) GPF재단 이사장, 4남 문국진(42) 통일그룹 회장, 7남 문형진(33) 통일교 세계회장이 있다.

    후계 구도와 자산 놓고 논란

    2010년 6월 5일 문선명 총재는 부인 한학자(69) 여사의 도움을 받아 7남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선포문을 작성했다. 문 총재가 이날 작성한 문건의 내용은 이렇다.

    “만왕의 왕은 한 분 하나님, 참부모님도 한 분 부모, 만 세대의 백성도 한 혈통의 국민이요, 한 천국의 자녀이다. 천주평화통일본부도 절대 유일의 본부다. 그 대신자, 상속자는 문형진이다. 그 외 사람은 이단자며 폭파자다. 이상 내용은 참부모님의 선포문이다.”

    통일교의 공식 후계자는 7남이지만 자산, 조직을 관리하는 실력자는 4남이다. 7남, 4남이 쌍두마차 격이다. 장남, 차남은 사망했다. 장남 격인 3남은 GPF재단을 이끌면서 ‘종교의 틀을 벗어난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3남, 4남은 통일교가 보유한 자산을 놓고 지금껏 다투고 있다. 두 사람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포스트 문선명’ 시대 통일교 앞날은?
    “자산에 대한 소유권이 분명한 회사와 달리, 종교 같은 신앙 세계에서 신도를 소유할 수 있다고 보나? 사람을 소유할 수 있다고 보나? 아니다. 물질적 자산을 소유하는 회사와는 다르다. 누가 후계자 이슈를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중요한 사안이라고 보지 않는다.”(문현진 이사장)

    “후계 다툼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문선명 총재께서 통일교의 상속자, 대신자로 문형진 세계회장을 결정해주셨다. 전 세계 통일교인은 이 결정과 관련해 문형진 세계회장을 환영하며 존경한다. 그 부분은 총재님 양위의 절대적 고유 권한으로 후계 문제는 종결됐다.”(문국진 통일그룹 회장)

    일부 통일교 신도들은 여당, 야당이라는 표현을 쓴다. 4남과 7남이 여당, 3남이 야당이다. 공식 후계는 문형진(종교), 문국진(기업)으로 정리됐으나 3남을 따르는 신도가 적지 않다. 특히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 신도들이 3남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남은 통일교가 1977년 세운 국제조직 통일교세계재단(UCI)의 자산을 토대로 활동한다. 통일그룹처럼 UCI도 기업군을 거느린다. UCI는 미국의 대형 수산물 유통업체인 트루 월드 수산, 항공사인 워싱턴타임스항공(WTA), 신세계백화점이 입주해 있는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와 JW 메리어트 호텔, 일성건설을 소유하고 있다.

    문 총재는 임종 직전 특별한 유훈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4남, 7남은 문 총재 측근에게 통일교 섭리와 관련해 유언을 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자식이 말씀을 들으면 객관적이지 못하는 이유였다고 한다. 문 총재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4남, 7남은 예스(Yes)나 노(No) 식으로라도 답을 듣고자 했으나 특별한 언급 없이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3남도 문 총재에게 유훈을 듣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폐렴 증세가 악화했을 때 강남성모병원으로 문병을 갔으나 4남, 7남 쪽 인사들이 길을 막았다고 한다. 이후 비공식적으로 방문해 문 총재를 만났다.

    ‘아버지의 뜻’ 주도권 싸움

    겉으로 드러난 형제간 반목은 자산을 둘러싼 싸움이지만, ‘포스트 문선명’ 시대를 둘러싼 헤게모니 다툼이 그 밑바탕에 있다. 후계자 경쟁이라기보다 문 총재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앞으로의 영향력을 두고 다퉜다는 게 옳을 듯하다. ‘아버지 이름으로’ 이뤄지는 형제간 경쟁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다. 4남, 7남이 종교로서의 통일교(Unification Church)를 강조하는 반면, 3남은 종교의 틀을 벗어난 통일운동(Unification Movement)에 천착한다. 이들은 앞으로도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 시점에서 통일교 실권자가 한학자 여사라는 데는 통일교 안팎에서 이견이 별로 없다. 통일교가 소유한 현금 자산의 상당 부분을 한 여사가 총재로 있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선교회(이하 선교회)가 갖고 있다. 선교회는 2008년 이후 최저 1300억 원에서 최고 3000억 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교는 신도를 대상으로 ‘참부모님 노정 섭리사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 요지는 ‘한학자 여사는 하나님의 부인’ ‘문형진 회장은 섭리적인 후계자’라는 것이다. 후계자가 하나님의 부인보다 위에 위치하기는 어렵다. 실질적 지도자이자 실권자는 한 여사가 될 소지가 큰 것이다.

    통일교는 21세기 한국이 낳은 종교 가운데 가장 성공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조전을 보내 조의의 뜻을 전했을 만큼 문 총재가 걸어온 길은 남다르다. 인류사에서 새로 일어선 종교는 대체로 창시자가 사망한 뒤 그 세가 꺾이거나 분열했다. 과연 통일교는 어떤 길을 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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