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5

2010.07.12

“몇백 번 암기 …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어요”

퀴즈 영웅 등극한 중졸 트럭 운전기사 임성모 씨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입력2010-07-12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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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백 번 암기 …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어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꿈만 같습니다.”

    지난 7월 4일 KBS 1TV ‘퀴즈 대한민국’에서 중졸의 트럭 운전기사 임성모(57) 씨가 퀴즈영웅 자리에 올라 화제다. 임씨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트럭 안을 들여다보니 ‘사필귀정’이라는 사자성어가 절로 떠올랐다. 운전석 쪽 창문에는 암기용 메모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계기판 위에 놓인 그만의 정리노트에선 오랜 노력의 흔적이 깊게 배어났다.

    7년 전 임씨는 ‘퀴즈 대한민국’에서 중졸 학력의 50대 열쇠수리공이 퀴즈영웅이 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저 사람도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5년간 퀴즈 준비에 몰두했다. 여느 퀴즈 프로그램 출연자에 비해 기초지식 수준이 낮았기에 1년여 동안 기본 상식을 암기했다. 임씨의 방에는 그 시절 외운 세계 각국의 수도·면적·인구 등을 정리한 표, 주요 국가의 왕과 대통령 계보를 나열한 표, 표준 주기율표 등이 붙어 있다.

    “나머지 3년 반 동안은 모든 퀴즈 프로그램에 나왔던 문제를 정리하고 신문을 스크랩하며 퀴즈 맞춤용 공부를 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백과사전은 꾸준히 암기해 현재 30% 정도 외웠는데 이 모든 것을 정리한 노트가 15권이나 됩니다.”

    17년째 트럭 운전을 하고 있는 임씨는 종이 상자를 납품하는 일을 한다. 일주일 중 6일을 일하는 그는 늘 목에 수건을 두르고 다닌다. 무거운 상자를 나르느라 온몸이 땀에 흠뻑 젖는 일이 잦기 때문.



    “늦은 밤까지 집에서 공부하고 싶지만, 자칫 졸음사고로 이어질까봐 1~2시간 노트정리만 합니다. 대신 밥 먹을 때,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도 암기를 하지요. 주로 공부하는 곳은 트럭 안인데 신호 대기 1~2분 동안에도, 납품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틈틈이 공부합니다. 퀴즈 공부를 하느라 접촉 사고를 낸 적도 있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표 뽑는 것을 잊고 간 적도 있어요(웃음).”

    퀴즈 프로그램에 3회 출전하는 내내 가족 이야기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졌던 임씨. 그에게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은 평생에 걸쳐 한으로 남았다. 3남 4녀의 둘째이자 맏아들인 그는 18세에 입대해 7년 남짓 군 생활을 하며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다. 동생들은 현재 초등학교 교감, 법무사, 경찰관으로 일하고 있다. 임씨는 특히 두 딸을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이 가장 가슴이 아프다. ‘굴러다니는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임씨의 암기 비법은 이미지 연상과 반복에 있다.

    “예를 들어 6·25전쟁에 참전한 세계 16개국을 암기할 때는 아프리카 대륙을 머릿속에 그리고 해당 국가를 떠올립니다. 다음에는 아메리카 대륙을 그리는 식으로 전 세계 지도를 그리는 거지요. 하지만 암기해야 할 것을 수시로 들여다보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 습관이 6개월, 1년 이상 지속되면 결국 몇백 번 보게 되는 겁니다.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임씨의 다음 목표는 KBS의 퀴즈 프로그램 ‘1대 100’과 ‘우리말 겨루기’에서도 최종 우승해 3관왕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번 퀴즈영웅 등극으로 2000만 원의 상금을 받은 임씨는 아내에게 전액을 맡겼다. 그의 아내는 임씨가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새 트럭으로 바꿔주고 싶다고 한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장애물을 만나면 좌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쉼 없이 간다면 느리더라도 누구든지 꿈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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