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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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경비단 기가 막혀

동영상 사기극… 금품상납… 채용비리 의혹…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10-02-04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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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왔다 갔다 해.”(화염병을 양손에 든 한 청년이 KBS 건물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앞뒤로 왔다 갔다 한다.)

    “야! 화염병 던지라고. 던져, 던져…. 던져~!”(먼저 왼손에 든 화염병을 계단 하단부에 던진 다음, 오른손에 든 화염병을 같은 곳에 던진다.)

    “야, XX 봐봐~!”(어느새 오른손에 흉기를 든 청년이 카메라를 향해 돌아선다. 그 순간 안전관리팀 경비단 소속 청원경찰들이 청년에게 소화기를 뿌리며 달려들어 제압한다.)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2005년 8월27일 저녁 한국방송공사(KBS) 본관 계단 앞에서 촬영된 이른바 ‘본관 앞 화염병·식칼 난동사건’ 동영상의 일부다. 난동을 피우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누군가 작지만 강한 어조로 지시를 내리면, 청년은 그대로 따라한다. 지시하는 사람의 모습은 화면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잠시 후 청년은 약간의 저항을 하다가 검거된다. KBS 경영본부 안전관리팀 경비단(이하 경비단) 선임 A씨는 검거된 청년을 심문하면서 훈계조로 말한다.

    “많은 청원경찰이… (지키고 있어요). 옆에 있는 분들만 합이 11단이에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도 금방 제압당한다고요.”



    며칠 뒤 KBS는 경비단 청원경찰들의 활약상을 사내 인터넷 ‘코비스’에 소개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7년 9월27일 KBS 장수 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흉기와 화염병으로 무장한 한 남자의 협박을 일순간에 제압했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이 장면이 전국에 방송됐다. 경비단의 자원봉사 활동을 다루기에 앞서 그동안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다.

    영상 허위 조작, 방송에 내보내

    그런데 ‘사랑의 리퀘스트’에 방송된 화면은 본지가 입수한 동영상과 다른 점이 있다. 방송된 화면에는 먼저 화염병을 던지는 손이 ‘왼손’이 아닌 ‘오른손’이고, 화염병을 던지는 장면을 촬영한 ‘카메라 각도’도 다르다. 또 허리춤에서 ‘흉기(식칼)를 꺼내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본지가 입수한 동영상에는 없던 장면들이다.

    본지가 입수한 동영상은 1분25초짜리. 경비단에서 홍보용으로 직접 제작한 것이다. 문제의 청년이 화염병에 불을 붙여 던지고 흉기로 청원경찰을 위협하다 제압당하기까지 논스톱으로 이어진다. 편집의 흔적이 전혀 없다. 반면 ‘사랑의 리퀘스트’에 방송된 동영상은 14초짜리인 데다 여기저기 편집의 흔적이 많다.

    그렇다면 편집과정에서 어떻게 ‘논스톱 동영상’에 없던 장면들이 들어갈 수 있었을까.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청원경찰들에 따르면 촬영한 카메라는 한 대뿐. 익명을 요구한 한 청원경찰 B씨가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갑자기 비상이 걸려 KBS 본관 앞에 집합했다. 화염병과 카메라, 용의자까지 다 준비된 상태였다. A 선임이 동영상을 촬영한다기에 실습교육용인 줄 알았다. 연출에 따라 두세 번 촬영했던 것 같다. 용의자는 같이 근무하는 한 청원경찰의 아들이었다. 군 복무 중 마침 그때 휴가를 나왔다고 했다. A 선임이 그 아들에게 수고비를 지급하는 것도 봤다. 금액은 10만원 정도라고 들었다. 그런데 그 동영상이 나중에 실제로 벌어진 일인 양 포장된 것을 보고 놀랐다. 그 자리에 있었던 청원경찰 모두 사기공범이 된 것 아니냐.”

    B씨의 말대로라면 경비단은 KBS 임직원은 물론, 국민을 상대로 허위 조작한 사실을 유포한 셈이 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또 다른 청원경찰 C씨는 “경비단의 실적을 부풀려 조직의 존재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고용안정이라는 명분에 밀려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이 사건의 책임자로 경비단의 A씨를 지목했다.

    A씨는 이에 대해 “(사건을 조작한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펄쩍 뛰었다. 경비단 홍보용 동영상과 ‘사랑의 리퀘스트’ 방송 내용이 왜 다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를 이유가 없고, 달라서도 안 된다. 상식과 상상을 다 동원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다르다면 심각한 문제”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본지가 입수한 동영상 내용과 방송 내용을 비교 분석해볼 때 A씨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복수의 KBS 관계자에 따르면, KBS 감사실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약 3개월간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경비단에 대한 대대적인 자체 감사를 벌였다. 인사채용 비리, 지속적인 금품상납과 변칙적인 공금횡령 등 각종 비리에 대한 제보가 발단이 됐다. 자체 감사 결과, 감사실은 경비단이 조직적으로 ‘본관 앞 화염병·식칼 난동사건’을 허위로 조작한 사실과 함께 정부 공공기관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 경비단 기가 막혀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방송된 내용을 보면 난동을 피우는 20대 청년이 양손에 화염병을 들고 있다가 오른손에 든 것을 먼저 던진다. 하지만 안전관리팀 경비단 홍보용 동영상에선 같은 청년이 왼손에 든 화염병을 먼저 던진다. 두 동영상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장면을 촬영한 카메라 각도도 다르다. 허리춤에서 흉기를 꺼내는 장면은 ‘사랑의 리퀘스트’ 방송에만 등장한다. 이 장면의 카메라 각도도 앞뒤 장면과 차이가 난다.

    대기근무 허위 상신으로 상납액 보충

    가장 대표적인 비리혐의는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이뤄진 ‘금품상납’ 의혹이다. 현재 경비단은 1개 반에 반장 1명과 조장 2명을 포함해 35명씩, 총 105명이 3개 반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금품상납은 각반 반장이나 총무가 설, 추석, 연말연시 등 매년 정기적으로 3~4차례 돈을 걷어 이뤄진다는 것. 여기에 부정기적으로 걷는 것까지 합칠 경우 한 해에 10차례가 넘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상납 대상은 경비단 내 최고참인 A씨. 다음은 B씨의 이야기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전국적으로 120명의 청원경찰이 한꺼번에 명예퇴직을 했다. 그 덕에 경비단은 추가 구조조정을 당하지 않았다. 차량부 운전직과 환경관리부 청소직 등이 아웃소싱으로 전환됐을 때도 경비단 청원경찰직은 그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 직후 A씨가 ‘언제 아웃소싱으로 전환될지 모른다’며 고용 안정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그에 대한 성의 표시 수준으로 몇만 원짜리 상품권에서 출발했는데, 이것이 변질돼 현금으로 바뀌고 액수도 점점 커졌다. 반에서 돈을 걷을 때마다 개인적으로 꼼꼼히 적어뒀는데, 2008년 한 해만 29만원을 상납했더라.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3000만원 이상 상납이 이뤄진 것 아닌가. 지방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방(현재 지방에 근무 중인 경비단 소속 청원경찰은 103명)은 뺀 것이다.”

    B씨의 설명은 매우 구체적이다. 1개 반 35명이 1만원씩 걷은 돈 35만원에 반 운영비 15만원을 더해 50만원을 상납하고, 3만원씩 걷으면 걷은 돈 105만원 중 100만원을 상납한 뒤 나머지 5만원은 반 운영비로 쓴다는 것.

    그런데 황당한 것은 금품을 상납한 청원경찰들이 실제로는 별다른 금전적 손실을 입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납 금액에 상응하는 만큼 근무하지도 않은 ‘대기근무(연장근무)’를 허위로 상신해 ‘실비(수당)’를 정산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원경찰 C씨는 “한번은 5만원을 상납했는데 대기근무 실비로 7만원을 정산받아 오히려 남은 적도 있다. 이게 공금횡령을 위한 돈세탁과 다를 게 뭔가. 양심에 가책을 느껴 대기근무 상신을 거부한 사람도 있는데, 결국 회유에 못 이겨 동참하고 말았다. 이건 청원경찰 전체를 공범으로 만든 중대한 범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감사실에서는 여러 명의 청원경찰로부터 이 같은 내용의 진술과 함께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물증까지 제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실이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지는 경비단의 또 다른 문제는 ‘인사채용 비리’다. KBS는 경비 절감 차원에서 2005년부터 경비단 청원경찰을 정규직이 아닌 연봉계약직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인력 105명 중 연봉계약직이 50명으로 절반이 채워진 상태다. 문제는 이들 중 일부가 채용과정에서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경비단 내부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 여기에도 A씨의 이름이 등장한다. 청원경찰 D씨가 겪은 경험담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사채용 과정에 돈거래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이 모인 술자리에서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후배가 ‘선배는 얼마 주고 들어왔냐’고 묻더라. 다들 깜짝 놀랐다.”

    실제 한 연봉계약직 청원경찰은 금품을 제공하면서 약속받았던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자 불만을 품고 감사실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단 내부에서는 연봉계약직 채용이 본격화하면서 A씨의 친인척으로 알려진 이들이 입사했고, A씨의 고향 인근 지역 출신이 크게 늘어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인사채용 과정에서 A씨에게 금품을 제공한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의심하고 있는 것.

    A씨는 이 같은 모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하지만 감사실은 자체 감사 결과, A씨가 연루된 각종 비리혐의에 대해 수사기관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지난해 12월 초 법무팀에는 법적 조치, 인력관리실에는 이에 필요한 인사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좌추적권을 갖고 있는 수사기관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비리의 뿌리가 깊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비단 감사한 직원들 대부분 전보 조치

    KBS 경비단 기가 막혀

    김인규 신임 KBS 사장의 취임식이 예정된 지난해 11월24일 KBS 노조가 김 사장의 출근 저지 시위를 벌이자 안전관리팀 경비단 소속 청원경찰이 노조원들을 막아서고 있다.

    이런 심각성을 고려해 당시 김영헌 감사실장은 지난해 11월19일에 부임한 김인규 신임사장에게 12월 초 경비단에 대한 감사결과와 함께 법적 조치의 필요성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2개월이 다 돼가지만 KBS는 A씨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김 실장을 포함해 경비단을 감사했던 감사실 직원 상당수가 지난해 12월24일자로 다른 부서로 전보 조치됐다. 김 실장은 자신의 인사나 감사 이후의 회사 측 조치와 관련해 “감사실을 떠난 사람으로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며 답변을 피했다. 그렇다면 회사 측의 입장은 어떨까.

    KBS 강선규 홍보팀장은 먼저 “김 사장은 새로 부임하면서 12월 한 달 동안 모든 부서의 업무보고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특정 부서의 특정 사안에 대해 자세히 보고받을 겨를이 없었다. 또 조직원 징계문제는 인력관리실에서 처리하는 사항이어서 사장에게까지 구체적인 보고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또 감사실장과 감사실 직원 인사 조치에 대해 “사장이 새로 부임하면 인사 요인이 발생한다. 이번 인사는 감사인력 순환근무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사 결과에 대한 조치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감사실이 인력관리실에 요청한 징계위원회 회부안에 미비한 부분이 있어서 감사실이 이를 보충하고 있으며, 법무팀은 고발할 사안인지 아닌지를 법적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A씨는 “감사실이 나를 음해할 목적으로 병원에 입원한 청원경찰을 찾아가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허위 진술을 유도했다. 이를 입증할 확인서를 받아 공증까지 해놓은 상태다. 필요에 따라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부 청원경찰은 회사 측에서 이번 감사 결과의 처리를 계속 미루거나, 그 결과를 축소 또는 은폐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경우 검찰에 집단으로 고발하는 등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아무리 직장이 중요하다지만 아닌 것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

    올해 KBS의 캐치프레이즈는 ‘희망 2010, 대한민국의 힘’이다. 과연 ‘아닌 것을 바로잡는 희망의 KBS’로 거듭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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