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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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묘비명은 ‘웃기고 자빠졌네’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 미리 쓰는 사람들 … 한발 물러나 삶 조명, 또 다른 웰빙

  • 손정숙 자유기고가 soksaram1@hanmail.net

    입력2009-09-02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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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묘비명은 ‘웃기고 자빠졌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 들어온다. 교회 안에서는 누군가의 장례식이 한창이다. 참석자는 가족, 친지, 친구 등 다 아는 얼굴이다. 도대체 누가 죽었기에? 호기심에 관 앞으로 다가갔다가 충격에 얼어붙는다. 관 속에 누운 이는 다름 아닌 나 자신 아닌가. 기업인이자 자기계발 컨설턴트인 스티븐 코비는 이렇게 독자들을 상상 속 자신의 장례식장으로 초대하기를 즐겼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장례식장을 나와 무덤 앞에 서보라. 내 묘비엔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가. 어떤 글이 묘비명이길 바라는가.” 인생을 성찰하는 수단으로 자신의 묘비명을 써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 삶을 반추하고 앞날을 새롭게 설계하는 묘비명 써보기 강좌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묘비명은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남겨두고 가는 마지막 흔적이다.

    이것이 죽음과 함께 씻기거나 잊히지 않는 건 ‘죽음의 마당’이라는 기록의 시점 때문. 백조가 최후에 단 한 번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울 듯, 인간도 죽음을 예감하고야 실핏줄 끝까지 진솔해진다. 누군가의 발가벗은 마지막 외침 앞에서 산 자는 옷깃을 여미고, 때로는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가려온 가면 뒤의 허공을 모골이 송연하게 바라본다.

    세상 소풍 … 아쉬울 것 없어라…

    35년간 군 생활을 하며 공군 장성에까지 오른 윤상주(56·한국항공 상무) 씨는 전역을 앞두고 뜻 모를 공허감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 나가 책을 뒤적이다 우연히 맞닥뜨린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그를 뼛속까지 흔들었다.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모든 것을 다 이룬 세계적 대문호조차 인생 막바지에 무슨 여한이 이리 남았을까(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나는 알았지, 무덤 주변에 머물 만큼 머물면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편집자).



    윤씨는 죽음 앞에서야 털어놓는 마지막 진실을 찾아 묘비명 수집에 나섰다. 유명 인사들이 직접 남긴 묘비명을 찾아 도서관을 뒤지고, 몇 개월간 국립현충원과 공원묘지를 떠돌았다. 이 가운데 인상적인 것 120가지를 추려 2007년 말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제목으로 한 작은 책자를 펴냈다. 100부가량 인쇄한 책을 전역 선물로 후배들에게 돌리면서 윤씨는 새로 태어난 기분을 느꼈다.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묘비 사이를 누비노라면 나는 어떤 묘비명을 남겨야 할까 하는 생각에 절로 숙연해졌죠. 전역을 앞둔 그때의 체험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힘을 다해 살아놓고도 성에 차지 않은 이가 버나드 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행(奇行)으로 이름을 날린 승려이자 화가 중광은 ‘괜히 왔다 간다’는 묘비명을 남겼다. 그의 파격적인 삶조차 스스로의 기준에는 미달이었을까. 중광의 한마디에서 윤씨는 어떤 장문의 연설보다 긴 여운을 느꼈다.

    그녀의 묘비명은 ‘웃기고 자빠졌네’

    김수환 추기경 선종 49일째 추모미사 봉헌. 정진석 추기경이 추모미사가 끝난 뒤 김수환 추기경의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비명은 추모 기간에 국민들이 쓴 쪽지글로 구성됐다. 비석엔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졌다(우).

    천상병 시인의 묘비에는 유명한 ‘귀천(歸天)’의 한 구절이 쓰여 있다. 삶이란 ‘세상 소풍’이었을 뿐이며 죽음을 통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그의 생사관은 삶을 ‘다만 지구라는 행성을 다녀간 것뿐’이라고 본 라즈니시 등 여러 철학자의 묘비명과도 상통한다. 얼마 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도 시편에 나온 한 구절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라는 묘비명을 통해 소임을 다한 종교인의, 걸릴 것 없이 홀가분한 생사관을 보여줬다.

    간결한 한마디로 세상 터에 굵은 존재증명을 찍어두려는 이들도 있다. 개그우먼 김미화 씨는 자신의 묘비명을 ‘웃기고 자빠졌네’로 정했다. 윤씨는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일을 한 사람에게 내뱉는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말을 듣지 않게끔 잘 살라는 충고인 듯해 뜨끔했다”고 한다.

    묘비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야구대표팀 단장’이라고 새기겠다는 하일성 전 한국야구위원회 사무총장, 1992년 은퇴 당시 묘비명을 어떻게 쓰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곧 돌아오겠습니다(I’ll be back soon)’라고 쓰겠다고 말한 미국 심야 토크쇼 진행자 자니 카슨은 죽음도 꺾지 못할 투철한 직업의식을 보여준다(I’ll be back soon은 카슨이 토크쇼 중간광고 전에 하던 말이다).

    소설가 공지영이 미리 써둔 묘비명은 ‘나, 열렬하게 사랑했고, 열렬하게 상처받았고, 열렬하게 좌절했고, 열렬하게 슬퍼했으나, 모든 것을 열렬한 삶으로 받아들였다’이다. 작품을 통해 그의 불꽃 인생을 만나본 이라면 이만큼 적절한 토로도 없다며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자 여행가인 한비야 씨가 써둔 묘비명은 ‘몽땅 다 쓰고 가다’이다. 어떤 편견에도 매이지 않고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았던 그를 대변하는 말인 듯하다.

    지난 5월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 묘비명은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것과는 좀 다른 형태다. 비석에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 비석 받침 바닥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비문 한 줄만 새겼다. 대신 바닥에 깔리는 박석에 추모기간에 국민들이 쓴 쪽지 글을 모아 묘비명을 대체했다.

    통상 이런 묘비명은 유명 문인이 쓰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경우 늘 국민과 눈높이를 함께했던 뜻을 기려 대중이 함께 쓰는 형식을 택한 것. 노 전 대통령 비문작성위원장이었던 미술사학자 유홍준 씨는 “민중이 쓰는 묘비명은 평생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꿔온 노 전 대통령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파격”이라 말했다. 묘비명이란 죽어서도 태우는 정신의 불꽃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셈.

    가까운 이웃에게 무엇을 전할까

    평범한 사람 중에도 묘비명을 미리 써보려는 이가 늘고 있다. 관련 강좌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묘비명 쓰기를 포함한 웰다잉(well dying)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 중인 이병찬 한국죽음준비교육원장은 “몇 년 전만 해도 묘비명은 죽은 사람이나 쓰는 거라며 기피하던 분위기였는데, 최근엔 학교, 시민단체는 물론 기업체 등에서도 묘비명 쓰기를 포함한 웰다잉 교육 의뢰가 속속 들어온다”고 전했다.

    묘비명 쓰기 바람에 대해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장은 “올 들어 전직 대통령 두 명과 국민적 종교지도자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죽음에 대한 사회적 명상 수준이 한층 깊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구 소장은 “정신없이 휩쓸려가는 세속의 흐름에서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 거리를 갖고 삶을 조망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묘비명 쓰기의 유효성을 찾는다”고 덧붙였다. 욕망에 흐려져 있는 삶의 참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해 죽음의 시점으로 몇 발 앞서 가본다는 것.

    삶의 한복판에 묘비명을 세우는 것은 더 나은 죽음 준비를 통해 삶 자체를 살찌울 수 있는 일이다. 묘비명의 사전적 의미는 묘비에 새겨 고인을 기념하는 시문이나 명문이다. 유족이 고인을 잘 아는 명망가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본인 스스로 써둘 수도 있다. 우리 조상도 죽기 전에 묘비명을 준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병찬 원장은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을 때는 가까운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부터 적어보라”고 조언했다. 묘비명이란 결국 망자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자손, 친지, 친구, 이웃, 직장동료부터 국가, 세상에 이르기까지 꼭 하고픈 말을 쓰다 보면 자신의 삶에 정말 소중했던 가치가 무엇인지 절로 떠오른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거나 기뻤거나 후회스럽던 순간을 되짚어보는 것도 좋다. 묘비명을 한 번 쓰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써보는 것도 괜찮다. 처절하게 스스로를 되돌아본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법. 망각의 물결이 겨우 살려놓은 등불을 덮칠 때마다 묘비명을 부싯돌 삼아 삶의 길을 밝혀줄 새로운 등불을 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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