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4

2012.04.23

권력 게임은 악마의 본성이다

조지 클루니 감독의 ‘킹메이커’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2-04-23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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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 게임은 악마의 본성이다
    “대선에 나설 의사가 있습니까?”

    2011년 8월 31일, 제6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첫날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가 기자회견에서 받은 첫 질문이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아는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훌륭하고 열정적인 사람이 백악관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이어 “난 정말 좋은 직업을 갖고 있다”면서 “매력적인 사람과 늘 같이 있으니 대통령직에는 관심 없다”고 말했다.

    클루니는 민주당 지지자로 아프리카 수단 내전에 반대하며 평화운동을 벌여온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사회참여파’다. 여성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함께 ‘대통령이 될 만한 연예스타’로 항상 첫손에 꼽힌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인 ‘킹메이커’는 클루니가 감독하고 라이언 고슬링과 공동 주연을 맡은 영화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러시아, 프랑스, 중국, 인도, 이집트, 멕시코, 베네수엘라, 케냐 등 20개국에서 올해 대선이나 정권 이양이 이뤄졌거나 이뤄질 예정이다. 그래서 영화 ‘킹메이커’를 보는 재미가 더 특별하다. 이 영화는 미국 대통령선거 과정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민주당 대선후보와 선거 참모를 중심으로 최고 권력을 향한 암투, 음모, 배신, 스캔들을 그린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권력 게임은 악마의 본성이다
    이보다 앞서 미국 백악관이나 대선을 다룬 작품으로는 TV 드라마 ‘웨스트 윙’(1999~2006, NBC)이 대표적이다. 학자 출신 민주당 후보가 절대 약세를 뒤집고 백악관에 입성하는 역전 드라마로 시작해 통치 과정과 재선까지의 이야기를 7개 시즌에 담았다. 비서실장과 정책참모, 홍보책임자 등 백악관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중심에 놓은 이 드라마는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을 매우 극적이며 사실적으로 그렸다. 국내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초반 이 드라마의 열혈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프라이머리(예비선거)’로 요약되는 미국만의 독특한 제도를 포함해 대선을 둘러싼 전략 대결과 음모, 추문, 협잡 등 복마전을 다룬 영화로는 ‘프라이머리 컬러스’(1998)도 빼놓을 수 없다.

    ‘밥 로버츠’(1992) 역시 미국 대선을 소재로 한 영화다. 가수 출신이자 입지전적 기업가이며 백만장자로서 일약 스타 정치인이 된 미국 내 강경보수파 대선후보가 주인공이다. 대선가도에서 승승장구하던 중 경제 비리와 부정, 범죄세력과의 결탁 의혹으로 치명타를 맞지만 저격사건 덕에 회생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가수 출신이라는 점이나 저격사건의 피해자가 된다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여러모로 한국의 지난 대선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 밥 로버츠는 경기 후퇴가 자유주의적 가치, 한국으로 보자면 좌파 정치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보수주의의 회복을 설파한다. 자수성가해 거대 부호가 된 자신이야말로 경제를 회복시켜 국민에게 부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 그가 선거운동에서 내세운 핵심 기치다.

    ‘밥 로버츠’가 강경보수파를 주인공으로 한 반면, ‘킹메이커’는 미국 민주당에서도 가장 진보적 이념을 가진 후보를 무대 중앙으로 불러냈다.

    “나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무신론자도 아닙니다. 유대인도 아니고 무슬림도 아닙니다. 제가 믿는 것은 오직 미합중국의 헌법입니다.”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토론이 벌어질 오하이오 주의 한 대강당. 경선 후보이자 현 주지사인 마이크 모리스(조지 클루니 분)의 연설문을 대독하며 토론장의 마이크와 음향 상태를 시험하는 홍보참모 스티븐(라이언 고슬링 분)의 모습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유능한 홍보참모 스티븐이 지지하는 모리스 주지사는 잘생긴 외모와 안정된 가정 덕에 민주당의 완벽한 차기 대선후보로 꼽히며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종교의 자유, 기독교 근본주의 반대, 사형제 폐지, 주요 분쟁지역에서의 미군 철수, 평화 외교 지지, 동성결혼 합법화, 낙태 찬성, 내연기관 자동차 감축, 부자 증세 등 모리스가 가진 정책과 이념은 민주당에서도 가장 좌파적이다. 권모술수에 능한 베테랑 선거캠프 본부장인 폴 자라(필립 시모어 호프먼 분)와 스티븐은 모리스가 지닌 장점을 극대화하며 선거에서 승승장구한다.

    그러던 중 민주당의 또 다른 경선 주자인 테드 풀먼 캠프에서 스티븐의 야심과 능력을 눈여겨보고 은밀하게 영입을 제안해온다. 모리스 캠프를 ‘고객’으로 받아들인 정치 마케팅 전문가이며, 후보의 신념과 인간성을 깊이 신뢰하는 절대적 지지자인 스티븐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상대 캠프의 최고 책임자와 비밀리에 회동했던 사실이 언론에 포착되면서 민주당 경선의 최대 스캔들로 비화할 위기에 처한다. 결국 스티븐은 캠프에서 해임된다.

    실화 바탕의 희곡이 원작

    권력 게임은 악마의 본성이다
    그 와중에 스티븐은 내연관계를 맺어오던 같은 캠프의 여성 인턴에게서 모리스의 치명적인 비밀을 전해 듣는다. 스티븐은 이 정보를 미끼로 모리스와 풀먼 양 진영에 거래를 제안한다. 정치적, 도덕적으로 완벽했던 모리스가 스티븐의 협박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킹메이커’에서 정치와 선거란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권력 게임이며, 개개인의 야심과 욕망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교향곡이다. 음모와 협잡, 배신이 일상적이고 섹스와 죽음도 멀지 않은 미스터리다. ‘킹메이커’는 선거 마케팅 전문가로서의 재능뿐 아니라 야심과 패기, 정의감까지 갖췄던 스티븐이 한순간의 오판으로 무너지는 과정, 그리고 위기를 돌파하려고 벌이는 위험한 게임을 통해 정치의 악마적 본성을 흥미롭게 드러낸다. 모리스라는 이상적 진보주의자의 마지막 결단이 궁금한 관객은 엔딩 크레디트가 나올 때까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브로드웨이의 연극 ‘패러것 노스’가 원작이며, 희곡은 2004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의 유력 후보였던 하워드 딘 상원의원 선거캠프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했다.

    고슬링과 클루니를 비롯한 연기자들의 화음이 멋들어진다. 클루니는 연기뿐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시리아나’ ‘굿나잇 앤 굿럭’에 이어 또 한 번 탁월한 재능을 보여줬다. 잘생겼지, 돈 많지, 연기 잘하지, 연출도 잘하지, 사회참여 활동도 열심이지…. 도대체 클루니가 지닌 매력의 끝은 어디일까. 그가 정말 대권에 도전한다면 많은 미국 유권자가 마음을 뺏길 게 틀림없다. ‘킹메이커’가 그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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