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3

2009.04.28

둘 중 하나는 정 때문에 피눈물

민주당 내우외환 폭풍 속으로 … 鄭-丁 전쟁 실체는 ‘鄭-DJ 전쟁’

  • 정진우 전북일보 정치부 기자 epicure@jjan.kr

    입력2009-04-22 12: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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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중 하나는 정 때문에 피눈물

    민주당 정세균 대표(왼쪽)가 4월13일 당사에서 전북 전주 덕진에 전략 공천자로 선정한 김근식 후보를 소개하며 승리를 다짐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한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경우도 그렇다. 제15대 국회에 나란히 입성하며 정치적 동지관계를 이어온 두 사람은 그간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배려하는 사이였다.

    그러던 정 대표와 정 전 장관이 지금은 사생결단을 불사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십수 년에 걸쳐 쌓아온 우정을 한순간에 저버렸다. 두 사람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불신과 반목의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만큼 파장도, 상처도 클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지난해 미국으로 정치적 외유를 떠난 정 전 장관은 1년 남짓 근신하며 때를 기다리다 지난 3월 미국 현지에서 ‘전주 덕진’ 출사표를 던졌다. 왜 굳이 미국에서 출마선언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그만큼 원내 진입이 절실했으리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鄭, 민주 지도부 무너뜨리기 파상공세

    한국 땅을 다시 밟은 정 전 장관에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귀국 이후 당 안팎에서 극심한 반대에 직면해야 했다. 정 전 장관 자신도 “이렇게 반대가 심할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대선 후보를 지낸 백전노장 아닌가. 곧바로 현 야권 구도를 되새김질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했다. 이 과정에서 정 전 장관은 정 대표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넘어 배신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정 대표는 그런 정 전 장관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당과는 아무런 상의 없이 “덕진에 공천해달라”는 정 전 장관의 태도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정 대표로서는 자존심도 자존심이거니와, 당권은 물론 호남 맹주의 자리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순순히 자리를 내놓을 수는 없는 처지. 결국 정 대표는 정 전 장관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정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는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정 전 장관은 단기필마로 전장에 뛰어들지 않았다. 그는 오홍근 전 국정홍보처장과의 연대를 모색하다가 막판에 신건 전 국정원장을 전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정 전 장관은 이를 통해 ‘무소속 연대’라는 포석으로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신 전 원장을 앞세워 전주에서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구 2곳에서 민주당을 제압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정(鄭)-정(丁) 싸움의 제2라운드에서는 정 전 장관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제2라운드의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긴 힘들지만, 4월29일 재선거 이후 시작될 제3라운드의 양상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정 전 장관이 ‘복당’이 아닌 ‘분당’을 공개적으로 시사한 만큼 현재의 민주당 지도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파상공세에 나서리라는 관측이 두드러진다. 특히 정 전 장관의 최종 목표는 단순한 원내 진입이 아닌, ‘호남 맹주’를 지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 전 장관은 단기적으로는 세력 확대에 방점을 두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회심의 승부수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에서 승기를 잡는다면 당 지도부를 궤멸시키거나 민주당을 배후 조종할 수 있는 장기 전략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신당 창당 가능성과 함께 그에 따른 시나리오도 심심찮게 떠돈다. 궁극적으로 전북을 중심으로 호남권에서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총동원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도 정 전 장관의 원내 진입 수순은 단순한 정(鄭)-정(丁) 싸움이 아닌 ‘DY(정동영)-DJ의 자존심 싸움’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해석이 관심을 끈다. 정 전 장관이 호남 맹주를 꿈꾼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득권을 쟁취해야 한다는 점에서 4월 전주 선거전의 전투 프레임은 ‘DY-DJ 구도’로도 읽을 수 있다.

    최근 당 안팎에선 3월24일 정 전 장관과 김 전 대통령의 회동에 대한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귀국 인사차 들른 정 전 장관에게 출마 자체를 찬성하거나 반대하지는 않되 ‘어떤 경우에도 당이 깨지거나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실망한다’고 말했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하지만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정 전 장관에게 불출마를 심각하게 종용했다는 후문이다.

    4·29 재보선 이후 극심한 격변 예상

    둘 중 하나는 정 때문에 피눈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4월10일 민주당 당사에서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김 전 대통령이 정 전 장관의 향후 행보를 꿰뚫어 보고 불출마를 종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박 의원이 직접 전주에 내려가 정 전 장관의 대항마로 전략 공천된 김근식 후보(경남대 교수)를 근접 지원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DY-DJ 갈등’이든, ‘정(鄭)-정(丁) 싸움’이든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민주당이 4월 재보선 이후 극심한 격변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15%에 불과한 당 지지율 정체현상을 개선할 수 있는 해법을 찾지 못한 민주당으로선 ‘노무현’에 이어 ‘정동영’이라는 악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정 전 장관이 당 내부를 요동치게 만든 장본인이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 파문은 당의 근간을 뒤흔드는 악재이자 먹구름이다. 청렴과 도덕성에 관한 한 역대 최고를 자부하던 노 전 대통령의 금품 추문이 확산되면서 민주당은 당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다. 특히 민주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주류 인사들이 친노 386세대라는 점에서 지도부의 고민은 더욱 깊고 크다. 말 그대로 민주당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정 대표의 대응이다. ‘정동영’과 ‘노무현’이라는 대형 악재를 과연 정 대표가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더욱이 정 전 장관의 반격을 무력화할 승부수를 찾기 위한 그의 카드는 무엇일까. 정 대표의 선택은 곧 민주당의 미래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재보궐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민주당을 둘러싼 먹구름은 점점 짙게 변해가고 있다. 마치 폭풍이 몰려올 날의 우울한 전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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