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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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공약 검증

빚 탕감 40만 명? 123만 명?

금융당국, 새 정부 서민금융정책 본격 추진… 정권 바뀌면 채무 해결, 모럴 헤저드 논란도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7-06-02 17: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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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돈을 갚으려고 하겠나. 세금을 낭비하지 마라.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대다수 채무자나 빚을 안 지고 살려고 노력하는 서민은 무엇으로 보상받나.”

    “세금은 4대강에 퍼붓는 것이 아니고 이런 곳에 쓰라고 내는 것이다. 내 돈 남 주는 것 같아도 훗날 내가 힘들 때 나도 도움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을 준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던 빚 탕감이 가시화되면서 그 대상과 액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은 서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면서도 별도 법 개정이나 예산 확보가 필요치 않은 ‘소액·장기연체 채무 소각’ 공약을 추진하고자 실무 검토 작업에 돌입했다. 빚 탕감 공약 이행에 따른 재원 조달과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안도 함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받을 수 없는 돈?

    소액·장기연체 채무 소각은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면서 공약한 내용이다. 3월 당시 문재인 후보는 “사실상의 회수불능 채권을 채무조정을 통해 정리하겠다. 회수 가능성이 없는데 채권만 살아 있으니 채무자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 하고 금융회사는 채권 관리비용만 늘어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빚에 시달려온 채무자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자는 내용이었다.



    당시 문 후보는 이 조치의 대상이 “약 203만 명, 22조6000억 원 규모”라고 밝혔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민주당) 공약집에  ‘소액·장기연체 채무에 대한 과감한 정리 : 행복기금 보유 1000만 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 채권 소각으로 사실상 상환이 불가능한 취약계층의 생활권 확보’라는 항목이 포함되면서 대상이 100만여 명으로 조정됐다.

    5월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서민금융진흥원으로부터 받은 ‘국민행복기금 장기연체 채권 현황’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국민행복기금이 관리하는 1000만 원 이하 10년 이상 장기 연체 채권 잔액은 4조4848억 원이며, 채무자는 123만3000여 명에 달했다.

    소액·장기연체 채무 소각으로 빚 탕감이 실현될 경우 이들 중 국민행복기금과 채무조정 약정을 체결하지 않은 ‘순수 미약정자’가 우선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총 1조8930억 원 탕감과 함께 40만3000여 명이 신용을 회복할 것으로 추산된다. 채무자 인당 평균 470만 원 빚이 사라지는 셈이다. 순수 미약정자는 채무조정 약정을 체결할 수 없을 만큼 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소득이나 재산 현황이 파악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보통 금융사가 대출 후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부실을 최소화하고자  싼값에 다른 금융기관이나 대부업체에 채권을 넘긴다. 이 과정에서 채무자는 대출은 은행에서 받았지만 채권을 보유한 곳으로부터 추심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국민행복기금은 소액·장기연체 채권을 원금의 2~3% 가격에 금융권으로부터 매입한 뒤 최대 90%까지 채무를 조정해 갚도록 해왔다. 금융당국은 소각 채권의 구체적인 범위와 방식을 검토한 뒤 채권을 보유한 국민행복기금과 서민금융 지원 업무를 맡는 서민금융진흥원을 중심으로 빚 탕감 과제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채권은 별도 예산 편성이나 법 개정 없이 소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채권을 매입하는 데 쓴 돈은 회수할 수 없다.

    금융당국과 정부의 논의를 통해 소득 및  재산 심사를 거치면 실제 빚 탕감 대상자는 40만3000여 명보다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들뿐 아니라 국민행복기금에서 최소 30%에서 최대 90%까지 채무조정을 받아 성실하게 상환하고 있는 나머지 83만 명도 이번 빚 탕감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경제가 살아나야 정책 효과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1000만 원 이하 10년 이상 채권은 사실상 상환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계속 상환을 추진한다 해도 돈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기간을 중요한 요소로 인식해 이번 기회에 오랫동안 빚에 시달린 사람들의 채무를 폭넓게 조정해주는 것이 오히려 낫다. 일부 예외는 있겠지만 10년 버티기를 통해 채무를 탕감받으려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사면적 성격을 고려해 이들에게 다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빚 탕감은 역대 정부의 단골 공약이었다. 대선 기간에는 대규모 빚 탕감을 약속했다 정권을 잡은 뒤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조정하는 ‘과정’도 되풀이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애초 채무연체자 322만 명의 빚 탕감을 약속했다 장기연체자 66만 명 정도로 대상자를 대폭 축소했다. 이명박 정부도 대선 기간 신용불량자 260만 명의 사면을 약속했다 정권을 잡은 뒤 29만 명으로 대상을 줄였다.

    반복되는 채무조정, 빚 탕감은 정책의 효과와 함께 모럴 헤저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국민행복기금의 경우 2013년 출범한 뒤 4년 만에 58만1000명의 채무조정을 지원했지만 빚 탕감을 받은 사람 가운데 10만6000명(약 20%)은 이후 3개월 이상 연체해 또다시 채무불이행자가 됐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저소득층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빚 탕감 효과를 보려면 세부 요건을 잘 파악해야 한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생계형 체납자 신용회복 지원처럼 빚을 갚고자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인 사람 위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대상자를 선정해야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무자의 경제상황에 따라 개인워크아웃과 프리워크아웃, 개인회생 등 이미 다양한 제도가 있는 만큼 이를 먼저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빌린 돈은 액수를 떠나 전액 상환하는 것이 정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빚을 탕감해준다면 돈을 안 갚아도 정부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모럴 헤저드가 만연할 수 있다. 또한 성실히 돈을 갚아가는 기존 채무자에게는 역차별이라는 논란과 함께 신용사회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빚 탕감 정책이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효과를 내려면 일자리 또는 가계부채 대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소득이 늘어야 서민이 자립하고 빚도 갚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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