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5

2009.05.12

아토피보다 무서운 자반증(혈관염) 거머리 침샘이 특효

외길 연구 8년 한동하한의원 한동하 박사 … 매달 40~50명 치료, 재발률 낮아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05-08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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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토피보다 무서운 자반증(혈관염) 거머리 침샘이 특효
    지난해 7월 한 20대 여성이 서울 서초구의 알레르기 전문 한의원인 한동하한의원을 방문했다. 여성은 부기가 약간 있었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여름인데도 몸을 잔뜩 움츠렸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사이에서 마음이 다급했는지 발까지 동동 굴렀다. 한동하(한의학박사·알레르기, 면역학 전공) 원장은 어떤 상황인지 대충 감을 잡았다. 일단 환자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게 중요했다.

    “이전 병원에서 받은 처방과 치료 과정을 정확히 얘기하고, 환부 전체를 보여주셔야 합니다. 좋아질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여성은 그제야 안심이 된 듯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편도선염에 걸린 적이 있는데 그 후 다리 여기저기에 피멍이 생겼어요.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계속 먹고 있지만 오히려 더 심해졌어요.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이젠 무릎과 발목 관절까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심상치 않았다. 여성들이 특히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피부, 그것도 다리에 원인 모를 피멍이 생긴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고통. 한 원장이 환부를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고춧가루를 뿌린 듯 크고 작은 출혈성 반점이 종아리는 물론 허벅지와 배꼽 부위까지 퍼져 있었다. 환부에 손이 자주 가다 보니 알레르기성 두드러기의 일종인 맥관부종과 피부묘기증도 관찰됐다.



    피멍과 비슷 … 면역치료법으로 희망 찾기

    한 원장의 문진 결과, 여성은 생리까지 끊기고 혀 바깥쪽에 작은 궤양도 생겼다. 코앞에 닥친 결혼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몸 전체의 건강 상태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상태가 이 지경인데도 그녀는 자신의 진단명인 ‘알레르기성 자반증(紫斑症)’만을 되뇌었다. 한 원장은 곧바로 체질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그녀는 전형적인 소음인으로 나타났다. 일반인보다 증상과 약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체질이었다. 면역과잉 반응에 의한 염증을 치료하는 스테로이드 약물이 이 여성에겐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의학에서는 원인부터 찾아내 치료하는데, 이 질환에는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것보다 면역체계가 스스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원장의 처방에 여성은 “스테로이드를 끊으면 재발한다던데 괜찮겠느냐”며 더 나빠질까 걱정했다. 양약의 부작용을 겪고 있으면서도 한약 치료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친 것. 한 원장은 그녀를 설득한 뒤 스테로이드를 끊게 하고, 혈관 면역력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한약물과 영양요법, 식이요법 등으로 치료를 진행했다. 모발 미네랄 검사 결과 아연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아연제제도 함께 복용하도록 했다. 그렇게 6주가 지나자 알레르기 반응은 없어졌고, 자반증 증상이 한결 가벼워졌다. 환부의 색깔이 몰라볼 만큼 옅어지고 생리도 다시 시작해 결국 12주 만에 치료를 끝낼 수 있었다. 여성은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결혼식을 올렸고, 자신 있게 치마를 입을 수 있었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자반증은 최근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다. 주로 5~6세 어린이에게 많이 발병하지만 앞 사례의 여성처럼 20, 30대 혹은 40, 50대에서도 나타난다. 자반증은 혈관염이라고도 불리는데, 언뜻 보기에는 피멍 같다. 하지만 물리적 충격으로 생긴 피멍과는 차원이 다른 무서운 질환이다. 대표적인 증상이 알레르기성 자반증이다.

    아토피보다 무서운 자반증(혈관염) 거머리 침샘이 특효

    모세혈관 측정기로 자반증 환자의 모세혈관 상태를 측정하고 있다. 환자는 모니터의 화면처럼 손가락의 모세혈관이 많이 터진 상태다.

    한의학에선 포도역(葡萄疫·살갗에 나타나는 멍)이라 부르는데, 주로 허리 아랫부분에 발생하며 일반 알레르기 질환인 아토피 피부염, 천식, 두드러기, 알레르기 비염이나 결막염처럼 자기 면역세포가 자신을 공격해 생기는 자가 면역성 질환이다. 다른 알레르기성 질환처럼 자반증도 확실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알레르기 자반증에서도 위험한 증상이 HS(헤노흐-쉔라인) 자반증이다. 자반이 복통, 관절통을 일으킨 뒤 염증이 콩팥까지 침범해 신장염을 일으키는 경우다. 한 원장은 8년여 전부터 국내 최초로 자반증 연구를 시작했다. 직접 관리하는 알레르기 질환 전용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반증 상담글에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고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계기가 됐다. 되레 이 병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먼저 국내외 자료를 찾으러 동분서주했다. 국내에는 자반증 치료에 대한 자료가 전무해, 할 수 없이 몇 달간 진료를 포기하다시피 하고 해외 논문과 서적을 뒤졌다. 마침내 모교인 경희대 한의학과 도서관에서 1995~2000년까지 출간된 중국임상 논문을 다 뒤진 끝에 과민성 자반증 치료를 분석한 자료를 찾아냈다.

    “스테로이드와 한방 치료를 나눠서 혹은 병행해 실시한 임상치료 결과를 바탕으로 한 논문인데, 결론은 한방 치료가 낫다는 거였어요. 면역반응을 강제로 누르는 방법이 최적의 치료가 아니라는 게 핵심이었지요.”

    이때부터 자반증 정보를 구축해나갔다. 증상에 따라 자반증을 알레르기성, 색소성(모세혈관염),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노인성 자반증 등으로 분류하고 환자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홈페이지 올렸다.

    한 원장은 2002년 스테로이드 부작용을 겪던 5세 남자아이의 자반 증세를 자초 등 면역 안정 효과가 있는 약재를 혼합한 한약물과 식이요법 등으로 처음 완치시킨 뒤, 현재까지 매달 40~50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치료 성공률이 높아지자 한때 일부 의사에게서 “한약에 스테로이드를 첨가하지 않았느냐”는 시샘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한 원장은 임상결과를 대한한방내과학회지에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한 원장의 치료는 양방보다 재발률이 눈에 띄게 낮다. 2007년 그는 자신에게 치료받은 자반증 환자 중 치료 만 1년이 지난 167명을 대상으로 재발 여부를 추적했는데, 재발한 환자는 4.5%에 그쳤다. 30~40%로 보고된 양의학 치료 재발률과는 크게 대비되는 수치.

    “지금보다 훨씬 쉬운 치료법 찾아내는 것이 꿈”

    한 원장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거머리 요법. 경희대 대학원에서 ‘거머리의 면역억제 기전에 관한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아 ‘거머리 박사’라고 불리는 한 원장은 한약 효과를 얻지 못한 환자에겐 거머리가 환부를 빨게 하는 특이한 요법을 쓴다.

    “거머리 침샘에서는 히루딘 등 60여 종의 생리활성 물질이 분비됩니다. 이 물질이 혈관 안으로 들어가면 혈액순환이 촉진되고 소염 진통 효과와 더불어 면역 안정 작용까지 합니다. 미세 혈관 및 조직의 재생 효과도 있어 자반증과 혈관 질환 치료에는 ‘딱’이죠.”

    그러나 아직 남은 숙제가 있다. 자반증 중에서도 희귀한 질환의 치료율을 높이는 것이다. 다리 부분에 자반이 생기고 그 위에 상처가 유발돼 궤양으로 발전하는 청피반성 혈관염, 차가운 자극에 노출되면 팔다리가 얼룩덜룩해지는 망상 청피반, 찬물에 손을 넣으면 갑자기 손이 파랗게 질리면서 통증이 나타나는 레이노이드병 등이 그것. 기존 한방 치료 연구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한 원장은 자반증에선 개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가 대한생물요법학회의 초대 회장을 맡아 생명체를 활용한 치료법 연구에 몰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 원장은 “자반증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자반증도 아토피 피부염처럼 흔한 병이 될 겁니다. 지금보다 훨씬 쉬운 치료법을 찾아내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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