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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년, 한국을 일으킨 글로벌 기업 ⑤|LG전자

럭셔리 고객감동 콧대 높은 유럽마저 녹이다

올 3분기 글로벌 기준 매출 12조, 영업이익 5705억원

럭셔리 고객감동 콧대 높은 유럽마저 녹이다

럭셔리 고객감동 콧대 높은 유럽마저 녹이다

영국 풀럼축구장을 찾은 현지 어린이들.

경제평론가 K박사는 2004년 8월 러시아 출장에서 느낀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러시아의 3대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열린 ‘LG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갔더니 현지 시민 대다수가 LG전자의 열성 팬이었다. 시가지 중앙광장에서 진행된 록 콘서트에는 1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해 “사랑해요, LG…”라는 LG 로고송을 따라 불렀다. 그때 현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미인대회도 열렸는데 최고 미인으로 뽑힌 여고생은 “앞으로 LG전자 모델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K박사는 이런 문화 행사를 통해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LG전자의 감성적 접근법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현지에서 확인했다. 현지 소비자들은 한결같이 “LG전자는 고급스러운 제품을 만드는 세계 일류 전자업체”라고 대답했다. 러시아의 마케팅 전문가들은 “러시아 경제가 어려울 때 일본 기업들은 철수한 반면 LG전자는 지속적으로 투자해 신뢰를 쌓았다”면서 “LG전자는 애프터서비스에서도 단연 앞서 믿을 만한 업체”라고 말했다.

영국에 유학 중인 대학원생 S씨는 영국인 친구가 새로 산 휴대전화를 갖고 와 “디자인이 환상적으로 아름답고 기능도 좋다”고 자랑하기에 브랜드를 봤더니 LG전자의 ‘프라다폰’이었다고 한다. S씨는 “한국의 대표적인 회사인 LG전자에서 생산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인 친구는 “우리 집 TV도 LG 것”이라 덧붙였다. S씨는 유럽 시장에서 비싼 값에 팔리는 첨단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LG전자가 한국 기업인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지 않는 모든 활동은 ‘낭비’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하면서 이같이 일갈했다. 이에 따라 ‘낭비제거 활동’과 ‘일 잘하는 법’ 등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남 부회장은 고객에게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고객이 말도 못하고, 표현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는 것을 찾아내 상품화할 것”이라면서 “LG전자 브랜드가 소비자 마음속에 단순히 품질이나 성능이 좋다고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와닿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품질·성능·감성 브랜드로 소비자 사로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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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피커딜리 광장의 LG 전광판(왼쪽), 구인회 LG 창업회장.

LG전자는 고객의 잠재 욕구를 찾아내는 업무를 맡는 ‘가산 R·D(연구개발) 캠퍼스’를 2007년 10월 서울 가산동에 준공했다. R·D 활동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이다. 이로써 서초 R·D 캠퍼스, 우면동 전자기술원, 서울대 DTV연구소 등을 잇는 서울 R·D 벨트가 구축됐다.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발전을 꾀하겠다는 의지를 다짐한 것이다.

이에 앞서 추진한 왕성한 R·D 활동으로 재미를 봤다.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경영진의 결단과 첨단제품을 개발한 연구요원들의 열정이 어우러진 결과물인 블랙라벨 시리즈 휴대전화가 세계적인 히트 상품으로 떠오른 것. 2008년은 블랙라벨 시리즈의 판매기록이 잇따라 경신된 해다. 2005년 11월 블랙라벨 첫 제품으로 내놓은 초콜릿폰이 한국산 휴대전화로서는 최초로 세계 판매량 1800만개 기록을 세웠다. 스테인리스 소재로 감성을 표현한 블랙라벨 시리즈 두 번째 모델 샤인폰은 70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 또 2006년 말 제품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 누리꾼(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프라다폰이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 이어 한국에서도 시판되면서 명품 휴대전화 시대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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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홈데포 매장의 트롬 세탁기(왼쪽), 명품 휴대전화 시대를 연 ‘프라다폰’의 후속 모델 ‘프라다 2’.

세계 전자산업계는 그야말로 군웅할거, 춘추전국 시대에 접어들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오늘의 1위 기업도 내일이면 하위 업체로 추락한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져 이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려면 그만큼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마련이다. 휴대전화, TV, 가전 분야에서 제품 수명이 6개월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2~3개월만 뒤처져도 ‘게임이 끝날’ 수가 있다.

LG전자는 2004년 1월 ‘글로벌 톱 3’를 달성한다는 비전을 세웠다.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확실한 1등 제품과 1등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꼈다. 당시 세계 전자업계는 경쟁심화, 공급과잉, 가격하락, 수익성 저하 등 악순환으로 고전할 때였다. 특히 디스플레이 분야는 공급 물량이 넘쳐 가격이 폭락했다. LG전자는 고급 제품을 생산해서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싱글스캔 방식의 42인치 HD급 PDP 모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HDR 기능이 내장된 X-캔버스는 감상만 하던 기존 TV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덕분에 LG전자는 2006년 3월 TV 누적 생산량 2억 대를 돌파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디지털 TV와 함께 LG전자의 승부 사업인 휴대전화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2005년 2월엔 대규모 통합 단말연구소를 세웠다. 또 휴대전화를 생산하던 서울, 청주 기지를 평택 디지털 파크에 통합했다.

디자인과 글로벌 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전략이었다. LG전자는 2006년 6월15일 ‘디자인 경영’을 선포했다. 디자인을 통해 회사의 도약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글로벌 경영을 위해 현지화 전략에 박차를 가했다. 러시아 공장을 증설하는 한편,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을 유럽 시장을 위한 생산거점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LG전자는 이미 사업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벌이고 있는 만큼 ‘LG’ 브랜드를 세계적인 명품(프리미엄) 브랜드로 키우는 데 역점을 두기로 했다.

LG전자의 글로벌 경영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0월 국내 기업 최초로 해외에 생산법인을 세운 것. 미국 앨라배마 주 헌츠빌이었다. 공장 설립단계에서부터 줄곧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모은 헌츠빌 공장의 성공 사례는 하버드대에서 교재로 삼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성공을 계기로 해외 진출을 확대했는데 현재는 해외 현지법인이 82개에 이른다. 이는 다른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에도 큰 자극제가 됐다.

1995년 LG전자가 미국 최대 가전업체인 제니스를 인수한 것은 세계 인수합병(M·A) 역사에도 기록될 만큼 주목을 끌었다. 제니스는 미국의 자존심이 담긴 전통 깊은 회사였다. LG전자가 라디오를 만들며 창업하던 1950년대 후반에만 해도 제니스는 막강한 기술력과 자본력을 자랑했다. LG전자의 창업 멤버들은 훗날 이런 M·A가 이뤄질 줄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제니스는 10여 년간의 구조조정 작업 끝에 올해 9000만 달러의 디지털 TV 로열티를 받는 효자 회사로 거듭났다.

글로벌 경영을 위한 충격적인 요법 가운데 하나는 영어 공용어화 프로젝트다. LG전자는 2005년에 “3년 후부터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영어로 하겠다”며 사내 인트라넷을 영어로 바꿨다. 올해는 영어 공용어화 원년이 된다. 외국인이 단 한 명만 끼여 있어도 회의는 영어로 진행해야 한다. 모든 문서는 영문으로 작성된다. 외국인 임직원 숫자도 급증했다. 외국계 회사에서 스카우트해 온 인력은 상무급만도 20여 명이다. 올 2월엔 미국 IBM에서 20년 동안 근무한 토머스 린턴 씨를 최고구매책임자(CPO)로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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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 자리한 LG그룹 본사 쌍둥이빌딩(왼쪽), 샤인리오스 냉장고.

신성장 산업은 대체에너지 및 카 인포테인먼트

LG전자는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에너지 솔루션 사업을 키운다. 화석 연료가 고갈될 때를 대비한 대체에너지 개발사업은 전 세계 일류기업의 ‘로망’ 아닌가. 지열, 풍력, 태양열, 바이오 등 신재생 에너지사업의 국내 시장규모는 올해 2300억원에서 2010년엔 4200억원, 그 후에는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10년 750억 달러에서 2030년엔 2조5000억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LG전자는 지난 40년간 쌓은 에어컨 공조기술 등을 바탕으로 에너지 관련 기술을 심화시킨다. 이를 위해 R·D 인력을 2007년 1200명에서 2010년 2100명으로, 엔지니어링 영업인력을 2007년 2800명에서 2010년 4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R·D 투자액은 향후 3년간 2200억원 규모다.

이영하 LG전자 디지털 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장은 “에어컨 기술력과 에너지 솔루션을 연계한 신사업을 발굴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급부상하는 에너지, 친환경 이슈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 밝혔다.

‘기업은 사람이다’ 인재 경영에도 박차

또 다른 차세대 신성장 사업은 ‘자동차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 부문. 정보(inform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인 인포테인먼트는 자동차에서 지리 정보뿐 아니라 오락 기능을 제공하는 장치다. 현대자동차에 2002년부터 텔레매틱스를 공급한 것을 인연으로 현대·기아차와 손잡고 이 분야에 본격 진출한다.

LG전자의 올 3분기 글로벌 기준 실적은 매출 12조90억원, 영업이익 5705억원이었다. 휴대전화의 경우 매출액이 3조5141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41% 늘었으나, 물량 기준으로는 인도에서의 판매 부진으로 2분기 2770만 대보다 줄어든 2300만 대로 나타났다. 디스플레이 사업은 매출 3조8521억원, 영업이익 160억원으로 흑자기조를 이어갔다. 평판 TV와 PDP 모듈 판매량이 꾸준히 늘어난 덕이다.

LG전자는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명제를 신봉한다. 우수 인재를 끊임없이 영입해야 미래가 있다는 점을 절감한다. 이희국 기술책임자(CTO) 등 기술 경영진은 국내외에서 열리는 기술세미나에 수시로 참석해 우수 인력을 찾는다. 맞춤형 인재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 해외 주요 대학의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인턴십 프로그램인 ‘디지털 리더 캠프’를 운용한다. 인사팀장 강돈형 상무는 “핵심 인재는 장소, 국적을 불문하고 직접 찾아가 모셔오겠다”고 밝혔다.

LG전자의 창업 이야기

라디오 생산으로 출발 … 1962년 62대 첫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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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라디오 A501(위), 국내 최초의 TV VD-191.

“우리가 그거(라디오) 맨들면 안 되는교?”

“안 될 거야 없지요, 사장님. 우리 기술 수준이 낮아서….”

“문제가 없구먼. 외국 가서 기술 배워오고, 그래도 안 되면 외국 기술자 모셔오면 될 것 아니오. 우리가 하면 될 끼라.”1957년 고(故) 연암 구인회 당시 락희화학 사장과 직원의 대화 내용이다. 이렇게 해서 전자제품을 만드는 금성사(현 LG전자)가 1958년 탄생했다. 1년간의 각고 끝에 국산 라디오를 만들어냈다. 1962년 11월 라디오 62대를 미국에 수출하면서 자신감을 가졌다. 당시 한국 기술이 미국 시장에 통했다는 사실은 감동적인 ‘사건’이었다. 연암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할아버지다.

LG전자는 그 후 선풍기, 전화기,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카세트 녹음기, 전자레인지 등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고 한국 전자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써왔다. 1966년 8월에는 흑백 TV를 처음 생산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대 가격이 500만원 정도인 고가품이었으나 물량이 모자라 공개추첨을 통해 판매했다.

창업 당시 임직원 300명으로 출발했으나 현재는 120여 개국의 해외법인과 해외지사를 포함해 8만2000명으로 늘었다. 매출액은 창업 이듬해인 1959년 5000만원이었지만 2007년엔 41조원이었다. 자본금은 창업 당시 1000만원이었으나 지금은 7조2000억원이다.


LG전자의 성공 이야기

勞經 신뢰 속 ‘무한 지혜’ 성과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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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남용 LG전자 부회장.

LG전자의 성공 스토리를 다룬 책인 ‘그레이트 피플’(곽숙철 지음, 웅진윙스 펴냄)은 마치 소설 제목 같다. ‘LG전자, 그들은 어떻게 세계를 제패했나’라는 부제도 붙었다.

저자는 성공 요인을 ‘혁신 10계명’으로 요약했다. 즉 ① 경영은 사람이다 ② 위기는 기회 ③ 5%는 불가능해도 30%는 가능 ④ 같이 꿈꾸면 이루어진다 ⑤ 자원은 유한하나 지혜는 무한 ⑥ 열정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 ⑦ 실행하는 것이 힘 ⑧ 피드백이 행동을 바꾼다 ⑨ 솔선수범보다 훌륭한 리더십은 없다 ⑩ 영원한 1등은 없다 등이다. 이런 계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이 거대하고 무거운 플라이휠을 쉬지 않고 돌려야 한다.

‘경영은 사람’임을 강조하는 사례로 노경(勞經) 관계를 들었다. 1980년대 후반 격렬한 노사갈등을 겪으며 “경쟁력도 장래성도 없다”고 진단받았던 이 회사는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의 기본으로 돌아갔다. 먼저 ‘사용자’라는 용어 대신 경영자를 쓰기로 했다. 매일 아침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반갑습니다” “잘해봅시다”라고 외치며 인사를 했다. 또 현장체험 등에서 솔선수범하고 경영현황을 노조에 공개했다. CEO가 지역 공장을 방문할 때 맨 먼저 노조 사무실에 들름으로써 회사가 노조를 동반자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줬다. ‘노경’ 사이에 신뢰가 쌓이면서 경영 성과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자원 유한, 지혜 무한’의 사례로는 냉장고 도장(塗裝) 작업 이야기가 소개됐다. 작업원은 방진복, 방진모자, 마스크, 방진안경 등을 쓰고 스프레이로 페인트를 뿌리는데 너무 더워 작업하기 어려웠다. 실내 온도가 낮으면 페인트가 부드럽게 뿌려지지 않으므로 에어컨을 가동할 수도 없었다. 고심 끝에 몸에 바셀린을 바르고 작업하면 된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작업자들은 반소매, 반바지 차림으로 작업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주간동아 2008.11.11 660호 (p50~54)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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