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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강원의 숲을 걷다⑤

곧게 뻗은 1700여그루 마음에 새살 저절로 돋아나

월정사 전나무 숲길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곧게 뻗은 1700여그루 마음에 새살 저절로 돋아나

곧게 뻗은 1700여그루 마음에 새살 저절로 돋아나

갓난아이, 할머니 등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전북 부안 내소사, 경기 남양주 광릉수목원, 그리고 강원 오대산 월정사의 공통점은? 바로 전나무숲 좋기로 소문난 곳이라는 점. 특히 월정사의 전나무숲은 드라마 ‘겨울연가’, 영화 ‘가을로’ 등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소설가 윤대녕도 일찍이 “신새벽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걷노라면 허물린 마음이 기워지는 느낌”이라고 고백했다. 청명하고 로맨틱하고 건강한 전나무 숲길. 6월 말,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린 후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찾았다.

폭신폭신 누구나 걷기 좋은 곳

해를 거듭할수록 여행지를 고를 때 점점 이름난 곳은 피하게 된다. 이미 유명한 곳인데 나까지 굳이 밥숟가락 얹을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에게 치이기도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름날 대로 이름난 월정사는 ‘아, 이래서 사람이 많이 찾을 수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곧게 뻗은 전나무가 빽빽이 들어섰고, 보드라운 흙이 소복이 쌓여 폭신폭신한 길에 그 길과 나란히 흐르는 오대산 약수까지.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져 누구나 걸을 수 있고 누구나 좋아하는 완벽한 길이다. 꽃이 좋으니 벌이 꾈 수밖에.

월정사 전나무숲 걷기는 일주문(一柱門)을 통과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만약 차가 있다면 일주문을 지나 월정사 주차장에 세운 뒤 일주문을 향해 걷는 것이 좋다. 전나무 숲길 코스는 편도 0.9km로 천천히 걸으면 20분 걸린다. 워낙 땅이 부드러워 신발을 손에 들고 맨발로 걷는 사람도 많고, 금방 걸음마를 뗀 아기도 아장아장 걸어 다닌다. 두 팔을 벌리고 자박자박 걸으며 눈을 감고 공기를 들이마시면 몸속에 솔향이 가득 차는 느낌이다.

곧게 뻗은 전나무 덕에 절로 시원해졌다. 전나무는 소나뭇과로 사계절 내내 푸른 뾰족한 잎을 뽐내는 큰키나무다. 전나무는 가지와 잎이 옆으로 퍼져 납작한 모양이 마치 전(煎)과 같아 전나무라 했다는 설과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송진 같은 멀건 액을 ‘젓’이라고 해 젓나무라 부르던 것이 전나무가 됐다는 설이 있다.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전나무는 공해에 약해 도시에서는 잘 못 자라고 청정지역에서만 자란다. 따라서 이토록 곧고 길게 뻗어나간 전나무는 이곳이 얼마나 깨끗하게 잘 보존됐는지 보여주는 셈.



이곳에는 총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있다. 고려 말 처음 심었던 나무가 절로 번식해 숲을 이뤘다니 1000년이 넘었다. 월정사의 진정한 주지 스님은 바로 이 전나무가 아닐까. 워낙 오랜 시간 지키고 있어서인지 이곳 전나무숲에는 전설도 있다. 고려 말,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부처에게 공양을 하던 중 전나무에 쌓인 눈이 공양그릇에 떨어졌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산신령이 “공양을 망쳤다”고 꾸짖으며 전나무 9그루에게 앞으로 절을 지키라고 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전나무는 오랜 세월 월정사를 지키게 됐다고.

따따다닥, 딱따구리 소리도 들린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곳을 찾으니 나도 질세라 다람쥐 한 마리가 두두두 지나갔다. 그리고 먼 데서 들려오는 꾀꼬리 소리. 날이 좋으면 오대산 자락에서 내려온 수달, 족제비 등 야생동물까지 볼 수 있다.

일주문을 돌아 다시 왔던 길을 걸었다. 길 왼편으로 오대산 자락에서 흘러나온 물이 계곡을 이뤄 노래한다. 소풍 온 유치원생들이 물에 들어가 올챙이 잡기에 한창이었는데 들여다보니 피라미 몇 마리가 있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 웅장한 월정사(月精寺)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 생각해 지은 월정사. 앞마당에 국보 제48호 팔각구층석탑의 모습이 당당하다. 고즈넉한 합장 소리가 절을 가득 메웠다. 절 한 귀퉁이에서 약수를 마시니 단맛이 입에 한참 동안 감돌았다. 빈 생수통을 채우고 새로운 길을 나섰다.

반갑다! 섶다리·동피골야영장

곧게 뻗은 1700여그루 마음에 새살 저절로 돋아나

맑은 계곡물을 들여다보며 아이들은 신이 났다.

절을 나와 홍천 쪽으로 걸으면 446번 비포장지방도로다. 초반 부분은 아스팔트다. 한창 공사 중이라 걷기가 좋지 않았다. 아예 걷는 길이 없는 곳도 군데군데 있었다. 그럼에도 포클레인 소리를 들으며 한 20분만 걸으면 다시 자연의 비경을 마주할 수 있으니 참아볼 만하다. 끝도 없이 곧게 난 흙길 옆으로 울창한 나무들이 자태를 뽐냈다. 빛이 살며시 들어 눈이 부시지만 건강한 길 걷기에 절로 흥이 났다. 오른쪽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왼쪽으론 키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줘 더위 걱정 하나도 없다. 중간 중간 계곡으로 내려가 물장구칠 수 있게 너른 디딤돌도 많다. 디딤돌에 철퍼덕 앉아 장난삼아 물속으로 돌멩이 하나 던졌더니 작은 피라미와 올챙이들이 질겁하며 도망쳤다. 길 중간 중간 누군가가 소망을 담아 쌓아놓은 돌탑이 있어 멋스럽다. 소박한 소망 하나 얹어두고 조용히 합장했다.

다시 지방도로로 나와 천천히 걸으면 특이한 모양의 다리 하나가 나타난다. 나뭇가지와 잎을 엮은 위를 흙으로 덮고 나무로 지탱한 다리는 섶다리다. 물에 잘 썩지 않는 나무를 엮어 다리를 만든 조상들의 지혜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듬직하게 쌓인 흙을 밟으며 몇 번 오가다가 이번엔 446도로 반대편, 숲으로 들어서봤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은 오솔길이 있다. 자연과 가까이 걸으면 나도 몰래 겸손해지고 길과 나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그 끝에 햇살이 쏟아지더니 돌 징검다리가 나타났다. 그곳에 앉아 손을 씻었다.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월정사에 들렀다 상원사(上院寺) 가던 길에 이 물에 몸을 씻고 문수동자를 만나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 해발 1000m 오대산에서 흘러나온 물이니 약이라고 해도 믿을 만하다.

징검다리를 건너 다시 446번 비포장지방도로를 걸었다. 길 끝에는 간단한 다과, 식사,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오대산장과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동피골야영장이 있다. 거기서 계속 직진하면 오대산의 한 봉우리인 동대산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조금 더 걸어 2km 거리의 상원사에 가보는 것도 좋다. 느릿느릿 총 4시간 걸었다. 오르막이 없고 흙길이 푹신하고 그늘이 많아 힘들지 않았다. ‘다음번에는 함께 와야지.’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곧게 뻗은 1700여그루 마음에 새살 저절로 돋아나
Basic info.

☞ 가는 길

자가용 영동고속도로 진부IC→강릉·인천 방향→오대교사거리에서 좌회전, 8km 전방 월정삼거리→주문진·오대산 방향으로 좌회전→직진

대중교통 강릉행 고속버스 탑승 후 진부 하차(오전 06:32부터 1일 23회 운행), 진부터미널에서 월정사행 군내버스 이용(오전 06:20부터 1일 24회 운행)



주간동아 2010.07.12 745호 (p36~37)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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