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9

2009.11.03

백화점 ‘오버 마케팅’ 유감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9-10-28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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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일이 시작된 지난 몇 주간 주말마다 백화점 ‘순례’를 했습니다. 마침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두툼한 옷이 필요하다는 핑계까지 생겼기 때문입니다. 요즘 백화점들은 단품보다 세트로 갖고 있으면 좋을 고급 식기 또는 침구를 자주 사은품으로 내겁니다. 또 매주 선물의 종류를 달리하고 이 선물을 모두 합칠 경우 하나의 세트가 되도록 하는 신개념 마케팅 전략을 씁니다.

    이 세트를 다 구비하려면 매주 백화점에서 뭔가를 구입해야 한다는 뜻이죠. 백화점 세일이 시작된 첫째 주 토요일, 백화점 주차장 입구와 일대 도로는 꼬리에 꼬리를 문 자가용들로 아침부터 붐볐습니다. 그러나 쇼핑에 대한 기대와 설렘도 잠시, 기다림이 1시간에 이르자 짜증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인근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백화점에 가보니 집으로 배달된 전단지와 쿠폰을 보며 점찍어 놓은 인기 사은품들은 이미 동이 난 상태. 게다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옷들은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노 세일’ 브랜드 제품이거나 세일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직원에게 “왜 입을 만한 옷은 다 ‘노 세일’이냐”고 항의하는 고객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습니다.

    사은품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이 영수증 2장을 합산하면 저 선물을 받을 수 있냐”는 등 ‘사소한’ 질문을 하는 고객에게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독심술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그 표정의 메시지가 ‘어차피 사은품인데 그냥 주는 대로 받아가지, 뭐 그리 말이 많냐’는 것임을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백화점은 분양가 5억8000만원의 158㎡(48평형) 아파트와 3억5000만원 상당의 우주여행을 경품으로 내걸었습니다. 백화점 마케팅의 ‘진화’ 속도와 아이디어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백화점의 서비스와 마케팅 파워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백화점 서비스와 관련된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몇 해 전 다양한 국적을 가진 팀원들과 서울 뉴욕 파리 도쿄 밀라노 홍콩 등의 대도시를 돌아본 결과, 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차 한 대 주차하느라 몇 시간을 허비하고, 사은품 하나 받으려고 또다시 긴 줄을 선 뒤 아르바이트 직원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초특급 이벤트가 주는 ‘대박의 꿈’도, 사소한 사은품의 행복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화점 ‘오버 마케팅’ 유감
    프랑스 파리에서 1852년 문을 연 세계 최초의 백화점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e、)’의 이름에는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합리적 가격에 공급한다는 기본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마케팅과 고객서비스의 최첨단을 달리는 우리나라 백화점들이 아무쪼록 백화점의 이런 참의미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까다롭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의 소비자들이 주객이 전도된 ‘오버(over) 마케팅’에 현혹되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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