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5

2009.05.12

이재오 자전거 그리고 거짓말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9-05-08 10:4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나라당 이재오 전 의원의 트레이드마크는 자전거입니다. 그가 자전거를 탄 지는 꽤 오래됐다고 합니다. 1996년 지역구인 서울 은평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부터라니, 최소 13년 이상은 탄 셈이죠. 그는 선거 때나 의원 시절에나 지역을 돌 때면 주로 자전거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2007년 9월에는 4박5일간 ‘한반도 큰 물길 자전거탐방길’ 560km를 달리면서 한반도 대운하의 당위성을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총선에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와 맞붙어 낙선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에도 그의 곁에는 늘 자전거가 있었습니다.

    3월28일 귀국 후 그는 다시 정계에 복귀하기 위해 자전거로 지역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4월25일에는 서울시가 주최한 ‘하이서울 자전거 대행진’에 은평 지역 내 자전거동호회인 ‘은맥회’ 회원들과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대회 직전 그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의 일화를 소개하며 자신의 자전거 실력을 뽐냈습니다. 당시 인터뷰 내용 중 일부입니다. “교통사고 후 실력이 정상으로 돌아왔나 보려고 워싱턴DC의 자전거 대회에 나갔는데 8등을 했다. 30km를 달리는 거였다. 비가 왔는데도 600명이 참가했다.”

    600명 가운데 8등이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어떤 대회인지를 알아봤습니다. 대회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Bike DC is a ride, not a race’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경주’가 아니라서 등수가 전혀 의미 없는 ‘타기’행사였던 것입니다. 위원회 측은 원만한 행사 진행을 위해 오히려 속도를 내려는 참가자들을 앞에서 통제한다고 합니다. 이런 행사에서 이 전 의원은 어떻게 등수를 알았을까요? 이 전 의원 측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니 선두그룹에서 8번째로 들어갔다는 말이지, 8등에 의미를 둔 게 아니다. 몸이 회복됐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때 국내에선 이 전 의원이 미국에서 구입한 자전거가 1000만원대를 넘는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가 요즘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바로 미국에서 구입했던 것과 동일합니다. 가격이 얼마인지를 물어봤습니다. 이 전 의원 측은 “미국에서 230달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26만원 정도 주고 산 자전거”라고 밝혔습니다.



    이재오 자전거 그리고 거짓말
    그런데 수입자전거 전문가들은 ‘08년식 Trek Fuel EX 8’ 모델로, 소비자가가 300만원대인 명품자전거라고 하더군요(자전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평범한 가격대랍니다). 아마도 이 전 의원의 서민 이미지에 손상이 가지 않을까 우려한 나머지 둘러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 근거 없이 ‘자전거대회 8등’의 성적을 올리고, 300만원대의 명품자전거를 26만원대 자전거로 둔갑시키는 게 바로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인가 봅니다. 참 씁쓸합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